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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Sep 29. 2023

투표로 만드는 패션

<24SS 무신사 시즌 프리뷰>에서 만난 패션 브랜드



우리 모두의 패션 이야기


사적이고 내부적인 소규모 행사에서 세계인이 참여하는 모두의 행사가 된 패션쇼, 초대장이 없어도 패션 위크의 면면을 뜯어볼 수 있게 한 SNS의 부지런한 도움 덕에 불과 어제의 먼 나라 패션 이야기로 이러쿵저러쿵 하며 모두 하나가 되는 오늘의 세상은 정말 재밌고 즐겁다.



마르니 폼 미쳤더라. 쇼 봤어? 응, 봤지. 어땠어? 음, 내 생각엔!




우리의 소중한 패션 체험


물론 저기 저 패션쇼처럼 순간을 사로잡는 멋지고 화려한 이미지와 꿈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패션의 감동은 여전하지만, 작고 소중한 개인적 경험(체험)을 동반할 때면 패션은 단순한 흥미와 감동을 넘어 놀라운 추억이 되기에 수많은 브랜드의 다종다양 팝업 행사장과 플래그십 스토어는 오늘도 그 리즈를 갱신한다.



오는 10월,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오픈하는 바르셀로나 기반의 패션 브랜드 Paloma Wool 팔로마 울



지지와 참여


그런데 앞선 두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요즘 패션 씬에서는 특히 일반의 관심과 참여의 정도가 결국 계절의 맥락을 형성하고, 그것이 흘러내려 또다시 산업에 역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올여름 발령된 <THE ROW 더 로우 공습경보 2단계>, 셀럽 작전명은 'A Full Body Mirror'



달리 말해 별안간 SNS를 장악하는 트렌드 최전방의 슈퍼 셀럽이 내리꽂는 낙수 같은 패션 제안의 경우도 결국 다수의 공감과 참여라는 지지 기반 위에서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형성하지 않나 싶은 거다.



무신사 시즌 프리뷰


(갑자기) 며칠 전, 무신사 관계자 분들의 초대로 성수에서 열린 24SS 무신사 시즌 프리뷰 행사에 다녀왔다(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저런 생각들이 아른거려 여러 단상을 메모장에 갈무리해 두었다. 그래서 앞서 잔말이 많았다(죄송합니다).



무신사 테라스 성수에서 열린 24SS 무신사 시즌 프리뷰



이번 24SS 프리뷰 행사는 외부 소비자의 시선으로 무신사 입점 브랜드 30곳의 샘플을 미리 품평하고, 관련 피드백을 거쳐, 실제 제품 생산으로까지 과정을 연결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무엇보다 일반의 피드백과 함께 상품의 실제 발매 여부와 상품 가격, 컬렉션 방향성 등이 결정된다는 구체적인 아이디어 되게 흥미로웠다. ?



아웃사이드 인사이트


몇 가지 포스트를 통해 반복했지만, 나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풀어지는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데 - 내가 사랑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결국 어우러지지 못한 외부인들에 관한 스토리다 - 그런 점에서 행사의 기본 구조가 나의 취향저격했다.



스눕피 님? 넵! 자, 이제 당신의 동그라미를 보여주세요. 앗?



온통 그것(샘플) 혈안된, 패션이 삶의 중심에 있는 사람(직업인) 아니라 취미, 소일거리, 부업, 놀이 혹은 (어쩌면) 성수동 데이트의 일환으로 제가끔 패션 문화를 즐기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소비자 각자만의 투표용지를 손에  (혹은 무신사 앱을 노려보면서) 국내 패션 브랜드의 실험적인 디자인 샘플을 평가하고(지루하게 반복되는 캐리오버 상품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만을 선보인다), 고유의 감상 코멘트를 작성한다.


그러면 그것의 (인기투표) 결과가 내년 시즌의 제품 출시에 정직하게 반영된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당연한 문답이 사치가 된 세상에서 대놓고 소통하는 패션 행사는 아무튼 무지 흥미로웠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가 업계 최초라는 말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음?



