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 형, 최자 형 그리고 성시경(성식영) 형
나의 한국 힙합 시계는 2016년 전후로 거의 멈춰 버리다시피 하여, 즐겨 듣는 음악이 다듀의 노래 제목처럼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철이 한참 지난 더 콰이엇 형과 팔로알토 형의 어떤 앨범 혹은 이센스 형과 다이나믹 듀오 형들의 전집을 챙겨 들으며 때로 K-힙합 에너지를 충전하곤 한다.
아무튼 그것들이 가끔 생각나 몇 곡 골라 들을 때면 오래 잊고 살던 최애 과자를 오랜만에 한 입 베어 물었 때처럼 황홀한 기분이 든다.
특히, 요새 다시 푹 빠진 팔로알토 형의 <Cheers>(2014) 앨범의 1, 3, 5번 트랙은 정말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바인데, 현실과 맞닿은 이 형의 가사와 그에 걸맞은 침착한 비트가 참 맛있어서 간간히 찾아 듣게 되는 것이다.
여러 말실수(?)로 인해 다양한 구설수에 휘말려 가끔 안 좋은 평을 받곤 하는 형이지만, <Daily Routine>(2010) 앨범을 통해 이십 대 초반 군 시절의 정을 함께 나눈(물론 내 쪽에서 형 쪽으로 상당히 일방적으로) 팔로알토 형은 여전히 내겐 비교불허 최고의 래퍼이다.
무엇보다 주변을 꼼꼼히 돌아보며 일반의 ‘현실’을 고민하고, 그 ‘현실’을 담담하고 과장 없이 전달하려는 이 형의 꾸준한 노력이 나는 정말 좋다.
너무 많아 고생 끝에 얻은 건
번 돈으로 산 것보다 값진 더 큰 거
사람들로 인해 특별해졌어 내 평범함이
이건 마치 성탄절에 받고 싶던 선물 같지
행복이 없는 성공이란 건 무의미해
모든 순간들은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
늘 좋은 말씀으로 가르치신 아버지
맴돌기만 하는 내 믿음, 깃털처럼 가볍지
- 팔로알토 <발자국> 중에서
내친김에 덧붙이자면,
팔로알토 형이 내게 어떤 형인지 혹시 그 의미를 아시는지?
몇 년 전 이 형의 기습 인스타 라이브에 참여한 나는 이 형의 가사 한 줄을 인용해 채팅창에 물었다.
형, 기분 나쁠 땐
모두 엿 먹이고 싶어지세요?
그리고 내 댓글을 바로 읽은 형은 사람 좋은 표정으로 대차게 웃으며 진지하게 관련 답변을 전해주었는데, 사실 나는 형의 답변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딴짓에 열중하였다.
아무튼 내게 팔로알토 형은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나의 싸가지없는 추억이 어린, 그런 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테면 이런 추억(고백)인 것이다.
"형, 사실 그때 그거 하나도 안 궁금했어. 그냥 주목받고 싶었을 뿐이야.
익명으로 은근하게 주목을 요구하고, 그에 성공했다 싶으면 먹잇감을 활착함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지는 야생 동물마냥 바로 조용히 딴짓을 시전하는 방구석 여포의 삶, 그거 인프피(인프제 호소) 특이잖아?
늦었지만 미안해, 형! 형은 내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야. 그런 형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가끔씩 오래 보자고!"
약 10년 전에 이센스 형이 내뱉은 '랩 퇴물'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쓸데없이 저평가되어 때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는 (사실) 대한민국 최고의 래퍼는 누구인가?
그것은 얼마 전 결혼한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 형 aka 자형이다.
이 형의 가사를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노래를 감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슬아슬 줄다리기처럼 팽팽한 문장 간 구성력과 쉽게 쓰였지만 허투루 쓰이진 않은 표현력에 놀라움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형 좀 짱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랩의 기술에만 치중하며 <힙합>을 평하고자 한다면, 그냥 시비 걸지 말고 자기 갈 길을 가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랩 기술이나 패션(겉멋)에만 온통 치중하는 힙합 음악에는 도통 감흥이 없어 그런 힙합 음악을 즐겨 듣지 않고, 그것은 곧 나의 한국 힙합 시계가 몇 년 전에 멈춰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시기, 질투, 기대의
압박을 못 이긴
몇 번의 실축
자만, 나태함 속에 던졌던
만루홈런을 맞는 실투
다 끝난 거 같았지만
우린 “우리 앞길을 막지 마”
라고 외치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지.
- 다이나믹 듀오 <AEAO> 중에서
요새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최자로드>를 틀어놓는다.
원래는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를 보고 또 봤는데, 어느새 최자 형이 밥 먹으며 열심히 땀 흘리는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되어 가뜩이나 없는 밥맛이 돌아오게 되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식욕으로 따지면 성인 남성 사이에서 거의 최약체 수준인 내게 <먹기 위해 사는> 그 형은 정말 신비롭게 느껴진다.
<살기 위해 먹는> 나의 인생을 보면 이 형은 무슨 좋은 말을 어떻게 들려줄까?
그런데 <먹기 위해 사는> 형이라면
역시 이 형을 빼놓을 순 없지 않을까?
딩고 뮤직 <킬링보이스> 성시경 편의 조회수(약 5,125만 회)를 보고 엄청 놀랐는데, 어림해 보니까 일종의 지분 투자자로서 나 혼자 최소 300회 이상은 족히 돌려본 것 같더라.
공습 질문 하나!
한 사람이 반복해 시청한 것도 유튜브 누적 조회수에 카운팅이 되나요?
미련하게 아무도 모를 것 같아
2002년의 겨울, 정말 정말 추운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불알친구 너덧이 우리 집에 모여 우육탕 큰사발을 먹고, 드라마 <야인시대>의 재방송을 보다가, 옆 동네에 새로 오픈한 찜질방에 가기 위해 올라탄 버스 안 라디오에서 성시경 형의 <넌 감동이었어>가 흘러나왔다.
가끔 기억력이란 것이 미쳐 날뛸 때가 있고, 특히 성시경 형의 이 노래는 그 힘을 배가하는 기운이 있다.
그래, 그랬었지
<킬링보이스> 성시경 편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21년 전 친구들의 앳된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웃긴 게 영상을 10번 재생하면 10번 다 그 얼굴들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뭉클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청승스럽기 짝이 없는 스눕피, 줄여서 청승눕피의 삶인 것이다.
야, 근데 베댓 말마따나 이거 그만 듣는 법 좀 없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쉽게 무디어지는 빡빡하고 박정한 사람일지라도 적어도 ‘노래’가 주는 위로라는 개념만큼은 존재하지 않을까?
내 평생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진귀한 사람을 몇 보긴 봤는데, 그런 유난히도 재미없는 사람을 논외로 한다면 노래란 역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점에 있어 나는 동의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꿈을 꾸며 살아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아
좋게 생각하면
풀린다는 말들
시간 지나면
결국 치유된다는 아픔
머리론 이해돼도
가슴팍이 아려
앞에선 다들
눈물 짓는 표정 가려
어디다가 말도 못하지
혼자서 또 삭히는 듯하다
왈칵 쏟았지
- 팔로알토 <감기> 중에서
선생님들도 음악 한 곡 한 곡에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자기만의 애틋한 인생을 보듬으며 살고 계시겠죠?
여러분의 즐겁고 행복한 음악 생활이 오래 지속되길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된 어떤 노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