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변천사 그리고 지오디 god <왜>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내 살아남은 기억 속 첫 이사를 갔는데, 학교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서 버스를 타야만 하는 다소 긴 거리로 집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사 다음 날, 같은 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내가 걱정돼 방과 후 우리 반에 찾아간 모양인데, 담임 선생님은 남동생이 계속 울다가 집에 돌아갔다고 누나에게 전해줬다 하고, 나는 그것을 이후에 전해 듣고 부끄러워 울었다.
그날의 나는 아마도 집에 갈 길이 도저히 막막해 일단 울기로 한 것 같다. 바보 같은 놈.
그때 그 눈물의 씨앗이 떡잎이 된 건 그렇게 이사 간 아파트에서 새롭게 사귄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둘이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서로 말싸움을 하고 곧 화해도 잘했건만 그것이 그렇게나 슬펐는지 나는 친구를 집에 바래다주러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내려가는 길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친구는 갑작스러운 내 눈물을 보고 당황하며 왜 그러냐면서 아깐 미안하다고 했고, 그때 이후로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바보 같은 놈.
그리고 그때 그 눈물의 떡잎이 내 오른쪽 눈 아래 눈물점이 되어 예쁘게 피었을 때즈음에 나는 중학생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부터는 정작 눈물도 없고 겁도 없는 다소 특이한 학생이 되어서 어떤 친구들은 나를 냉혈한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중등학교 6년 동안, 내가 눈물 흘린 기억을 되짚어 보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눈물 바가지 한 번 그리고 제주도 수학여행 숙소에서 친구들과 몰래 족발을 시켜 먹다가 주먹왕 선생님한테 발각돼 볼이 팅팅 부을 정도로 죽빵을 처맞고 핑핑 돌던 또다른 눈물 한 번이 당장 떠오르는 중등 시절 내 눈물의 마지막 기억이다.
특히 내 두 볼을 얼얼하게 한 2007년의 팅팅 핑핑 족발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미친, 그건 맞을 일도 아니었고 울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맞고 울었다. 진짜 진짜 아파서 울었다. 바보 같은 놈.
하지만 인생사 눈물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건지 요새는 다시 툭하면 운다.
내 눈물점의 폼을 유지하기 위한 인체의 신비일까?
영화 보다가 울고, 유튜브 쇼츠 보다가 울고, 책 읽다가 울고, 하품하다가 운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상상하다가 울고, 미워하는 사람을 있는 힘껏 더 미워하다가 울고, 젠장, 아무튼 별것도 아닌 걸로 자꾸 운다.
그렇게 사서 운다.
그야말로 궁상이다.
한편 이번 추석 연휴에 TV를 보다가 개국 무려 50주년을 맞이한 KBS에서 데뷔 무려 25주년 차를 맞이한 국민 아이돌 '지오디(god)'와 함께한 대기획 콘서트, 이른바 <ㅇㅁㄷ 지오디>를 봤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지오디는 내게도 적잖은 추억이 담긴 그룹이라서 노래 한 곡 한 곡이 정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울지 않았다. 휴!
다만 방송이 끝나고 지오디의 3집 앨범 노래 몇 곡을 골라 반복 재생해 듣다가 울었다.
이런 제길슨, 어쨌거나 운 건 운 거니까.
야, 스눕피, 너 졌잘싸!
특히 지오디의 노래 <왜>가 나를 못살게 굴었다.
이번 콘서트의 미공개 무대, 마지막 무대.
방시혁 선생님의 숨은 명곡,
이 노래가 왜 나를 갑자기 슬프게 할까.
아무래도 가사 때문인 것 같다.
주기만 해도
계속 주기만 해도
그댄 왜 자꾸 멀어지는지
- god <왜> 중에서
어렸을 땐 주기만 해도, 계속 주기만 해도 그댄 왜 자꾸 멀어지느냔 가사가 조금도 와닿지 않았지.
아니, 가사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아니, 그냥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주는 삶보다는 받는 삶에 너무 익숙했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다고 실실 댔으니까.
마음을 주고 또 줘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을 주고 또 줘도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너무 당연해서 더욱 잔인한 인생의 비밀을 조금도 알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 눈물의 의미란 것이 나이에 맞게 변화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나는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눈물이 꽤 헤퍼도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철없는 생떼나 대책 없는 회피가 아니어서,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줄줄 흐르는 내 눈물에 내가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정직함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아니, 그렇게라도 믿을 수 있는 작은 힘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또 또 또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했나?
아무튼 이제 울 시간이야!
11월에 지오디 콘서트 가야지.
[오늘의 당연한 추천 노래]
https://youtu.be/43gnh5edNWM?si=iMNUbWZj2_A9l_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