무신사 스퀘어 성수 2호점, 저기 저 아래 이번 프리뷰 행사에 참여한 30개 브랜드의 로고 리스트가 눈에 띈다. 아는 브랜드 최대 몇 개?



스눕피 생각


,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번 24SS 무신사 시즌 프리뷰 행사에서 나름대로 인상 깊었던  가지 브랜드에 대한 인상(감상평)   정리해볼까 한다.


까먹고 싶지 않은  가지 개인적 사건사고를 모눈종이 위에 못난 글씨로 연신 붙들어 매려는 유치한 초등생의 애틋한 방학 일기처럼.


다만 나는 초등생보다는 나이를 한 3배 더 먹었으니까 조금 더 정신적인 측면에서 쓰는 게 좋겠지? 나란 인간의 몇 없는 특기잖아?




에이카 화이트


먼저 <데님 온 데님 Denim On  Denim>이라는 트렌드 키워드 아래에서 전개한 상품군으로 '의외성'의 매력을 엿볼 수 있던 브랜드는 <에이카 화이트(AECA WHITE)>였다.



균형의 의미는 무엇일까?



페이즐리 패턴과 아플리케 로고, 빵빵한 스티치가 진하게 묻은 트러커 재킷과 부츠컷 팬츠의 눈치 보지 않는 선명함이 참 좋았는데,


패션 부호 제프리 루벨이 전개한, 한때 세계를 호령한 트루릴리젼의 스티치가 선사한 박력이 떠오른 부츠컷 팬츠 그리고 생기와 활력의 청춘을 대변하는 데님 재킷에 60년대 레트로 패션의 상징인 페이즐리 패턴 원단을 덧입힌 콤보 같은 아이템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에이카화이트의 데님 아플리케 트러커 재킷과 부츠컷 팬츠



사실 에이카 화이트의 서인재 디렉터가 꾸준히 강조하던 브랜드의 정수, , 편안하고 깨끗하며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더하기보다는 덜어내는 것을 지향하는 기본 디자인 방침과 언뜻 어긋나 보이는 지점으로부터 오히려 강한 끌림을 받았다 말하는 편이 나의 솔직한 감상의 고백이겠다.


자기 취향이 확고한 이들이라면 스타일의 노선 변경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주저가 어려있는지 알 것이다. 의외성의 매력이나 반전의 미학이란 것이 온전히 성립되려면 원래 하던 일에 본디 일관된 맛도 있었어야 하는 법이니까. 물론 그것을 끌어낸 무신사의 협업 능력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에이카화이트의 나일론 조거 팬츠와 크리틱의 유틸리티 베스트



베이직한 데일리웨어 스타일을 지향하던 브랜드 <에이카 화이트>가 새롭게 제시하는 컬러풀 로고 그래픽의 파이팅 넘치는 비건 가죽 레이싱 재킷이나 고프코어 트렌드의 영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소재의 나일론 조거 팬츠도 짱이었다. 짱!




틸던


다음으로 <틸던 TILLDAWN>은 24SS 시즌 프리뷰 아이템 선호도 투표용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던 브랜드였다. 샤샤샥!



짜증 나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메시지 하나를 툭 던지는 틸던의 브랜드 소개 페이지 -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곧장 드레이크의 <Preach>를 들으러 갈 수밖에!



틸던은 <그런지 리바이벌 Grunge Revival>이라는 트렌드 키워드 아래에서 '빈티지 워싱' 묘와 'I Don't Give a F**k' 무드를 가장 유효하게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대충 개취였다는 ).



