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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07. 2023

글쓰기를 잘하려면 필사하라!

라는 만연하지만 막연한 조언에 대한 단상



필사에 관하여


냉소와 빈정의 문학 아이콘 ‘조지 버나드 쇼’ 옹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초보 작가는 문학적 표현을 위해 안달하지만, 노련한 작가는 문학적 표현을 없애려고 애쓴다."

가끔 예전에 주고받은 이메일이나 케케묵은 대학교 과제, 완전히 밀폐된 온라인 공간(비공개 블로그)에 끄적인 허영으로 가득한 에세이를 찾아 읽곤 한다. 그러면 손발이 바스러진다. 당시의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작가를 흉내내며 글쓰기의 잔기술에 골몰하느라 그때의 문장 속은 죄다 비어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필사하라고들 한다. 왜?


군에서 필사로 시간을 때운 경험자로서 그것의 치명적인 단점을 나는 먼저 명확히 밝힐 수 있다. 그것은 내 스타일이 채 확립되기 전에 허겁지겁 남의 스타일이나 대충 걸친 주제에 자기가 표현하는 방식이 되게 세련되거나 괜찮은 양 착각하게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필사는 노력의 과정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흉내내는 사람으로부터 크게 진정성을 느끼긴 어렵다는 일반적인 공감대의 기준을 고려한다면 '방향성'의 사전 설정은 꼭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무얼 위해 필사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리 마련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일개 블로거로서 상당히 주제넘은 조언이지만, 필사할 때는 작가의 생각 전개 방식을 염두에 둬야지 글쓰기 스타일링에 방점을 두고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방심하고 퍼질 때마다 찾아 읽는 미국의 작가 ‘라이언 홀리데이’는 언젠가 창작(글쓰기)의 '목표 대상'을 분명히 하라면서 ‘당신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들이 항상 달그락거리며 돌아다니도록 둬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 여러분이 필사를 하는 동안 머릿속과 마음속을 계속 달그락거리는 것의 정체가 그저 ‘문장의 스타일’이라면 그냥 한 번쯤은 속는 셈 치고 의식적으로 다른 것(예를 들면, 작가가 질질 끌고 가던 생각을 잠시 멈추거나 다르게 바꾸는 지점과 그때의 호흡법)에도 관심을 집중해 보길 권한다. 필사를 하는 목표와 목적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에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딱히 적절한 예시는 아닌 것 같지만, 스포츠 심리학에서도 운동선수가 '목표'가 아닌 '행동'에 자꾸 신경을 쓰면 그 결과가 대부분 좋지 않게 나온다고 했다. 필사하기 위해 필사한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스타일이고, 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성과는 느리지만, 누군가에게 서서히 확신을 줄 거라는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말을 나는 지극히 아끼며 언제나 가슴속에 사표처럼 품고 있다(우리는 언제나 사표가 마렵다).


솔직히 어떤 영역에서건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나마 '필사'를 통해 최고 작가의 끝내주는 글쓰기 스타일을 겉핥기로나마 느끼고 또 나의 저급한 글쓰기와 비교하면서 계속 찌릿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유튜브 채널로 팔자를 바꾸는 이 시대에 어느 누가 '필사'라는 정성스러운 노력을 기울이겠는가) 그 자체로 그것의 최고 장점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감각적인 대영상의 시대에 무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부지런히 노력하는 모든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우리 오래 또 길게 같이 갑시다! 존버는 승리한다니까요.


글쓰기와 글 읽기의 시대는 분명 다시 올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함께 읽기 좋은 글]

https://brunch.co.kr/@0to1hunnit/263


[함께 들으면 괜찮을지도 모를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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