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여름나기 단상(feat. Gimaguas)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스로 준 숙제를 풀듯 다양한 책을 찾아 읽었다. 주로 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수필과 에세이도 좋아했다.
존경하는 유명인의 일상과 생각을 훔쳐보는 일은 정말 짜릿했다. 그들이 비밀스럽게 털어놓는 일상적 이야기 속에서 살짝살짝 비치는 인간적인 매력을 나는 사랑했다. 그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면 언젠가 닮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심도 담았다.
그래서 어떤 책은 전 문장을 달달 외우듯이 반복해 읽었고, 누군가 아무 페이지나 열어 보여도 상황 설명이 가능한 소설이나 에세이가 적어도 다섯 개는 되게 생겼다. 그땐 좋은 쪽으로 큰일이었는데, 요샌 여전히 이러고 사니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지겹도록 반복해 좋아하면 그것의 스타일이 몸과 마음에 밴다.
지독한 덕후의 하나로서 내 오랜 지론 중 하나는 개성 있는 사람이 되려면 뭘 싫어할 시간에 이미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 아무래도 더 낫겠다는 것이다. 빈정대고 냉소하며 잘난 체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경탄하며 더 감사하는 것이 무려 정신 건강에도 더 좋다는 걸 체감했다.
누가 때려죽인다고 해도 팔짱 끼고 지적하며 그것이 무척 센스 있고 세련된 멋이라고 착각하는 삶으론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더 자주 감동하고 더 많이 칭찬하는 삶을 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익무해한 일은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걸 보고 있을 젊은이들에게 특별히 부탁합니다.
제발 냉소적으로 살지 마세요.
저는 냉소를 너무 싫어합니다.
참고로 냉소주의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자신이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 그대로 다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정말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게 굴면
개쩌는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정말로요.
개쩌는 일이 일어날 거예요.
- 코난 오브라이언
하지만 싫어하고 부정하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것이 내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여름의 날씨다.
바로 다음 문단에서 이렇게 태세를 전환하며 무언가를 격렬히 싫어하는 나의 이중성, 하지만 이것이 바로 나의 전매특허, 내로남불 글쓰기 스킬이다.
덥고 습해 땀이 줄줄 흐르는 환경을 나는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가끔은 개츠비의 데이지마냥 도끼로다가 보이는 창문을 죄다 깨부수는 상상도 한다. 언제나 실패에 성공하지만 말이다.
창문을 하나 더 열어.
전화해서 도끼를 달라고.
- 데이지
하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감상하고 컬러풀하게 즐기며 아름다운 감각을 선물하는 것들이 있기에 기분이 쾌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만남의 순간에는 시원한 음악과 함께 그것에 더 집중해 즐기고 싶어 진다.
Gimaguas(히마와스)는 카리브해의 말로 ‘똑같은', ‘쌍둥이’를 뜻한다.
패션 브랜드 '히마와스'를 운영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태생의 쌍둥이 자매 디자이너 'Claudia(클로디아)'와 'Sayana(사야나)'는 태양이 쏟아지고 물이 첨벙 하는 스페인, 멕시코, 모로코, 포르투갈에서 한가롭게 즐기는 여름휴가의 감각을 '옷'으로 빚어낸다.
한시적으로는 아쉬우니까 그때의 느낌을 365일에 저며 넣는다는 브랜딩 인사이트도 신선하다.
휴양지에서 자연스럽던 패션도 동네만 오면 부자연스러워지는 인류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부적 같은 패션, 그녀들의 기분 좋은 색 놀이는 지난 여름 휴가의 잊을 수 없는 빛과 소리와 냄새를 자꾸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기분을 째지게 한다.
그리하여 나 같은 여름철 잔챙이의 마음도 저리게 한다.
서프 뮤직의 대부, 비치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인을 바닷가로 달려가게 하였고, 서핑에 빠져보기를 은근히 권하였으며, 관련 스토어에 비치보이스 앨범을 전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브라이언 윌슨은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서핑은 그저 남의 일이었을 뿐.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만든 물놀이 음악에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열광해왔다는 사실은 언제나 흥미롭다. 실제 체험의 감각을 압도하는 상상의 힘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그의 음악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그에게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본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예상외의 이야기로 번져나가는 글을 억지로 써 나가는 재미, 몹쓸 의식의 흐름, 그것이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는 개인 블로그 글쓰기의 지극한 재미일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이 무더운 여름에는 더 큰 감동이 필요한 법이기에 더 다양한 볼거리, 들을 거리, 읽을거리를 빨빨거리며 탐구해 더 인상적인 감동 체험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오늘도 덕분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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