틸던의 SAGGED AO 팬츠와 도프제이슨의 워싱레더 트러커 재킷



빈티지 스토어에 입성해 무한하게 병렬해 있는 옷들 옆에 멀찌감치 서서 두 눈으로 옷이 내뿜는 기운(소재감)을 대강 읽어내고,


개중 예쁘게 잘 낡은(맛있게 익은) 옆태를 뽐내는 친구 하나가 신경을 건드린다 싶으면 홀린 듯이 달려가는 세컨핸드 패션 덕후의 한 명으로서


틸던 아이템(RAVE라는 글자가 크게 박힌 슈렁큰 베이비 티셔츠와 가장 먼저 눈을 마주쳐 버렸다)의 유혹은 만만치 않았고, 크고 작은 옷의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



(위) 스눕피 촬영 - 무신사 스퀘어 성수에서 만난 틸던의 샘플 상품 / (아래) 즐거운 마음으로 틸던의 샘플을 뒤져보던 당시 스눕피의 모습을 대부호 랩스타의 비주얼로 형상화



집에 돌아와 틸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다가  브랜드가 설립 1 차의 신생 패션 브랜드라는  알게 됐다.



TILLDAWN LOOKBOOK



빈티지, Y2K 그리고 "Just Fun!"이라는 고유 테마와 함께 음악, 패션, 문화를 아우르겠다는 비전,


그리고 <클럽(파티)에서 입기 좋은 옷>과 같이 구체적인 브랜드 메시지와 그것을 표현하는 적나라한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이름처럼(Till Dawn) 밤새 술 먹고 미친 듯이 놀다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빠이 빠이 귀가하는 놀 줄 아는 친구들을 위한 매력적인 유니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었다.



TILLDAWN 2023



걸출한 네임드 디자이너를 줄줄이 배출한 영국의 비영리 패션 인큐베이터 <패션이스트>의 설립자 룰루 케네디는 언젠가 방대한 분량의 패션 포트폴리오보다 때로 단 몇 장의 사진이 하나의 브랜드(디자이너)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면서 표현 방식의 중요성을 설파했는데,


틸던의 인스타그램 피드 속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와 어떤 표현들이 그 말의 숨은 의미 그리고 브랜드의 미친 에너지를 짐작케 했다. 오!




에러스익셉티드


이어 이번 프리뷰 행사를 위해 '빈티지' '시간'의 가치를 살리는 디자인에 주안을 둔 패션 브랜드 <에러스익셉티드 EEC-errorsexcepted>와 그들이 선보인 빈티지 데님 셔츠의 텍스쳐를 모티브로 한 '디스트레스드 슬러비 데님 팬츠'와 같은 실험적인 아이템도 매우 흥미로웠다.



에러스익셉티드의 슬러비 데님 팬츠와 우알롱의 바시티 셔츠 재킷



데님 입문 브랜드로서의 포지션으로 생활  편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브랜드 에러스익셉티드 세상 합당한 일탈 지켜보는 기분, 우선 동그라미!


거추장스러운 디테일을 제거하고 간결한 선과 편안한 색감으로 고유의 무드를 설정하던 브랜드(에러스 익셉티드)가 이게 무슨 멋진 일이람?


돌아보니 예측 가능성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묻어나는 다양한 디자인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 놓고 봐도 이번 행사가 참 즐거웠다(1시간 넘게 성수의 이곳저곳에 위치한 행사장을 빨빨 거리며 돌아다녔다).



에러스익셉티드의 디자인 비전 "데님을 통해 누구나 편하게"



인류가 끝장을 본(볼 장 다 본) 소재(데님)는 예술적이고 기술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실험하며 소비자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패션의 재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영원히 그 폼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문득 뉴욕 출신의 디자이너 '에버라드 베스트'가 전개하는 글로벌 대표 데님 파괴 브랜드 'Who Decides War'의 화려한 디스트레스드 디테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국가를 넘나들며 비교하고 즐기는 패션, 얼마나 즐거운지?


아무튼 20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소재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견고한 원단과 빳빳하고 도톰한 소재가 주는 구조감, 신체의 선과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변화하는 실루엣과 워싱, 투박하지만 무게감 있는 감각과 위트 있고 신선한 개성을 품을 수 있는 여유까지 말이다.


