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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ug 03. 2023

니트 빚어 우주 만들기

짧은 패션 에세이 with A. ROEGE HOVE 에이 로가 호바



안 떼고 그리기


학교 다닐 때 중간에 손을 떼지 않고 한 획으로 무언가를 끝까지 그려내는 챌린지가 한 번씩 유행하곤 했다.


물론 나는 그런 재주가 젬병인지라 단 한 번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고 언제나 빠른 포기에 성공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니란 이야기의 귀신같은 증명이자 화신, 쓸데없는 고퀄 메타인지의 사나이가 곧 나였다.



중심 잡기


결국 인생이란 중심 잡기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는 일과 잘 못하는 일을 잘 분별해 기왕이면 전자에 잘 집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진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실시간으로 저울질하면서 똑 적당한 균형을 찾아가는 것 말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인생,

우이씨, 그딴 게 어디 있냐?





A. ROEGE HOVE


컨셉추얼 한 니트웨어 전문 패션 브랜드 <A. ROEGE HOVE 에이 로가 호바>를 운영하는 덴마크의 여성 패션 디자이너 ‘Amalie Røge Hove 아말리 로가 호바’는 머신 니팅으로 천천히 공을 들이며 마치 공예하듯이 패브릭의 물성을 살린 독창적인 니트웨어를 생산한다.






남다른 니트웨어


빠른 전개, 양치기, 과잉 생산으로 혼을 쏙 빼놓는 현대 패션 시장의 대세를 거스르면서 그녀는 컷팅 지양과 데드스톡 지향 정책을 운영하고, 패션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와 니트웨어의 무궁한 변신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환에 힘쓰는 동명의 사려 깊은 패션 브랜드를 운영한다.



A. ROEGE HOVE, 블랙&화이트, 리브(Rib)에 대한 천착



밑밥 좀 깔았다


그녀의 니팅 작업은 오늘의 글문을 연 <한 획으로 무언가를 끝까지 그려내는 챌린지>를 닮았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는, 그다지 낭비하지 않는 스마트한 디자인.





핏 퍼스트로 빚기


디자인을 역으로 핏에 맞추며, 빌딩을 올리듯이 건축적으로 몸을 둘러싸는 니트를 지어 올리는 로가 호바의 훌륭한 솜씨는 결국 눈에 띄어 <마가신 뒤 노르 패션 프라이즈>와 <울마크 프라이즈> 수상이라는 영예로 이어진다.





휴가 대신 창업


요새 한창 좀 치는 스칸디나비안 패션 브랜드 ‘CECILIE BAHNSEN 세실리에 반센’에서 2년 넘게 니트웨어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던 그녀는, 2019년 여름휴가 대신 선택한 니트 짓기를 계기로 결국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다.





신인에게 충고


틈새 같아도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직감에 귀를 기울이며,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기 내면의 세계와 소통하는 일이 더 나은 디자인(결과)을 가져온다고 믿는다는 그녀의 아이디어,


그리고 거지처럼 그것들을 몰래 훔쳐 읽는 나,


그녀의 자기 주장은 정말이지 탕후루처럼 달달해서 골이 너무 아팠다. 메모장 부족.





우주를 줄게


니트 공예로 하나의 공간(옷)을 만드는 그녀는 ‘재료’를 갖고 새로운 <생>을 만들고 하나의 <우주>를 열어젖힌다고 표현한다.


머리를 쿵!





내 코가 석 자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철없는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글쓰기의 잔재주로 어떤 생, 어떤 우주를 만들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에 집중해야 승산이 있을지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가 찾아온  같다는 기분이 들어 조금은 기쁜 요즘이다.


하지만 함부로 앞길을 점친다는 것은 되게 건방진 일! 그럼에도 나는 얼보이는 그 길로 오늘도 달려간다.


좋은 기운 받고, 이렇게 소개도 잘 하고 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고백: 사실 탕후루 안 먹어봄!



[오늘의 추천 노래]

떡상 중이라고? 예술 같은 프리모 비트, 너와 천천히 오래 걷고 싶어.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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