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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ul 31. 2023

소녀 패션이 부풀면 어른을 매혹한다.

'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안 변하는 취향


취향이 안 변한다는 것을 확증하려면 어린 시절의 사진 몇 장을 꺼내보면 된다. 당시의 취향이란 대개 부모님의 영향인데, 어지간히 고집스러운 어린이만 아니라면 호오의 구별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돌고 돌며 방황하다 스포츠웨어에 안착해 나름의 개성을 갖게 된 요즘 내 일상 패션도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간 나를 예쁘게 입혀 준 엄마, 아빠의 정성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난다.



잠시, 주르륵



취향이란 표현도 송구한 천상계 스타 '지드래곤' 쌤의 어린 시절




Molly Goddard


웨스트 런던 출신의 여성 패션 디자이너 ‘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는 2020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을 홍보하며 일본 하라주쿠 청소년의 길거리 패션을 찍어 담던 매거진 <프룻>을 창간한 포토그래퍼 ‘쇼이치 아오키’의 스냅사진을 하나 활용했다.




사진에 담을만한 개성적인 청소년이 더는 없다는 이유로 2017년 폐간한 일본의 컬트 매거진 <FRUiTS>




색다른 초대장


사진의 배경은 영국 최고의 골동품 시장이 있는 런던 노팅힐의 포토벨로 로드인데, 청청 패션을 한 멋쟁이 아빠와 깔맞춤 코디 위에 러플 스커트를 얹은 귀여운 꼬마 소녀가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몰리 고다드의 2020 A/W 쇼의 인비테이션에 삽입된 그녀의 어린 시절, 쇼이치 아오키의 <STREET>(1992) 매거진에 실렸다. (이미지 출처: British Vogue)




이후 그녀는 그 사진이 컬렉션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밝혔는데, 그 사진 속 소녀는 다름 아닌 과거의 자신이라고 덧붙였다.




Molly Goddard SS15 (이미지 출처: Dazed Digital)




내 작은 믿음


잔재미의 시대, 진지하고 정직한 발상보다는 도리어 사적이고 엉뚱한 상상을 자꾸 하는 이에게 우연의 경사를 내려준다는 새 시대의 우주 원리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나도 꼭 그리로 갈 것이다).




Molly Goddard AW16 (이미지 출처: boymeetsfashion.com)




그녀의 이끌림


몰리 고다드는 그녀의 개취 패션인 <아동복>을 부풀려 성인 패션으로 탈바꿈하거나 영국 중노년의 이상한 패션 센스에 이끌려 컬렉션을 구상하는 기발한 디자이너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레이브 컬쳐로부터 영감을 받은 Molly Goddard SS17 (이미지 출처: wonderlandmagazine.com)



이상한 재미


되는 대로 집어 입는 아이들의 마구잡이 패션 스타일링과 오래된 가족사진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당시 아이들의 착장은 그녀의 착상에 불을 지핀다. 그래서 그녀는 영감을 얻으러 무려 키즈 매장에도 간다.


또 스스로를 ‘할미’라 부르며 오래된 재료와 기술을 새로운 아이디어와 섞는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위 두 가지 창의 작업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들이 <이상한 재미>라는 크리에이티브의 기준에 완벽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Molly Goddard AW17




그냥 한 번 해보기


센트럴 세인트 마틴 패션 스쿨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의 석사 과정에서 낙제한 그녀는 <그냥> 한 번 옷을 만들고 -> 파티를 열어 -> 재밌게 놀아보라는 남자친구의 권유로 엄마 집의 침실을 빌려 취업도 준비할 겸 일종의 포트폴리오 의상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런던 메이페어의 교회 홀을 빌려 파티 겸 쇼를 진짜 연다.




디자이너 '몰리 고다드' (이미지 출처: Riposte Magazine)




설익은 맛, 오히려 좋아.


