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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09. 2018

대학교 과잠에 대하여

  사촌 여동생의 수술 병문안으로 며칠씩 서울 OO대학교 병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병원 밖으로 나가면 병원과 붙어있는 OO대학교 학생들이 생생하게 젊은 기운을 뿜어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그들의 십중삼사는 과잠을 입고 있는데, 특히 과잠을 입은 새내기의 당찬 기운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어야만 할 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나는 소위 말하는 ‘과잠’을 사본 적도 없고 입어본 적도 없다(내가 뭐라고...) 대학의 레벨은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과잠이 대학 생활의 로망 내지는 필수 아이템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대학 그리고 그것의 이름이 가진 위상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나도 그런 이름에 짓눌리고 휘둘리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나는 '과잠'이 싫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없어졌으면 하는 ‘잔재'였다. 대학 이름을 등 뒤에 박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대학의 이름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는 또래들의 어깨, 그런 것들이 조금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뭐라고...) 과잠의 모양과 색깔은 또 어떤가. 작게 입으면 작게 입은 대로 크게 입으면 크게 입은 대로 그것의 모습은 언제나 좀 별로였다. 누가 입어도 그것은 빈티를 자아냈다. 실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검흰이나 남흰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핑크와 퍼플이 들어간 과잠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대학교의 2학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며 차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각 대학의 '연영과' 학생들은 이른 월동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보다 진일보한 과잠인 롱 패딩을 장롱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들은 거침없이 캠퍼스에서 춤을 추고 연기를 하며 캠퍼스를 집 안방 누비듯 누빌 것이고, 화장실에서 공연히 목을 풀고 노래부를 것이다. 롱 패딩과 함께 무릎이 발사된 츄리닝 바지를 입고 그(녀)들은 학교와 집, 학교와 기숙사, 학교와 하숙집 사이를 부지런히 쏘다닐 것이고, 군모로 푹 눌러쓴 그(녀)들의 얼굴은 분간하기가 쉽지 않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이다.


 ”쟤 연예인 아니야?”
 “응,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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