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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r 26. 2023

스캇의 빈티지 패션 단상

트래비스 스캇, 큐레이션, 패션 브랜드 UNDER THE SIGN



그래서 제안한 대로 잡지 <뽀빠이>에 일 년 반 동안 티셔츠를 소재로 연재했다. (중략) 컬렉션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티셔츠는 어느 것인가? 그건 역시 'TONY TAKITANI' 티셔츠다. 마우이 섬 시골 마을의 자선 매장에서 이 티셔츠를 발견하여 아마 1달러에 산 것 같다. 그리고 '토니 타키타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 내 맘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을 썼고, 영화화까지 됐다. 단돈 1달러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한 투자 가운데 단연코 최고였을 것이다.

하루키 <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 중에서



재팬 스캇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니 트래비스 스캇이 조던 행사 차 일본에 간 모양이다. 나이키 협업 때문인지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후지와라 히로시도 만나고, 세인트 마이클의 관계인도 만나며 아무튼 특유의 얼빠지고 넋을 잃은 표정을 한 채 이런저런 사람들 옆에 공손히 서서 고개를 푹 숙이거나 입을 쫙 벌리고 개구쟁이처럼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더라.


무려 아이콘에 등극한 스타들은 삶의 모든 면면에서 계산된 행동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예우하듯 깔맞춤 미쳤누?



빈티지 스캇


그런데 역시 내 눈길을 끈 것은 역시 그의 꿋꿋하디 꿋꿋한 빈티지 티셔츠 스타일링이었다.


자기가 정한 스타일 방침(허용 범위)이 아주 진한 모양인지 실수로라도 그 밖엔 점 하나 찍지 않으려는 듯 철저히 계산된(으로 넘겨짚는) 트래비스 스캇 패션의 그 징한 일관성, 자기 몸선을 잘 알고 그것과 궁합이 좋은 아이템을 기가 막히게 선별하는 슈퍼 센스, 이번에는 물이 잘 빠진 2004 S/S 시즌의 '라프 시몬스' 스웨트셔츠와 같은 시즌의 '넘버 나인' 스켈레톤 맨 티셔츠를 골랐다.


나는 늘 트래비스 스캇과 그의 스타일리스트가 지닌 심미적 안목(과 많은 돈) 그리고 종목 선정 능력(찰떡같은 것도 골랐군!)을 훔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갓 지어낸) 이런 말이 문득 떠올랐다.


왕좌에 오르려는 자, 훌륭한 큐레이터가 되어라!


동서지간의 핑크 플로이드 대란, 이른바 알잘딱깔센 동서 큐레이션!


이 세상 어딘가엔 죽지 못해 골골대며 사는 이미 너무나 많은 옷이 있다.


세컨 핸드와 빈티지 패션을 삶 속에 들이는 것은 패션 소비의 가장 중요한 아웃풋인 '멋'과 그 이상의 '가치'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리고 빈티지 쇼핑이란 옛것을 고르고 골라 그것에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며 (자연스럽게)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부캐를 얻어가는 빠른 길이기도 하다.



underthesign.fr



언더 더 사인


파리 기반의 패션 브랜드 'UNDER THE SIGN'의 패션 프로젝트, 그것의 모토는 다름 아닌 'Rehabilitation(갱생)'이다.


그들은 빈티지 의류와 데드스톡 패브릭을 조합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하나 만들고, 개체 차이에 따른 차별화를 브랜딩으로 활용한다. 이전 창의의 결과물을 새롭게 해석해 불멸의 가치를 제안하는(적어도 그렇게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무려 갱생시킨다면서 말이다.



underthesign.fr



징한 의미 부여


감동 체험을 공유하지 않고는, 또 내가 열성적으로 행하는 어떤 일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는 편하게 잠을 못 자는 성격이라 근 몇 년 남이 입던 옷을 주워 입으며 느낀 행복과 그것의 매력을 전하기 위해 자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트래비스 스캇도 데려오고, 벨라 하디드와 마크 칼만도 데려오고, 칸예 웨스트도 데려오면서 발악을 하는 것이다.



"이거 도로 가져가려고? 어림도 없지!"



누더기 쇼핑 스캇


여길 보고 저길 봐도 작금의 빈티지 패션 트렌드는 진짜 단점이 없고 빈틈이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매일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번 일본 여행 중에 빈티지 티셔츠 무더기를 하나하나 들추며 즐겁게 쇼핑하던 트래비스 스캇의 열정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었다.



멋진 빈티지 티셔츠와의 우발적인 만남에 어울리는 노래 가사: 안녕은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우리가 처음 만날 때처럼 말이야.



특히 그가 오른손으로 꽉 잡고 놓아주질 않는 티셔츠는 그의 동서이자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은 인생 선배이자 형아 '칸예'의 1집 앨범 <The College Dropout>(2004)의 공식 머천다이즈 티셔츠인데, 이것만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그의 악력이 느껴져 감동적이었다.


아까 그 라프 시몬스와 넘버 나인 티셔츠도 그렇고, 스캇이 설정한 올해의 빈티지 패션 키워드는 2004년인가? 아무튼 조만간 어딘가에 칸예의 머천다이즈 티셔츠를 입고 얼빠진 표정으로 등판할 그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을 쓰며 계속 듣던 노래]

What a glorious time to be free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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