쇼가 끝나고 유수의 편집샵과 바이어의 눈에 띈 그녀의 독창적인 핸드메이드 패션은 곧바로 든든한 날개를 단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가능한 기회를 일단 만들어 보는 것, 역시 모든 위대한 크리에이티브는 설익은 직감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게 2014, 여성복 디자인을 전문으로 창립한 동명의 패션 브랜드 <몰리 고다드> 2020 가을/겨울 시즌을 통해 남성복 라인까지 첫선을 보이면서 연이어 확장한다.



Molly Goddard’s Autumn/Winter 2020 (이미지 출처: anothermanmag.com)



시작점에 서서


몰리 고다드는 컬렉션의 출발선에 서서 모교의 <도서관>에 들른다고 말했다. 아무 책이나 꺼내 들기 위함이다.


오래된 포토북, 잡지, 인테리어 도서 등 그녀가 랜덤하게(본인의 표현) 뽑아 드는 책이 불러오는 알 수 없는 가능성의 신호는 <막연함>을 핑계 대는 모든 창작자들의 머리를 때린다.


또 틈나는 대로 골동품 샵과 레트로 빈티지 상점을 헤집는 그녀의 디깅 습관은 ‘레퍼런스’의 시대에 우뚝 서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모범답안 같은 삶의 양식을 증명한다.




dnamag.co



고유의 매력


실루엣이나 핏보다는 <소재감>이라는  끗에 열정을 태우며, 어린 소녀들의 옷을 과장스럽게 표현하는 그녀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tulle) 파티 드레스와 전통적인 수작업을 활용한 크로셰, 주름 기법, 스모킹이 가미된 옷들이 주를 이루는데,


거기에 환상적인 그녀의 <레이어드 기술>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고유의 완전한 매력(소녀스러운 재료가 소녀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전통적인 것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아이러니)을 완성한다.




MOLLY GODDARD SPRING 2022 RTW




늘 레퍼런스


평소 청바지와 트레이너 위에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그녀는 자신의 작업에는 언제나 ‘레퍼런스’가 있으며, 거기엔 특히 어린 시절의 추억(그녀가 입던 드레스)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글문을 열며 소개한 그녀의 추억 사진 증명은 일관된 취향과 입장의 알리바이(?) 같은 것이 아닐까.



Molly Goddard SS23 collection



너 N이야?



그 어떤 외부적 영향 없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고
흥분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
독창성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LURVE> 매거진 인터뷰 중에서




MBTI의 두 번째 문자가 <N>으로 추정되는 ‘몰리 고다드’의 2015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을 부른 그녀의 공상적 스토리텔링에 INFP와 INFJ를 두루 섭렵한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molly goddard's autumn/winter 2015 collection (이미지 출처: theupcoming.co.uk)



멋진 드레스를 입고 다음날 오전의 드로잉 수업을 기다리며 날밤을 깐 1950년대 영국 고급 기숙학교 소녀들의 밝은 아침, 다소 추운 날씨에 점퍼를 덧입은 '그' 소녀들을 상상했다던 매우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그녀의 공상 이야기,


커리어 초기를 물들인 그녀의 비주얼 아이디어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비롯됐다고 하니, 지금 그녀가 런던패션위크 스케줄에 못 박힌 대표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Molly Goddard (이미지 출처: Vogue.com)




기만 금지


핑크를 자주 활용하지만, 핑크의 고정관념을 털어내고, 소녀 패션에서 줄곧 영감을 받지만, 소녀 패션의 물귀신 같은 전형성을 넘어서는 이건 반박이 불가능한 천재적인 기만이 아닌가?




핑크하게 만들어도
터프할 수 있어요.

꼭 소녀다울 필요는 없죠.

<SSENSE> 인터뷰
with Rebecca Storm




[그래서 오늘의 한줄평]

선수는 스토리텔링하고, 하수는 의미 부여한다!



[그리고 오늘의 추천 노래]

"걸스, 걸스, 걸스! 저스트 블레이즈를 추억하며"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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