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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Sep 04. 2023

대범하게 산다는 것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열심히 발버둥 치는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마흔아홉까지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다.

"확신할 수 있어.
나처럼 살아온 사람이
그 정도면 훌륭한 거지"라고.

- 스콧 피츠제럴드
<The Crack-Up> 중에서


내 뜻대로


내 뜻대로 가다가 삐걱대면 그때 다시 보이는 길을 따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되는 대로 어질러 놓고 살지만, 그런대로 그럴싸한 규칙이나마 부여하고 말겠다는 강박적인 삶의 자세, 나 새끼 대단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곳에 있는 정신 분석의는 내가 다음 9월에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하겠냐고 자꾸 묻고 있어. 내 생각에 그건 아주 어리석은 질문이야. 자기가 해보기 전에 어떻게 할지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는 말이야? 알 수 없다는 게 답이야. 공부하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알 수 없잖아? 그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야.

-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일단 살고 보자.



대범하게


군대에서 힘든 일이 있어 아빠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을 때, 예의 괜찮다며 던지는 아빠의 그 흔한 위로의 말, 사내 새끼가 좀 대범하라던 그 싫은 소리를 한 번 듣고 나면 그토록 나를 위협하던 사람과 일이 감쪽같이 대수롭지 않은 그 무언가로 바뀌어 느껴지는 건 정말 신기했다.


여기 이 세상 살며 힘들 때마다 언젠가 나눴던 아빠와의 통화를 상기하면 억지로 대범할 수 있는 어떤 용기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올해로 아빠 나이 예순여덟, 철부지처럼 전화하고 싶을 때에도 이제는 꾹 참아 본다. 외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대범한 나이가 되었다며 스스로를 그렇게 멍청히 속여가면서.


이제는 종을 몇 번 울리면 침을 질질 흘리는 개처럼 아빠의 욕설이 담긴 녹음 파일이라도 들고 다니며 눈물을 줄줄 흘려야 할까?



마침내 일자리를 얻을 무렵 나는 딱 서른 살이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 난 사실 네가 가방 끈만 긴 날건달이 될 줄 알았지 뭐냐."

하지만 내가 일자리를 얻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결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신 적이 없었다.

- 조지프 캠벨 <신화와 인생> 중에서



Free Hug



어설픈 위로


사회에서 만난 5살 어린 동생 하나가 좋은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기뻐했는데, 두어 달 전의 어느 밤에 전화를 걸어와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토로했다. 조용히 듣고 있다가 어설픈 위로와 응원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실없는 소리 몇 줄 섞어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걱정은 지가 더 많으면서 누가 누굴 위로한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비밀을 끌어내는
특별한 자질 같은 것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사람처럼
보이는지도.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중에서



그래, 잘했어


아무래도 회사 생활은 진짜 아닌 것 같다면서 결국 한 달 만에 뛰쳐나온 동생,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며 근황을 알리는 동생의 얼굴이 어제는 바보처럼 밝아 보여 좋았다. 그 길로 축하도 할 겸 초밥 가게에 들어가 특초밥 2개를 시켰는데, 저기 저 문가의 작은 수조 안에 큰 생선 한 마리가 입만 뻐금거리며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근데 너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니?




형, 근데 뭐 찍어요?

아니, 그냥 쟤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 만 33세 스눕피



WORLD'S BEST BOSS FISH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얼마 전에 회사의 세상 똑똑한 기획자 한 분이 어떤 글을 하나 읽고 나서 그것의 주장을 자신의 삶에 투입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제목이 뭐였더라. 농업적 근면성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이렇게 답해주려다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거 쓴 사람도
그거 잘 모를 거예요.
스스로 확신이 안 설 때
보통 글 써서
아는 척하잖아요.

- 스눕피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너도 몰래 숨어서 아는 척 이런 글이나 써 재끼며 나 같은 사람들 은근히 괴롭히고 있느냐고 물어볼까 봐 차마 내뱉지 못하고 꿀꺽 삼켰다. 뭐 사실이기도 하고.


다만 무언가 확신이 서지 않는, 아이처럼 막연히 기대고 싶은 요즘 같은 때에, 이런 글이나마 써 갈기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는 체 글을 쓴다는 것의 매력은 이런 것이니까. 세상에서 제일 부족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나를 뻔뻔하게 위로하는 아는 척과 센 척의 즐거움!


그래서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만 조금만 더 대범해지자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 한 가지,
그것은 바로
이 창조적 힘이다.

나머지는
팔다리와 내장과
물질적인 욕망과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 브렌다 유랜드
<글을 쓰고 싶다면> 중에서




[오늘 그냥 함께 듣고 싶은 노래]

SAY IT, DO IT, SHOW IT, PRO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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