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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탱 클랜의 데뷔 앨범 25주년 기념 아티클

스눕피의 미힙 늬우스

by 스눕피

지난 11월 9일은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 그룹 우탱 클랜의 데뷔 앨범 'Enter the Wu-Tang(36 chambers)'의 발매 2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걸 잘 아는 지인들은 가끔 제게 힙합 앨범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늘 이 1993년작 구닥다리 앨범을 추천합니다. 구닥다리라고 해도 모두 같은 구닥다리는 아니잖아요. 며칠 전에는 심야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약간은 아쉽게 그려낸(하지만 뭐, 이런 류의 영화는 음악을 들으러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청각용 영화인데, 퀸의 오리지낼러티와 크리에이티비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새 버렸는데, 어쨌든 우탱 클랜의 이 전설적인 데뷔 앨범도 만만치 않은 물건입니다. 뉴욕 동부 힙합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고, 힙합 씬의 하나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 옛적 서태지 선생님의 '컴백홈'이나(물론 이 노래는 사이프레스 힐에 더 가깝긴 하지만) HOT 선생님들의 '전사의 후예'도 우탱 클랜의 구름 아래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병영 생활을 만끽하고 계시는 지드래곤 선생님도 우탱 클랜의 음악을 듣고 힙합에 눈을 떴다고 하던데, 늘 절감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 같습니다(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아무튼 우탱 클랜의 공식 트위터 계정이 미국 Spotify.com의 우탱 클랜 데뷔 앨범 25주년을 기념한 피처 기사 하나를 공유했는데, 딱히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우탱 클랜과 그들의 1집 앨범이 갖는 의미를 깔끔하게 잘 설명하고 있는 점이 좋아서, 직접 번역하여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이런 글을 몇 분이나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이런 번역 기사를 읽으며 어린 시절 힙합을 공부했던 시절이 있기에, 백수의 강점인 새벽 시간 활용을 통해 기사를 번역하고 다듬어 소개해 봅니다.

저도 실로 오랜만에 우탱 클랜의 1집 앨범을 꺼내어 먼지 쌓인 파이오니어 오디오의 전원을 연결해 들어봤는데, 역시는 역시더군요.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는 언젠가 사랑이 변하더라도, 열심히 사랑했던 그 좋은 기억을 교훈 삼아 다음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랑을 전해주면 된다고 어떤 소설에선가 말했었는데, 좋은 음악의 가치는 도대체가 변하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군요.


*(번역) 저작권 관련하여 조금이라도 문제가 된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Soul Music and Sirens

우탱 클랜 1집 앨범, 그 뒷 이야기.


Jayson Greene.


1993년, 우탱 클랜은 저돌적인 메시지와 소울풀한 사운드를 담은 그들의 데뷔 앨범 ‘Enter the Wu-Tang’으로 힙합 씬을 강타한다. 그들은 고통이 만연하고 정치적인 무관심이 심화되던 뉴욕, 그 붕괴의 시대 속에서 1960-70년대의 소울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그들의 스테레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Booker T.와 the M.G.’s의 ‘Children, Don’t Get Weary’와 Gladys Knight & The Pips의 ‘I Feel A Song (In My Heart)’는 폭력과 소란 그리고 절망이 마치 창 밖 빈민 공동주택의 화재처럼 번져나가던 때에도 그들에게 평화와 긍정, 유연함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우탱 클랜은 이러한 비현실성과 부조화의 충돌 속에서 그들의 세계를 구축했다.


‘Enter the Wu-Tang’은 지저분하지만 매혹적이었다. 또한 의도적으로 어두웠고, 이해하기 힘든 상징들로 인해 난해했다. 우탱 클랜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로 노래했고(고향인 뉴욕의 자치구 ‘Staten Island’를 'Shaolin'으로 바꿔 부른다.), 또한 중국의 쿵후 영화와 손자병법으로부터 커다란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자신들만의 신화에 따라 삶을 살아갔다. 우탱 클랜이라는 그룹 이름도 '적이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적의 움직임을 예상'하려 들던 우당산(Wudang Moutain)의 검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곧 살인벌(Killer Bees) 떼거지였다.


1993년, 멤버 RZA가 Loud Records와의 역사적인 계약을 성사시키던 때(계약을 통해 멤버 개개인이 경쟁 레이블과도 각자의 솔로 앨범을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멤버들은 그들의 언더그라운드 히트 싱글인 ‘Protect Ya Neck’의 카피를 찍어내기 바빴다. 이후, 그들이 Loud Records와 함께 발매한 첫 앨범 ‘Enter the Wu-Tang’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 앨범은 그들을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려주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도약은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어떤 이미지로 비치도록 할 것인가?, 어떤 음악으로 들리도록 또한 느껴지도록 할 것인가?). 그 결과, 그들은 힙합 씬을 장악할 수 있었고, 결국 ‘변화’(멤버 Ghostface Killah가 앨범의 시작 부분에서 외쳤던 ‘PLO-style’)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거칠고, 투박하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멤버들이 많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고유한 전략을 준비해왔지만, ‘꾸미지 않은’, ‘예측할 수 없는’,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비치길 원했다.


