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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17. 2018

군대에서 나는 신 둘을 모셨다.

탕웨이가 왜 그리도 좋았을까.

   군 복무 시절, 탕웨이는 내게 신이었다. 당시 나는 신 둘을 모셨다. 중국 여배우 탕웨이와 문학이었다. 나의 관물함은 온통 탕웨이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다종다양한 문학책으로 가득했다. 가끔은 내게 관물함에 붙어 있는 저 사진의 주인공이 너의 여자친구냐며 진지하게 물어오는 윗분들에게 그렇다, 정말로 예쁘지 않냐, 라며 너스레를 떨고 주접을 떨기도 했다. 또한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 가던 소셜 플랫폼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내 사진첩은 탕웨이의 잘 나온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정말 정신을 못 차렸던 것이다.
  앞서 밝혔듯 당시의 나에게는 탕웨이를 제외하고도 또 하나의 신이 존재했다. 그것은 문학이었다. '시이불견 청이불문'이라는 글귀를 관물함에 크게 붙여놓고는 바보상자를 보느니 문학책을 읽으며 세상을 다르게 보겠다며 당당하게 선언했었다. 하지만 보이는 풍경이 매일 같기만 한데 책 몇 권으로 어떻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겠느냐, 라며 뒤돌아 슬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은 어찌 됐든 느리게 기던 국방부 시계를 빠른 체감 속도로 힘차게 돌려 주었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달리 보도록 도와주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자행한 앙드레 지드와 알베르 카뮈의 작품 필사는 도대체 얼마나 생각 없이 행했던 것인지, 책 몇 권을 필사하고도 소설의 내용을 단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였다. 그만큼 나는 지루했던 것이고 또한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내가 비록 맹목적인 마음가짐으로 문학을 읽고 필사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 막연한 확신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일곤 했는데, 그것은 문학 읽기의 실용적 효용이나 종국의 쓰임새 따위에 대한 믿음은 아니었고, 그저 지금 죽어도 나는 여한이 없다는 일종의 자기 암시였으며, 내가 그래도 인생을 쓰레기같이 산 것은 아니라는, 심지어 잘살고 있음을 확인해 줄 미래의 알리바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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