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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Sep 25. 2022

구독자 분들께 쓰는 편지

일 수도 10년이란 시간에 대한 단상일 수도



비행기가 이제 막 이륙하고 창밖 아래를 내려다보면 안달하며 볶아치던 세상이 대수롭지 않은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무수히 많은 점과 선 그리고 서로 다른 색깔은 복잡하지만, 또 복잡한 대로 그 균형을 맞추어 두 눈에 몰아친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타 있는 동안만큼은 세상의 고민이 저들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라서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이기적인 안도감 같은 것이다. 갑자기 비행기는 왜?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2012년 9월에 제대를 했다. 그러니까 딱 10년이 지난 것이다. 10년은 참 긴 시간이지만 '세월'이라고 쓰고 돌아볼 때는 늘 뭉텅이처럼 느껴진다. 나는 내 인생에서 세 개의 뭉텅이를 만들었고, 현재 네 번째 뭉텅이의 반절을 채워나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일흔이 코앞까지 다가와 다소 야위었고, 가끔 본가에 내려가 TV를 켜면 내가 알던 스타들은 예외 없이 중년이 되었다. "어머, 쟤도 많이 늙었다." TV를 안고 사는 우리 엄마의 지겨운 레퍼토리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는 법이야.




대한민국 대표 자의식 과잉인으로서 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항상 걱정하는 것은 나의 힙합 이야기를 기다리는 선생님들, 나의 패션 이야기를 기다리는 선생님들, 나의 에세이를 기다리는 선생님들, (거의 없겠지만) 나의 스콧 피츠제럴드 이야기를 기다리는 선생님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글이란 것은 사실 쉽게 쓸 수가 없고, 또 물리적인 한계와 아이디어의 고갈 등으로 인해 매주 그것들을 번갈아가며 쓰겠다는 다짐을 세운다한들 그것이 참 헛되고 번지르르한 사건사고로 마감될 것을 알기에 괜히 서글프기만 하다는 것이다.




힙합 이야기를 더 자주 해줬으면 좋겠어.




계산해보니 <스눕피의 브런치> 블로그 운영을 시작한 지 1439일이 되었다. 구독자의 절대적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어디에 드러내 놓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워낙 멋지고 유명하고 좋은 분들이 많이 구독하고 봐주시는 걸 알기에 내 지루한 청춘의 시간을 쪼개 키워나가는 이 사이트를 내 인생의 긍지로 삼고 있다. 대놓고 자랑하면 좀 구려보일까봐 참는 것뿐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혹은 뭘 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누가 묻는다면 이 블로그가 '나'라는 사람의 90% 이상을 대변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 만나도 나는 이 블로그와 같을 것이다. 나는 대체로 진실했고 기왕이면 필터링을 가하지 않았다. 가끔 변태 같고 미친 사람 같아도 그게 나라서 부끄럽지도 않았으니까.


꿈을 꾼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젊음의 증명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나는 이 블로그를 매개로 새로운 꿈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먼일일 수도, 아주 가까운 일일 수도 있다. 뭐가 그리 대단해서? 라고 누군가 빈정댄다면, 반대로 나는 내가 조금도 대단하지 않은 범부이기에 이리도 작은 것을 통해 무려 '꿈'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변명할 것이다. 미안합니다.




I HAVE A DREAM!



지난 몇 년 동안 286개의 글을 썼다. 돌아보니 역시 뭉텅이 같은 시간이었다. 솔직히 뭘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포스트 하나하나 쓰는 동안 즐거워 죽을 지경이었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에게 내 글이 가닿는 상상만으로도 정말 짜릿했다. 대영상의 시대이지만 글이 전하는 울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까. 누군가는 꼭 알아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근히 긍정의 사나이다. 확 줄여서 은긍사.


사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뭔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만한 분별 있는 결정을 내려본 일이 별로 없다. 다만 중등학교 시절에 일찍이 내 취향의 단면을 연마하는 일이 온통 성공론과 방법론으로 가득한 이 험난한 세상을 그래도 슬기롭고 즐겁게 또 색다르게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것만큼은 아주 제대로 팠다. (그만 좀 파!) 미친 사람처럼 뭔가를 파기라도 해서 다행인 걸까. 아무튼 조금의 다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다름을 갈구하는 사회, 솔직히 나는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직도 좀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늘 즐겁고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내 블로그에 지겹게 등장한 빅션, 형아, 미안해!




소름 돋게 진지하고 이상한 소리는 이쯤에서 집어치우고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 추천하며 물러나 보겠다.

스눕피의 브런치 단골 래퍼 '빅션(Big Sean)'이 얼마 전에 <Detroit>(2012) 믹스테이프 발매 10주년을 기념해 음원 사이트에 해당 앨범을 새롭게 릴리즈했다. 그래서 그의 여친 '즈네 아이코'와 함께했던 'I'm Gonna Be'를 오랜만에 듣는데 코끝이 아렸다. 10년이라는 세월의 뭉텅이를 다시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죽겠더라. 이런 젠장! 2012년 9월과 2022년 9월,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아무튼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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