이번 행사의 샘플 디자인을 계기로 <에러스익셉티드>가 선보일 보다 즐거운 데님 변주를 기대해 본다.



포터리


이번 행사를 통해 무척 좋은 인상을 가져간, 오늘의 마지막 소개 브랜드는 <포터리 POTTERY>다.


옷 자체의 '말'도 많고, 패션이 개인의 개성을 침범하며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에 현대 사회인을 위한 '유니폼'을 만들겠다는 포터리 김건우 대표의 비전이 도리어 새로웠다.


무려 <정돈된 편안함>을 선물하고 싶다고.



POTTERY AUTUMN WINTER 23



이번 무신사 프리뷰를 통해 소개한 브랜드의 샘플 역시 백사틴 원단의 퍼티그 팬츠, 브라운 컬러의 레더 블루종 재킷, 네이비 컬러의 캐주얼 포켓 재킷 등 군더더기 하나 없고 아주 깔끔한 패션 아이템들로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상품의 개별적인 디테일도 잘 챙긴 모습이었다.


옷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옷의 전체적인 운명을 처절하게 가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브랜드의 기량은 피부로 직접 느낄 때에야 비로소 극대화되는데, 포터리로부터 나는 그런 느낌을 충분히 전달받았다.


(정신없는 프린팅이나 화려한 소재에 기대지 않고 유행과 무관하게 옷의 소재와 피팅 그 자체에 집중하며 본질에 충실하는 데일리 웨어는 개취와 상관없이 늘 응원하고 싶다.)



근데 나 사진 진짜 못 찍는다.



편안한 착용감과
실루엣 그리고 소재,
이 세 가지를 가장 신경 써요.

과한 디자인은
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작은 디테일이나
포인트를 숨겨둬요.

- 무신사 브랜드 언박싱 <포터리> 편




만날 때마다 멀끔하고 단정하게 잘 차려입어서 허구한 날 바스락거리는 추리닝만 입는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친구,


머릿속의 우선순위 칸막이가 예쁘게 잘 나뉘어 있어서 자기 일 또한 엄청 야무지게 잘하는 친구, 그 와중에 요즘 패션 트렌드도 적당한 수준으로 잘 꿰고 있어 얄팍한 패션 잔지식 스웨그 따위 도통 안 먹히는 철통 같이 얄미운 친구,


그래서 볼 때마다 짜증 나지만 얼굴이 상당히 훈훈한 바, 곧바로 기분을 좋게 하는 그런 은은한 마법을 부리는 멋진 친구의 옷장 안에 잔뜩 들어있을 법한 <포터리>의 산뜻한 아이템 - 좋은 구경 정말 잘했습니다!




24SS 트렌드 키워드


헐레벌떡 행사장에 도착해서 관계자 분들께 <무신사>의 세일즈 데이터와 세미나 결과를 토대로 제안하는 '24SS 시즌 패션 트렌드 키워드' 여섯 가지를 하나하나 소개받을 때,


개인적으로 주입식 테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도 그것들이 모두 위화감 하나 없이 술술 받아들여졌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었다.





Soft Utility - 고프코어
Denim On Denim - 데님의 확장
Artisanal Touch - 크래프트 디테일
Grunge Revival - 그런지의 귀환
Refined Casual - 새롭게 정의된 캐주얼
Sportscation - 블록코어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패션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위의 여섯 가지 키워드가 다음 시즌을 위한 패션 콘텐츠의 제작 혹은 개인의 스타일링에 있어서 관련 생각 전개와 정리에 있어 꽤 괜찮은 기준점(참고 아이디어)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함께 소개해봐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국 브랜드에 지나치게 치우친, 한마디로 상당히 편협하던 저의 패션 브랜드 학습의 지평을 넓혀준, 그래서 결과적으로 <스눕피의 브런치> 구독자 분들께 국내 패션 브랜드와 그 트렌드를 균형감 있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무신사> 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 읽으면 참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12


https://brunch.co.kr/@0to1hunnit/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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