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 에세이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지>
중학교 졸업식 날, 과학을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이 한 명씩 학생을 호명해 졸업장을 나눠주었다. 교실 뒤편에는 학부모와 관계인이 가득했다.
몇 번째인지 내 이름이 불려 벌떡 일어나 교탁 앞으로 나간 나를 선생님이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그녀는 교실 뒤쪽을 의식하면서 쿡쿡대고 말했다.
이 친구랑은
한 말이 없어서
할 말이 없네요.
(좌중 웃음)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중학생 스눕피의 중딩 시절은 그렇게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잘난 사람도 더럽게 많고 바쁘기도 더럽게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나 여기 있다고 자꾸 떠들고 악을 써야 그나마 눈길이라도 준다.
한 말이 있어야 할 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정이 안 맞는 사람에게 자기 어필과 자기주장이라는 인생 숙제는 곤욕이다. 국가 대표 INFP 겸 INFJ 호소인으로 만 33년을 살아온 내가 그것(곤욕)의 증명이 되어줄 수도 있다.
쭈그리 30년, 으이규, 자랑이다.
자기 증명은 지긋지긋한 일이다.
내 생각이 얼마나 성실하며 아이디어가 어찌나 화려한지 사람들 앞에서 말로 설명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내가 나를 잡아먹는 그 불쾌한 기분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건 적응이 안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똑똑한 사람들이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없는 사회적 타이틀에 목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얼마나 효과적인 처세술이란 말인가.
성실한 준비와 똘똘한 선택, 정말 존경스럽다.
반면 부질없어 보이는 것들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뭐 하나 건수를 찾아 심각하게 덕질하다가 인생의 대단한 비밀이라도 발견했다는 듯이 좋아 죽는 사람들도 있다.
세속적인 기준에서의 가치 평가 기준에는 도통 관심이 없거나 반대로 그것을 지독하게 열망했으나 미끄러져 남 모르게 자구책을 찾으며 땀 흘리는 성실한 사람들,
왜 나는 그런 삶의 모습에 더 이끌릴까.
애써 괜찮게 잘 살고 있는 거라며 자위하던 나의 버릇, 아니, 진심 때문일까.
자신이 분명 나보다 몇 수 위라고 생각하는 어른과 대면할 때가 있다.
가소롭다는 그 눈빛, 상대 말의 싹을 자르며 자기 주장하는 저 배짱, 자신의 현재 위치가 영원할 거라 믿는 저 낙관성,
그럴 때면 나의 쥐 죽은 듯 동면하던 승부욕이 웬일로 발동한다.
갑자기 뭐야? 아무튼 반가워! 가끔씩 오래 보자.
평생 멋지게 한 말이 없어서 대놓고 할 말이 없는 사람들,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표독스럽게 관심을 긁어모으는 가짜 인플루언서들을 말없이 지켜볼 뿐이지만, 그냥 웃고 넘기는 무던한 사람들, 그래서 더 예쁘고 정직한,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이 나는 좋다.
그리고 미움보다는 사랑이 훨씬 더 낫다니까, 그래, 사랑을 잊지 말아야지. 적당히 미워해야지.
사실 앞서 떠든 것들은 모두 다 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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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따끈따끈한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