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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10. 2023

동두천에 뜬 Y2K 패션왕

드루 힐의 '시스코' 그리고 격세지감



들어가며

이 글을 '스눕피의 짜치는 생각'에 담을까, '스눕피의 패션 이야기'에 담을까 고민하다가 '패션 이야기'에 담기로 했습니다. 경계가 참 애매한 글이라서요.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Aging


내가 좋아하던 스타들도 나처럼 해를 넘기면 한 살씩 나이를 까먹는다는 사실을 까먹곤 한다. 언제까지고 그때의 그 자리에서 그때의 그 모습으로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거나 정신없이 웃기거나 힘차게 노래를 부를 것만 같은 거다. 그러나 역시 세상에 한결같은 사람은 없다. 늘어나는 그들의 주름과 흰머리의 기세는 속절없으며, 우리만 따로 위축되지 않게 함께 나이를 먹어주는 그들에게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Dru Hill



‘블랙 뮤직’깨나 들어봤다 하는 선생님이라면 아메리칸 알앤비 그룹 ‘드루 힐(Dru Hill)’과 그룹의 메인 스타 ‘시스코(Sisqo)’를 매우 좋아했던 시기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학창 시절에 둘의 음악을 귀에 달고 살았다. 중등학교 시절에 만든 온라인 계정의 ID가 ‘druhill’인 곳이 더러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계정을 만들던 그 순간의 청소년 스눕피가 ‘드루 힐’의 음악을 집중하여 듣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때의 나, 잘 있니?






시스코, 낫 세스코


‘드루 힐’은 시스코, 우디, 재즈, 노키오라는 동향의 원년 멤버 넷이 주축이 되어 1992년 결성된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알앤비 그룹이다. 이후 스콜라라는 멤버가 입단(입갤)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들은 주로 슬로, 미드템포의 소울 뮤직 위에서 감정적인 하모니를 멋지게 뽐내며 90년대 미국의 간판 알앤비 그룹으로 활약했다. 특히 그룹의 스타플레이어 ‘시스코’는 1999년에 발표한 <Unleash the Dragon>이라는 솔로 데뷔 앨범이 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박을 쳤고, 이후 세기말과 Y2K를 대표하는 뮤직 아이콘이 되었다.




형이 왜 동두천에 왔어? 잘 왔어!




형이 왜 동두천(형왜동)



(할 말 거진 다 해놓고 뭘 또) 오늘의 이야기는 자신의 내한 사실을 알리는 ‘시스코’ 삼촌의 인스타그램 포스트와 함께 시작된다.


어제 인스타의 피드를 슥슥 넘기는데, 어느덧 핵아재가 된 ‘시스코’ 성님이 오프화이트의 비니를 쓰고 미세먼지로 자욱한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찍어 올린 셀카 포스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형 한국 왜 왔지? 아무튼 넘나 궁금해서 ‘드루 힐’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접속해보니 이 성님들이 동두천의 미군부대에서 멋진 콘서트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루 힐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반가운 K-산천




블링블링한 주얼리와 함께 미국의 빌보드 매거진과 각종 힙합 매거진을 수놓던 Y2K 스타들이 이제는 든든한 우리네 삼촌이 되어 한국전쟁의 격전지 동두천의 강당에 참전해 산천을 흔들어 놓게 되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니 무한한 격세지감이 들었다. 엉클!







다 지난날



무엇보다도 ‘시스코’ 삼촌의 얌전한 패션 스타일링은 내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스코’는 무려 Y2K 남성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아니었던가!


이 성님 특유의 탈색 헤어와 배기팬츠, 맨살과 함께한 가죽 재킷과 탱크톱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왕건이 같은 체인 목걸이(자신의 시그니처 이미지인 드래곤이 명치 아래에서 대롱거리는) 그리고 왕발 같은 나이키 슈즈와 팀버랜드 부츠가 87년의 유재하 선생님이 일렀듯이 ‘다시 못 올 지난날’이 되어 게티 이미지와 핀터레스트의 무한한 저장 공간 속으로 꽁꽁 숨어버렸다는 사실에 은근히 섭섭한 기분마저 들었다. 엉클!







역사의 반복


약 2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생활양식(특히 패션)이 다시금 반복 전개된다는 (아주 놀라운) 과학 같은 사실을 목도하는 요즘엔 ‘질리도록 익숙하고 물릴 만큼 연속되던 무언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역으로 셈해보게 된다. 야, 20년이면 족하냐?


20년 후의 오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Y2K 단상


Pelle-Pelle, Phat Pharm, FUBU 그리고 Tommy Hilfiger 등은 90년대를 장악했던 패션 브랜드들이다. 당시 ‘드루 힐’은 ‘펠레 펠레’의 모델이었고, 스눕 독의 ‘타미 힐피거’ 패션은 전설이었다.








Y2K 패션의 만연과 인기는 앞서 이야기한 새로운 시선(더는 질리거나 물리지 않고 다시 새롭게 느껴지는 시각)이 전 세대적으로 마련되었으니 안심하고 다시 나타나도 좋다는 인정 혹은 허락의 비주얼적인 증표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요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빈티지 세컨 핸드 패션의 '이유' 있는 인기의 '이유'가 아닐까, 하는 하나 마나 한 생각의 생각을 쭉쭉 뻗어본다.





‘시스코’의 인스타그램 포스트 하나가 너무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그런데 삼촌 덕분에 옛 노래에 푹 빠져서 너무 좋다. 제 피드에 갑자기 나타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연예가중계, 아니, 동두천, 아니, 스눕피!



[그리고 오늘의 음악 추천]

사실상 의미 없는 큐레이션입니다. 전 앨범의 모든 곡이 예술이니까요. 하지만 나름대로 골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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