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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06. 2023

1993년은 참 놀랍군!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패션'과 우탱의 '그런지 힙합'



1993 마크 제이콥스


1989년부터 패션 브랜드 '페리 엘리스'의 디자인 디렉터를 맡아 온 청년 마크 제이콥스가 1993년 봄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패션 일체는 당시 스트리트와 매스미디어 위에 만연하던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 향의 '그런지' 걸베이 감성을 하이패션 캣워크 위로 처음 끌어올린 역사적인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페리 엘리스'의 컬렉션을 준비하던 마크 제이콥스는 미국의 세컨핸드 스토어에서 플란넬 셔츠와 울 캡 등의 구제 패션 아이템을 구매해 이탈리아로 보내고 그것의 소재적(?) 고급화를 요청했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러한 도둑 같은 그의 컬렉션을 관람한 많은 패션 비평가들은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패션 실험을 너절한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덕분에 그는 '페리 엘리스'의 디자이너 직에서 해고당하게 되는데, 몇 년 후 그는 보란 듯이 전설의 헤리티지 브랜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다.


루이비통에서 그는 스테판 스프라우스, 리처드 프린스, 무라카미 타카시와 같은 아티스트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루이비통의 패션 자산과 섞는 실험적인 아티스틱 콜라보로 주목을 받았다(키드 슈퍼 스튜디오의 콜름 딜레인이 최근 루이비통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임명된 이유의 알맞은 전례도 되어주는 듯합니다). 물론 그와 칸예와의 예술 같은 협업도 빼놓을 순 없겠죠.




1993 우탱클랜


한편 미국의 레전더리 힙합 그룹 우탱 클랜은 1993년의 데뷔 앨범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을 통해 날 것 그대로의 와일드하고 하드코어한 언더그라운드 그런지 힙합을 전 세계에 소개했다. 푹 꺼진 베이스 톤과 쿵쾅대는 드럼, 때 묻은 사운드와 먹먹한 랩 레코딩은 향긋한 쉐이브 크림 위에서 무척 잘 정돈된 면도날 같이 날카로이 위협적이던 세련된 대세 음악 '웨스트 코스트 힙합' 씬을 무자비하게 박살 내는 가시 돋친 나무 핸들 위 거칠고 투박한 도끼날 그 잡채였다.



맨 뒤에 보이는 로고는 금칠한 폼 코어 로고, 후드 위에 원형 로고는 스티커, 멤버들이 뒤집어쓴 건 스타킹 마스크(불참 멤버 때문에 스태프가 쓰고 찍었다는 말도 있다).




같은 해의 마크 제이콥스가 빈티지 마켓과 스리프트 스토어를 디깅했다면, 우탱클랜의 정신적 지주이자 메인 프로듀서 '르자'는 클래식 블랙 뮤직 레코드로 가득한 우유 상자(크레이트)와 쿵푸 영화 사운드트랙과 클립을 디깅했다.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와는 다른 의미의 도둑 같은 크리에이티브를 실현했다.



RZA 삼촌이 들려주는 힙합 이야기 (이미지 출처: Vanity Fair)



또 마크 제이콥스가 시애틀 부부의 '그런지' 감성을 하이패션에 이식했다면, 르자는 뉴욕 길바닥의 '그런지' 감성을 홈메이드(실제로는 지하 녹음실)로 거침없이 구현해 인디펜던트,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완벽한 길잡이가 되었다.







2023 발견



얼마 전에 읽은 송길영 작가님의 책에서 본 '발견되다'라는 키워드의 인사이트가 참 흥미로웠다.


그것은 '어떤 걸 전략적으로 의도한 게 아니라 그저 내 삶에서 건실하게 구현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대세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작가님은 그렇기에 '먼저 해야 하고, 오래 해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건 하지 않는 반골이 존재의 의미'라고 덧붙였다.



모두가 틀렸다는 걸 보여줄게.
완전히 새로운 힙합 스타일을 보여줄게.

- 미국 힙합 씬의 에일리 'RZA'



1993년의 반골 같은 크리에이티브가 매해 새롭게 발견되고 누군가에게 싱싱한 영감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1993년의 그들은 과연 무엇을 상상했을까?

그리고 얼마큼의 영향을 예측했을까?



81년도부터
음악을 만들고 레코딩을 했는데요,
누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우탱 1집도 그런 컬트적 인기를
불러 모을 줄 몰랐어요.

그런데 전 세계적인
힙합 혁명을 불러왔잖아요.

- 우탱 1집 엔지니어 '요람 바잔'




[그리고 오늘의 추천곡]

한 곡을 고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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