멤버 RZA는 말했다. “니들 인생의 딱 5년만 나한테 걸어봐. 내가 너네를 정상에 데려다줄 수 있으니까.” RZA의 전략은 쿵후 영화였고, 그것은 곧 괴상하고 멍청해 보이는 방법으로 적을 물리치는 ‘취권’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RZA는 단순히 이 통제하기 까다로운 그룹 우탱 클랜의 리더에 머무르지 않았다. 우탱 클랜의 미래는 RZA에게 달려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음악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음질에 까다롭게 굴지 않는 완벽히 새로운 스타일의 랩 선수였다. 당시 웨스트 코스트 힙합 씬의 닥터 드레는 그가 프로듀싱한 음반의 모든 트랙을 마치 신형 벤틀리처럼 빛나도록 섬세하게 다듬었다. 닥터 드레는 이렇게 말했다. “Sit back, relax, and take this ride.”

하지만 우탱 클랜의 세계에서 ‘편안히 앉아 긴장을 풀고 쉰다’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청자로 하여금 야생의 눈을 뜨거나 정신줄을 놓기를 바랐고, 몸속에 흘러 다니는 호르몬과 부딪혀 싸우거나 그것에 굴복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RZA는 부패한, 녹슨, 거칠게 다뤄진 느낌의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The Intruders의 ‘Cowboys to Girls’와 같은 깨끗하고 심포닉한 소울을 담은 노래의 일부를 가져와 뒤집힌 쓰레기통으로부터 흘러넘친 듯한 느낌을 줄 때까지 야성적으로 바꿔 버렸다. 그가 만들어내는 드럼 소리는 자동차의 폭발음을 닮았고, 그의 거친 손길을 통해 만들어진 강력한 소울 뮤직은 그저 shaolin(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내기엔 너무도 완벽했다.


9명의 래퍼는 각기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룹의 비전(슬픔과 패배로 가득한 필사와 결의의 정신)만은 순수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앨범의 상징적인 곡 C.R.E.A.M에서 멤버 Raekwon의 오프닝 벌스는 시시한 범죄 인생의 일면을 보여준다. Raekwon의 이런 벌스를 보라.

’농구 코트에서 백인 놈들을 덮쳤지.(역자 스눕피 첨언: 멤버 RZA가 말하길 당시 많은 흑인들이 인종 간 갈등이 만연하던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의 New Dorp High School 농구 코트로 농구하러 갔다고 한다.) ’ 그래서 결과는? ‘뭐, 내 인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


RZA는 1967년에 발매한 Stax/Volt 레코드의 걸그룹 The Charmels의 오래된 히트송 ‘As Long As I’ve Got You’를 샘플링하여 ‘C.R.E.A.M’의 비트를 만들게 된다. RZA의 손을 거치면서 이 ‘사랑앓이’ 노래 ‘As Long As I’ve Got You’는 그저 ‘깨져버린 꿈’이 되어 버린다. 그는 노래의 처음 2초를 낚아채어 이 피아노 선율을 C.R.E.A.M 트랙에 녹였다. 노래는 조금도 유난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멤버 Inspectah Deck은 이렇게 외치며 그의 벌스를 시작한다. ‘22년 동안 존나 힘들었고, 여전히 난 개고생 중이라고.’

이 노래를 같은 시기에 발매된 스눕독의 쿨하면서도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꽤 현대적인 느낌의 트랙들과 비교해 들어보라.


그야말로 강력하게 씬을 뒤흔든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과장법 없이 이런 종류의 앨범에 대해 말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Enter the Wu-Tang’은 레알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 앨범이 발매되기 전의 뉴욕 랩이란 것은 Dr.Dre와 Snoop Dogg의 G-Funk(역자 스눕피 첨언: 신디사이저 소리가 매력적인, 펑키하며 멜로디컬한 리듬이 특색을 이루는 서부 힙합 노래 스타일의 하위 개념이다. 닥터 드레나 스눕독 등이 대표적인 인물.)가 전국을 강타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차츰 부드럽고, 단정하고, 재지한 풍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Enter the Wu-Tang’은 이렇게 그저 모호한 스타일의 뉴욕 힙합 씬을 구조하고, 미학적 대변혁을 불러일으켰다. 비로소 뉴욕의 힙합 씬은 어둡고, 부산스럽고, 엉클어졌으며, 감춰지거나 까발려진 위협으로 가득한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당시 뉴욕 랩 앨범의 50%는 재미없고, 구시대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만일 팝 컬처의 한 순간(앨범)이 적확한 타이밍에 충분한 영향력과 함께 히트한다면, 그것은 해가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게 될 것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나 레드 제플린의 첫 LP를 생각해보라. ‘Enter the Wu-Tang’이라는 이 기념비적인 작품도 이제 자신의 길을 따라 걷게 될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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