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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12. 2018

나의 기준으로 살면 그만이다.

스눕피의 단상단상(6)

이 세상은 어찌 됐든 나의 기준에 맞게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도중에 수염을 깎으면 도리어 수염이 잘 밀리지 않는 경험을 자주 한다. 반대로 아침에 일어나 수염에 물을 몇 번 대충 축이고는 아직 바삭바삭한 상태의 수염을 감자 껍질 깎듯이 사각사각 밀어내면 수염이 뿌리째 뽑힌 듯 아주 깨끗하게 밀린다. 그럴 때면 남성 잡지의 그루밍 코너에서 말하는 면도 전 스팀 효과가 '구라'였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머리를 감을 때도 마찬가지다. 샴푸의 친절한 사용 설명에 따라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로 덜어내어 젖은 머리에 비비면 거품이 잘 일지 않아 민망하다. 내 두피의 상태가 지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500원짜리 동전 3개 정도의 내용물이 나오도록 펌핑해줄 때 비로소 적절한 양의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적당량'을 덜어내어 사용하라는 불친절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친절하게 느껴지는 사용 설명을 담은 샴푸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남성의 평균적인 머리 길이를 고려해볼 때 나의 샴푸 1회 사용량은 사용 설명 속 '적당량'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성격의 이야기이지만 스마트폰(아이폰)을 사용할 때도 나는 오후 6시나 7시가 되면 'Night Shift'를 활성화하여 디스플레이 모드를 바꿔버린다. 친구들이나 가족은 나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는 사용하기에 화면이 너무 컴컴하고 답답하지 않냐고 묻곤 하는데, 나는 눈이 금방 피로해지는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야간 모드로 설정하고 낮춰 사용하는 것이 모쪼록 편리하고 좋다.


어릴 때 내 옆에 꼭 붙어 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 듣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따라 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따라 읽던 사촌 남동생이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나의 취향으로부터 도피하여 자기만의 취향과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걸 보며 문득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부단한 노력의 연속인 것일까. 뭐, 대단한 기준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 미국에 있는 사촌 남동생이 다음 주에 한국으로 놀러 온단다. 나는 남동생에게 너는 머리 감을 때 샴푸 펌핑을 몇 번 하느냐고 물어볼 예정이다. 만약 그가 '3번'이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나와 10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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