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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13. 2023

중2병

도 제때 걸려야지 뒤늦게 오면 힘들다.



가끔 현실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실체는 개뿔이고 이상한 이상만 좇던 대학 시절엔 그 기분이 더 했다. 특정 직업을 동경하며 현실 감각을 잃었을 때, 때마침 눈앞에 나타나 준 그들을 올려다보며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고 흐지부지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직업)을 내 손안에 꼭 쥐리라 다짐했다. 기왕이면 이름난 곳이어야 했다. 그땐 그것을 이루는 것이 하나의 직장인이 되는 일에 불과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꾸만 까먹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결국 실패에 성공했다. 이후 나는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반쯤 증오했던 것 같다. 가뜩이나 짜증 나는 건 그것들이 우리 일상의 면면을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싸고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짝사랑을 오래 하다 실패하면 때로 증오심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구나 그러려나? 나는 지나간 사랑을 원망해 본 일이 없기에 그 이상한 기분을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것'은 광고일이었고, 이상하게 증오심이 생긴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서른 살이오.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그걸 명예라고 하기에는
이미 다섯 살을 더 먹었소.

-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2009년 1월, 대학에서 ‘입학 전 시험’을 봐야 한다고 공지하길래 인천에서 부지런히 갔다. 시험이 끝나고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명동이었다. 일본어로 호객을 하는 상점을 여러 개 지났다. 새해를 맞은 노점의 불빛은 더 반짝거렸고 줄지어 어지럽게 번졌다. 성인이 되었으니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의 서울 생활이자 성인 생활이 본격 시작된 곳은 명동이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한 시절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소 말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 피츠제럴드 <광란의 일요일>



군에서 제대하고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아무나 붙잡고 일단 사귀고 보던 신입생 시절의 막무가내 연애는 아니었다.  번인가 헤어지고 미친 짓도   했으나 서로를  잊어 자꾸 다시 만났다. 그렇게 20대의 전부를 함께했다. 아니, 그것을 초과해 만났다. 대학 시절에는 그녀와 명동 데이트를 자주 했다. 한파가 절정이던 한겨울에 남산타워 아래에서 입맞춤을 하고 명동에 내려가 칼국수를 먹은 어느 , 나는 신나서 그녀에게 닥터마틴의 부츠를 하나 사주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다고 방방 뛰었다. 물론 칼국수를 먼저 먹고 입맞춤을 하진 않았다. 마늘김치가 자아내는 입냄새는 존내 최악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책에는
나 자신이 거기서 얻는
흥미보다도 알리사가 즐겨할
재미를 먼저 생각하여
그녀에게 도움이 되도록
여러 표시를 해두었다.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그녀를 꽤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내 번호를 차단한 걸 알면서도 공연히 메시지를 보냈다. 1은 지워지지 않았고, 파란 문자를 전송해도 회색 문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같은 공유 오피스를 쓰던 아저씨 하나가 자꾸 나를 귀찮게 굴었다. 나보고 왜 여자친구가 없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채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니까 그 아재는 나보고 '지랄'하지 말라고 했다. 그날은 밥맛이 없어서 점심과 저녁을 먹지 않았다.




내가 성숙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 거라면,
나는 그것 때문에 울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한
성숙하다는 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 존 업다이크 <달려라 토끼>




'일본어' 소리로 가득하던 명동이 '중국어' 간판으로 도배되었을 때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다. 백수짓을 하다가 처음으로 정규직을 갖게 되었을 때, 원하던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축하한다면서 여자친구가 자기가 키우던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나는 그녀와 강아지를 차에 태우고 인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때 그녀는 내가 나중에 유명해져서 책을 쓰게 되면 자기 이야기를 꼭 넣어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웃었고, 강아지는 가끔씩 발작적으로 짖었다. 첫 취업 이후에는 하는 일이 힘들고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에게 자주 투정을 부렸다. 그녀는 그래도 다 받아주었다. 뒤늦게 미안해, 그런데 나 유명해지긴 역시 글렀어!




원래는 건실한 청년이었으나
오랫동안 제작조수라는
변칙적 입장에 놓이게 되는 사이에
하는 일이나, 생각하는 일이
비뚤어지고 말았다.

- 피츠제럴드 <라스트 타이쿤>




이십 대의 나는 역시 글쓰기를 즐겼고 학교 과제든 발표 자료든 자기소개서든 에세이든 그녀에게 모두 보여주었다. 그녀가 읽고 재밌어하거나 '이건 좀 오빠 글 같다'라고 말하면 그때 나의 글은 비로소 통과되는 것이었다. 내가 쓰는 글에 어떤 뚜렷한 색깔이 존재한다면 그건 어쩌면 그녀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기 비밀을 털어놓은 후
반드시 그 사실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이제 주변 친구들도 전부 다 결혼하는 이 마당에,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들먹이며 추억팔이를 하는 꼴이 추하지만, 오랜 익숙함에 속아 진짜 소중함을 잃은 못된 경험이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얼마나 큰(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는지를 되새기고 싶어 이 글을 나는 써본다. 누가 보라고 쓰는 게 아닌 셀프 박제의 개념으로다가 말이다. 서머싯 몸은 <면도날>에서 '남자에게 스쳐가는 관계는 감정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진하게 오래 사랑한 경험만이 (그것이 결국 실패로 끝나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킨다고 직접 경험했으며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진심이 아니었던 모든 사소한 순간은 따로 쌓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흩어져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깨지기 쉬운 거야.'
그녀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조각은 남아서
입술에 맴돌고
말로 전해질 수도 있다.

새로운 사람의 말,
배운 부드러움은
다음 연인을 위해
소중히 하면 되는 것이다.

- 피츠제럴드 <오월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원하던 직업을 얻지 못했을 때, 내가 그것과 연관된 것들을 반쯤 증오했던 건 혼자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짝사랑했을 뿐 돌려받을 무언가를 거기에 맡겨놓지 않았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무엇보다 애초에 내가 준 사랑을 '되돌려 받을' 순간을 기대했다는 것 자체에 큰 잘못이 있었으니까.


원하던 걸 쉽게 이루거나 가진 사람은 그것을 동경하는 이의 열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동경하는 사람은 그것을 쉽게 가진 이의 배부름에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전자이자 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가 생각보다 쉽게 이룬 것들과 무한히 동경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을 나눠 노트에 빼곡히 정리해보려고 한다(다만 직업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이해했을 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이성은 끊임없이
마음과 맞붙어 싸워서
자주 그 마음을 제압하곤 한다.

- 앙드레 지드 <전원교향곡>



참고로 이런 글을 두고 '쓰나 마나 한 글' 또는 '일기는 네 일기장에나 써'류의 글이라고 부른다.


중2병도 제때 걸려야 탈이 없지 뒤늦게 오면 답도 없다.



[그리고 오늘의 추천 노래]

노래도 사뭇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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