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흑인, 게이 말고 내게 집중해 줘!
눈치 보던 어른에서 희망 가득 어린이로 역변하는 판타지 소설, 꼬리표와 선입견을 깨부수는 세상 컬러풀한 복수극, 소중히 간직한 꿈 그리고 진실되게 바라는 건 무엇이든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독특한 자기 계발서, 인류애와 다양성에 관해 괜스레 긍정하게 만드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대통합 패션 선언문!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그리고 동명의 패션 브랜드 <Christopher John Rogers>가 연결하는 이상한 생각의 연상들이다.
2019 CFDA(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Vogue(보그) 패션 펀드의 수상자, 2021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 미셸 오바마와 카멀라 해리스, 카디 비와 리한나, 비욘세가 입은 그때 그 옷의 디자이너로 유명해진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
2016년의 대학 졸업 이후 상근직 디자이너로 취업, 그리고 그 인생 너머로 저녁이 '없는' 삶을 살던 투잡 시절부터 컬러풀하고 대담한 디자인과 고유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섰던 디자이너.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주도 '배턴루지'에서 성장한 흑인 게이 소년, 스탠더드와 기대 역할을 주입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결코 잃지 않은 정신 하나만은 굳건하였기에 변명 하나 없이 어린 나이에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언제나 말이 되는 일일 거라는 믿음.
저는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믿어요.
그래서 항상 준비되어 있고 싶어요.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는 '색'으로 시작해 '색'으로 끝을 보는 패션 디자이너다.
어린 시절, 재킷, 스커트, 슈즈, 백을 원색으로 통일하고 또 다른 컬러 포인트로 화룡점정을 주었다는 그의 (패션 스승) 할머니로부터 그는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인데,
아무튼 취향에 우열이란 없다며 역사적인 미술 작품은 물론 출근길 바닥의 쓰레기봉투와 엎질러진 스무디의 강렬한 컬러를 카메라에 담아 무드 보드에 올리기도 한다.
사람들의 기분을 고양하는 Color, 그 컬러를 하나의 오브제처럼 상대하는 그에게 테마보다 중요한 것은 단연 컬러다. 그래서 컬러가 곧 테마다.
2016년, 사바나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브루클린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낮에는 패션 브랜드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Diane von Furstenberg>에서 풀타임 디자이너로 일하고,
밤에는 부엌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기 작업'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2018년에는 데뷔 프레젠테이션까지 성료한다.
비록 주문 하나 없고, 돈도 못 벌었지만, '내 이름(브랜드)'을 만들어 나간다는 긍지와 함께 2019년 퇴사(해고)한 그는 그 해 CFDA/Vogue Fashion Fund의 우승 상금을 통해 재정적 지원을 확보한다.
그리고 '버질 아블로'의 선택과 닮은 성공적 커리어를 밟아나갈 것이란 예견과 함께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세일러 문, 카드캡터 체리, 포켓몬, 디지몬 그리고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 컬러, 아웃핏에 집착하던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의 학창 시절 성장 배경은 결국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데,
훗날 그는 레전드 패션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인터뷰를 학습하고, 유튜브를 통해 고전 컬렉션을 감상하던 때를 인생 최고의 시절로까지 회상하는 학구적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자기 개인이든 자신의 작업물이든 그것들이 특정 카테고리에 속해 해석되는 사안에 대해 강박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는 누구에게나 '고유의 개성'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는 신념과 그 누구라도 '자신이 보여지길 원하는 대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내면의 고백이 폭발하는 듯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옷을 디자인한다.
둘 다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집 주위를 잠깐 날아다니다
바람에 날려 방금 방으로
들어온 것처럼 여러 갈래로
물결치며 하늘거리고 있었다.
- <위대한 개츠비> 1장 중에서
중학 시절의 커밍 아웃은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기질적 순간에도 자기를 숨겨야만 하는 버릇을 만들었으나,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는 그것으로 인해 엇나가기보단 원하는 것을 순수하게 바라고 열망하면서 성취를 통해 증명하기를 '선택'한다.
평생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며 토로하는 그의 다양한 인터뷰를 찬찬히 읽고 나서 그의 화려한 컬렉션을 조용히 감상하면,
흑인 성소수자로서의 낙인과 불만의 경험이 역설적으로 그의 못 다 이룬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화려한 컬러, 분방한 실루엣, 디테일과 재미라는 요소로 표현되는)로 미래 귀착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컴포트 존이 없는 자기주장의 끝판왕!
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그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면, <패션 신으로의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가 주목한>, <데뷔와 함께 급속도로 성장한> 등의 클리셰 형용과 함께 그를 '천재 패션 디자이너'라 부르는 멋진 표현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데,
사실 그에 관해 조금만 더 디깅해보면 그가 대학 졸업 후 자기 브랜딩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링크드인과 인스타그램을 뒤져 스타일리스트의 연락처를 찾아내 메시지를 보내거나 의상 샘플을 보낸 일이었다거나 자기 개성이 너무 강해 취업이 되지 않았다는 식의 인간적인 내용도 꽤 찾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역시 언론이 좋아하는 <천재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싹 지워졌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후후!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는 패션 컬렉션으로부터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를 가져가길 바라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당신이 되고 싶은 그 누구든지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간결하게 답하였는데,
<Christopher John Rogers> 컬렉션 의상의 풍부한 자기표현과 글래머러스한 공간 확보 능력을 관찰해 보면 언뜻 그 개념(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패션은 결국 메시지이고,
즐거운 스토리텔링이니까.
음, 일종의 컬러 테라피 같은 걸까?
[갑자기 오늘의 결론]
인생을 <원인과 결과>라는 정직한 틀에서 바라보면서 <근본적으로 건강한 마인드셋>을 갖춘, <개성적>이고 <성실한> 허슬러는 그 어떤 장애물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방해해도 끝내 성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의 추천 노래]
[이제는 조금 부끄러운 옛 브런치북 추천]
https://brunch.co.kr/brunchbook/fash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