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파니나로 패션과 코리아 일진 양아치 패션
1987년, 스웨덴에서 열린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영국 팀이 탈락했다. 그들을 응원하던 자국 팬들은 빡쳐서 스웨덴의 한 패션 아울렛을 털었다.
그곳에서 그들이 잔뜩 훔친 건 다름 아닌 패션 브랜드 ‘스톤 아일랜드’의 아이템들이었다.
80년대에 들어 밀라노에서는 심각한 인생의 고민이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 따위 집어치우고 기름지고 제법 유쾌한 미국의 소비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을 좇으며 피상적인 것들만을 논하며 놀던 ‘파니나로’ 족이 주의를 끌기 시작한다.
특히나 그들의 관심을 온통 빼앗은 것은 ‘패션’이었다.
그들은 아르마니의 청바지, 베스트 컴퍼니와 C.P. 컴퍼니의 셔츠, 몽클레르의 푸퍼 재킷 그리고 스톤 아일랜드의 모든 아이템을 즐겨 입었다.
그리고 흥하는 하위문화가 으레 그러하듯이 그들의 이러한 간지 박살 패션 스타일(사실상 패션 브랜드)은 곧 이탈리아 전역의 젊은이들에게 전파된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어웨이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국경을 넘곤 하던 영국의 축구 팬들은 ‘파니나로’ 족이 전역으로 퍼뜨린 고유의 패션 스타일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이 걸친 새로운 패션 브랜드 그리고 그것들을 인상적으로 조합하는 세련된 패션 센스를 보고 배워 영국으로 돌아가 소개한다.
1981년 결성된 영국 런던 출신의 신스팝 듀오 ‘펫 샵 보이즈’는 1986년에 발표한 곡 <Paninaro>를 통해 ‘파니나로’ 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담아냈다.
Passion and love and sex and money
Violence, religion, injustice and death
Paninaro, Paninaro, oh, oh, oh
Girls, boys, art, pleasure
Girls, boys, art, pleasure
Paninaro, Paninaro, oh, oh, oh
Food, cars, travel
Food, cars, travel, travel
New York, New York, New York
New York
Paninaro, Paninaro, oh, oh, oh
Armani, Armani, ah-ah-Armani
Versace, cinque
Paninaro, Paninaro, oh, oh, oh
Paninaro, Paninaro, oh, oh, oh
펫 샵 보이즈 <파니나로> 중에서
자, 그리고 2010년도 이후의 한국으로 시곗바늘과 지구본의 구를 빠르게 돌려본다.
이제 스톤 아일랜드는 양아치 일진 패션의 근본과도 같은 스타터 팩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양아치 일진 패션 브랜드 스톤 아일랜드의 나침반 와펜 패치와 자웅을 겨루는 것이 또 톰 브라운의 견고한 스트라이프다.
양아치 일진들이 두 브랜드로부터 깊이 느끼는 훌륭한 가치는 자신들의 팔뚝에 누구나 인정하는 완장을 하나 채워주는 그 적나라한 피상성에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실험적인'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인 스톤 아일랜드와 가장 '변혁적인'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인 톰 브라운이 때로 가장 구태의연하고 이퉁이 센 이들의 고집 입맛을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만족시켜 준다는 사실은 우연히 보고 곱씹을 때마다 새롭고 짜릿한 감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독한 유행은 그것이 아무리 지독해도 특정 라이프스타일 속에서만 유의미한 유행일 뿐이고, 어떤 패션 브랜드든 또 어떤 패션 스타일이든 결국 '누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태도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밀라노 파니나로 족의 '스톤 아일랜드'와 코리아 양아치 일진의 '스톤 아일랜드'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달랐을까?
[그리고 오늘의 추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