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불만족, 미래 대만족,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
프랑스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쿠레주'는 국립 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공부한 토목 기술자였다. 예술 관련 직업 선택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아버지의 강권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는 또한 2차 대전 기간에 프랑스 공군의 파일럿으로도 복무했다.
그는 패션의 럭셔리 사이드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인간의 몸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옷의 기능성을 높이는 것이 디자이너가 제공할 수 있는 지고의 가치라고 말했다. 그래서 패션 디자인이란 사실 비행기 설계나 자동차 디자인 작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부하 직원 50명을 거느리는 엔지니어 리서치 파트의 수장으로 일하던 스물여덟의 그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길로 그가 동경하던 쿠튀리에 ‘발렌시아가’의 패션 하우스에 무급 견습생으로 들어가 내리 10년을 함께 일하며 배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성 어시스턴트와 결혼까지 골인한다.
그는 발렌시아가에서의 10년을 회고하며 첫 5년은 매일이 배움의 순간이었으나 이후 5년은 시간 낭비였다면서, 그곳을 떠나며 어떤 의미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스스로 5년의 시간을 설정했다고 말했다.
1961년, 쿠레주는 발렌시아가의 물심양면 도움과 함께 동명의 레이블을 설립한다. 이후 스스로 약속한 5년을 포함한 10년 간 그가 보여준 급진적인 쿠튀르 패션 스코어는 실로 강력했다.
그가 제안한 미니 스커트, 여성용 팬츠, 고고 슈즈, 오픈 토, 컷 아웃, 메탈릭 소재,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인공 오픈 소재 등은 ‘급진’이나 ‘미래 지향’ 등의 키워드와 결부되어 업계의 센세이션을 불렀고 수많은 기성복 카피를 양산했다.
한편 엔지니어로도, 디자이너로도 성공적 커리어를 일군 쿠레주는 ‘패션계의 르 코르뷔지에’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건 정작 쿠레주 본인은 인생의 단 한 가지 후회로서 ‘건축일'을 꼽았다는 점이다.
그의 평생 아이돌이자 패션 크리에이티브에 지대한 영감을 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전하는 리스펙의 메시지이자 못 가 본 길에 대해 보통의 인간이 품는 본능적인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By the way,
2020년대에 들어와 ‘쿠레주'는 벨기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니콜라스 디 펠리체’가 진두지휘하며 제8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재밌는 점은 ‘쿠레주’에 오기 전, 그가 ‘발렌시아가’에서 6년 넘게 여성복 디자인을 담당했었다는 점이다. 또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이미지 메이커’보다는 ‘테크니션’으로 바라보길 좋아하는 그의 가치관도 창립자 '앙드레 쿠레주'와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얼마 전 진행된 쿠레주의 23F/W 컬렉션에서 쇼의 시작을 알리는 두 여성 모델은 두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에 정신을 집중하며 걸어 나왔다.
한밤 중의 바(Bar)에서 스마트폰 화면에 열중한 친구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니콜라스 디 펠리체가 런웨이 위에서 공표할 상징적인 시대상을 확인한 것이다.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뿌연 기체로 자욱한 무대 위에선 AI 여성의 보이스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Is the sky blue?
리얼 세상이나 좀 살면서 폰 말고 하늘 좀 올려다보라는 메시지인지, 그보다 심오한 내용을 함축하는 건지 나로서는 좀체 알 수 없었으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경고하는 듯하여 여러 생각을 불렀다.
다시 쿠레주 이야기, 60년대의 그는 과학과 기술, 건축에 깊이 몰입하며 과거의 관습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최신의 미학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거나 기하학적 모양을 구현해 다가올 새 시대의 역동성을 표현했고, 고유의 메탈릭 실버 패션을 선보여 우주 패션의 시대를 열었다.
이런 그의 패션 디자인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은 ‘앤디 워홀’은 모두가 쿠레주 옷을 좀 입었으면 한다면서 그를 추앙하기도 했다.
심지어 쿠레주는 60년대 후반에 ‘La Bulle’라는 미래지향적 자동차의 프로토타입 디자인도 공개한 정말이지 투머치 쏘머치 퓨처리스틱 맨이었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수억 가지의 아이디어라면, 그 인간의 생각이 만드는 현실은 생각보다 더 정교하고 위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떤 작가는 거미집 같은 인생 속에서도 언제나 누구나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쿠레주의 일관성은 역시 미래였고, 미래 한 놈만 패던 디자이너의 멋진 디자인은 2023년에도 여전한 빛을 발하고 있다.
미래를 앞서 산 앙드레 쿠레주의 패션 디자인은 토목 엔지니어로서의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끌어내고, 과거의 관습과 결별하겠다는 미래 의지가 불러온 (인류) 유산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결론,
쿠레주와 발렌시아가의 조합은 생각보다 꽤 근사한 스토리텔링 브랜드 코디네이션이다.
발렌시아가와 쿠레주를
예쁘게 조합하셨네요.
오늘은 패션 컨셉이 뭐죠?
사제지간입니다.
[그리고 함께 듣고 싶은 노래]
[함께 읽으면 건강에 좋은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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