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전화기와 어떤 문장 그리고 세탁소 아저씨
꼬질꼬질한 손으로 용케 잘도 외운 숫자 일곱 자리를 차례로 눌러 집 전화기에 신호를 넣으면 친구나 친구의 부모님, 혹은 형제가 요술처럼 나타났다.
어렸을 땐 몇십 가지 전화번호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고, 용건이 있어 전화를 걸며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내 짧은 인생의 유일한 확장이었으며, 나는 수화기 너머 닿을 곳 있는 그 연결점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도 사회의 일원이야. 나도 남자라구!
세상 속 내 존재와 가치를 의식하는 행위, 내가 누군가의 친구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 - 안녕하세요. 저 스눕인데요! 혹시 눕피 있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그래, 스눕이구나! 근데 눕피 지금 막 나갔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네! 뚝.
그땐 감사할 줄 몰랐으니까 거기서 끝. 뚝.
이십 대에는 어떤 에세이와 소설 몇 권 속 몇 백 문장을 품고 나를 위로하기 바빴다.
밤에 집에 돌아가 깨끗이 씻고, 자기 전에 그 문장을 꼭꼭 씹어 읽어야지. 그러면 또 힘이 날 테니까.
그즈음부터 나는 진심을 담아 쉽게 풀어쓴 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이름 모를 독자 앞에 희망의 시공간을 창조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떤 책은 그것의 값어치에 비해 매겨진 값이 터무니없이 싸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아무튼 상남자의 삶을 산 멋진 작가들의 섬세한 언어, 그들이 생각을 풀어 가는 방식은 내게 멋진 남자의 단단한 기준점이 되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 - 진짜 멋진 남자는 세상과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정한 남자는 최악 중 최악!
그러나 이 비열한 거리로 한 남자는 걸어가야 한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고, 타락하지도 않으며, 두려움도 없는 채로.
만일 그 같은 사람이 많다면, 이 세계는 지나치게 따분하지 않으면서도 살아가기에 아주 안전한 공간이 되리라.
- 레이먼드 챈들러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중
요새는 겉보기에 좋고 번듯한 것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좇아 다니느라, 반면 속이 계속 비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한다.
인천에 내려갈 때마다 들르는 단골 세탁소가 하나 있는데, 그곳은 정말 협소한 공간이지만, 라디오 소리를 친구 삼아 늘 웃으며 일하고 계신 아저씨가 있어서 갈 때마다 기분 좋은 마음만은 더없이 넓어진다.
나는 늘 비슷한 옷들을 들고 가고, 그것들을 본 아저씨는 늘 비슷한 말들을 건네신다.
와! 바지 통이 이게 뭐야? 으흐흐!
그래요, 줄여 보죠, 뭐!
저기서 일단 입어 봐요.
허리의 감을 보려고 간이 커튼을 치고 나는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커튼 속에 숨어 시선을 돌리면 거기에 작은 액자가 하나 걸려있고, 그 안에는 촌스러운 배경 위 캘리그래피 몇 줄이 쓰여있다.
흙처럼 진실하게
벌처럼 성실하게
꽃처럼 아름답게
세상을 긍정하게 하는 드문 사람,
그리고 위화감 없이 좋은 메시지.
내가 세탁소 아저씨처럼 항시 웃으며 좀 더 잘 살면 덜 죄송하고 덜 감사해도 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철없는 바람.
[아무튼 함께 듣고 싶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