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관한 단상 (Feat. 마틴 로즈)
30년도 훌쩍 넘은 애시드 하우스 파티의 스마일 티셔츠를 평생 간직하며 영감 받는 동심 어린 디자이너,
어린 시절의 문화적 충격에 영원성을 부여한 런던의 패션 냉동 인간,
이렇듯 시즌 테마 설정보다는 개인 역사의 감동 체험을 철저하고 성실하게 고증하는데 집중한, 그래서 반복되어 돌고 도는 거대한 트렌드의 바퀴에 얼떨결에 끼워 맞춰진, 계속 그 자리를 지키던 그 꿈쩍 않음과 함께 역설적으로 시대를 앞서 나간 예지자,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기 것에
충분히 오래 달라붙질 못해요.
비판하는 게 아녜요.
저도 포기할 수 있었어요.
포기의 유혹에
정말 많이 시달렸죠.
하지만
달리 무얼 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에요.
<Office 매거진> 인터뷰 중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당대의 하위문화 재료를 과감히 섞어 전시하는 일을 죽어라 밀어붙인 시종일관의 집착 커리어 우먼,
세컨핸드 패션 아이템을 무던하게 즐겨 입으며 그들로부터 적절한 뿌리를 찾는 ‘본질’을 아는 패션 디자이너,
보고 또 봐도, 듣고 또 들어도 안 질리는 그 이름, Martine Rose 마틴 로즈. 오, 나의 선생님!
사업에서는
교활한 수완이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예술에서는 정직이
최선의 길이자
유일한 길이라구.
<달과 6펜스> 중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 취향을 끝까지 고수하며 수그러들지 않는 고집스러움으로 세상 한 편에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사람들을 나는 동경한다.
그리 와닿지 않고 딱히 궁금하지 않은 탄탄대로 식의 비릿한 삶의 개념보다는 서서히 끓어오르다 끝내 주목받는, 의외의 반전이 있어 늘 부족한 내게도 일말의 가능성의 손길을 건네는, 예외적 성취의 제스처로 이 지루한 세상에 여러 번 돌려볼만한 특수한 사례를 낳는, 그런 인간적이고 특별한 모습에 나의 마음이 더 이끌린다.
사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달라도 삶의 본질은 꽤나 닮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롤모델이라고 자신 있게 부른다.
사람들이 어느 쪽
브랜드에 끌리든,
내 인기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나의 정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 게리 바이너척
어느 날 가만히 책장을 둘러보면 비슷한 소재의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주제의 비슷한 교훈으로 점철한 비슷한 작가의 비슷한 책만 즐비하다는 걸 확인하곤 한다.
그래서 특정 범위만을 빙빙 돌며 지루한 삶을 반복하고 있는 내 현실의 근거가 꽤나 확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브랜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럴 때면 내일이면 사그라들 <취향 변화>의 의지를 허망한 태도로 다져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냥 되는대로 한 번 생각하는 부질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새 삶으로의 새 출발, 취향 강한 이들에겐 사실 평생 불가능에 가깝다.
취향은 당신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인데, 이 취향이라는 것이 신이 나서 죽을 만큼 좋은 것이고 그래서 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가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만 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이라 글래스 '취향과 재능 사이의 격차'
하지만 앞선 나의 롤모델이 증명하는 외곬 성공법 aka 지박령 처세술은 오래도록 변치 않은 또 변치 않을 나의 취향을 굳게 간직하는 흔들림 없는 태도에 다시 한번 뜨끈한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자기 취향을 분명히 알고, 아무런 대가나 결과 기대 없이 무언가를 한없이 좋아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자꾸자꾸 되새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취향에 바싹 기대어 간다.
그리고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오늘의 추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