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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ug 09. 2023

남자는 울고, 여자는 마초

짧은 패션 에세이 with 산체스 케인 SANCHEZ-KANE



침묵


어떤 말을 하든 무슨 말이 돌아올지 훤히 보일 때 침묵하게 된다. 그래서 내 (비겁한) 특기가 침묵이다.


반대로 가끔 수다스럽다는 얘기도 듣는데, 그것은 일부 한정이다. 대화 상대가 너무 좋아 죽겠거나, 대화 소재가 취미나 취향에 관한 것일 때에 그렇다.



침묵을 부르는 피어싱



체념


나는 세상 참 무서운 것이 체념 뒤의 침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은 체념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철없는 바람이 있다.


원하는 것이 다 이뤄질 리 없고 바라는 주장이 다 관철될 턱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모습은 죽어도 보기가 싫다.


응, 나도 절대 안 숙일 것이다. 젠장!



멕시코 태생의 패션 디자이너 <바바라 산체스 케인>



바바라 산체스 케인


그건 그렇고(다소 갑작스럽지만 이게 내 스타일이다) 특유의 전위성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맨즈웨어 패션 브랜드 <산체스 케인>을 운영하는 멕시코 태생의 여성 패션 디자이너 ‘Bárbara Sánchez-Kane 바바라 산체스 케인’은 사실 동성애자다.


극도의 섹슈얼리티로 가득한 그녀의 패션과 대비되는 반전 같은 개인의 배경은 정말 흥미롭다.





반전이요, 반전!


멕시코 남부의 작은 가톨릭 타운에서 성적 고정관념과 제약 조건으로 둘러싸여 자란 그녀는 대학에선 심지어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하지만 졸업 무렵, 암 선고를 받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좇아 ‘패션’ 씬에 발을 들인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았어요.

<TUNICA Studio> 인터뷰 중에서



Sanchez-Kane Mexico City Fall 2022



멕시칸 헤리티지


그렇게 이탈리아 피렌체의 폴리모다에서 4년 수학한 ‘바바라 산체스 케인’은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의 다채로운 영감을 담아 컬렉션을 구성해오고 있다.


그녀는 레즈비언의 눈으로 본 세상, 진정한 젠더리스에 관한 고찰, 약한 것의 아름다움과 같은 주제 위에 멕시코의 색깔을 얹는다.






아무렴 예술가


'바바라 산체스 케인'은 단순히 <옷>을 넘어 설치와 퍼포먼스, 글쓰기와 조각 등 다양한 예술 창구를 통해 젠더, 성폭력, 동성애, 정치 등에 관한 자유로운 메시지를 표출한다.


그녀는 대학 시절, 자신의 미숙한 드로잉 실력으로 인해 자구책으로 마련했던 다양한 표현 방식이 여러 면모의 예술 표현 정립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멕시코에서
여성의 역할은 세 가지예요.

창녀, 엄마 그리고 성모 마리아요.

 <Hypebeast> 인터뷰 중에서





마초 센티멘털


그녀의 실험적이고도 정치적인 디자인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마초 센티멘털 Macho Sentimental>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 남성도 유약할 수 있고, 여성도 굳셀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남성성과 여성성은 혼재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대담한 시도 말이다.





유일하게 나쁜 일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죠.

그러니 키스하고 싶은
사람에게 키스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으세요.

 <Fucking Young!> 인터뷰 중에서






오해요, 오해!


그래서 ‘바바라 산체스 케인’은 고정된 드레스 코드를 과감히 깨려 하고, 무려 옷을 매개로 성평등을 주창한다.


"이렇게 선정적인 옷을 여성이 만들었을 리가 없어, 산체스 케인은 남성이 만든 브랜드 일 거야!"


그녀의 경험이었단다.







가능성이 곧 예술의 가치



조용히 있지 말고 크게 말하세요.
제가 옷으로 표현하는 것처럼요.

<NBC News> 인터뷰 중에서



침묵을 깨는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은 평생 쥐 죽은 듯이 닫혀 있었을 세상 한 편의 뚜껑을 연다.


그래서 표현의 시도 그 자체가 하나의 <가능성>이며, 그 메시지가 정처 없이 돌고 돌다 마음 맞는 사람에게 닿으면 하나의 소중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대표 사회 부적응자로서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를 초대한다는 그녀의 패션 예술은 가뜩이나 심오한데,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보니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저는 패션 씬의 컨택 리스트를
갖고 태어난 적 없어요.

원한다면 할 수 있는 거죠.

자기 자신이 되세요.
다른 디자이너 따라 하지 말고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세요.

<REMEZCLA> 인터뷰 중에서




분노 잠재우기


세상 어딘가에는 그녀처럼 치마보다 바지를 입을 때 더 편하고 섹시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그건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그녀의 생각처럼 여자도 충분히 마초적일 수 있고, 이것 역시 반대의 경우가 충분히 성립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쓸데없는 분노>라는 감정이 대충 사그라든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예술이 필요한 이유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에게 어쩌자고 칼을 휘두르는 이 각박하고 공포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예술이 건네는 메시지에 자꾸 노출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다양한 생각을 포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고,


산수유마냥 인간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추상적인 생각(말)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마음이 먼저 느끼는) 구체화해 납득시키는 대상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무튼 달달 외우자!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건 사랑과 예술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39



[그리고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

"Know ya momma didn't raise you to take no disrespect,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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