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파투 - 샤넬의 라이벌, 원조 스포츠웨어, 제일 비싼 향수
열렬한 구애 끝에 청혼 성사!
사랑하는 여인 젤다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위대한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뉴욕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곧 뉴욕에 도착한 몽고메리 숙녀 젤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기겁한다.
뭐지?
저 촌스러운
주름 장식은?
저런 스타일을 하고
뉴욕을 거닐겠다고?
절대 안 돼!
오랜 절친 ‘마리’에게 다급히 부탁하는 피츠제럴드,
젤다의 쇼핑을
좀 도와줄래?
그렇게 피츠제럴드의 친구 ‘마리’의 도움으로 ‘젤다’가 뉴욕에서 처음으로 구매한 옷은 ‘파투(Patou)’의 슈트였다.
무자비한 세계 대전(1차)과 지독한 유행병(스페인 독감)이 불러온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겠다는 패션 피플의 펀(Fun)하고 컬러풀한 의지로 가득하던 1920년대,
고층 빌딩이 치솟고, 자동차는 질주하며, 기성세대의 도덕적 근거 따위 개나 준 채 마음껏 사랑하며 능동적으로(눈치 보지 않고) 사회 참여하는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고, 바쁜 도시 생활의 라이프스타일이 멋진 삶의 기준점으로 작동하던 그때,
코코 샤넬(Coco Chanel)의 라이벌로 거론되며 당대의 화려한 패션(특히 플래퍼 패션)과 매니시한 여성 룩(가르손느 룩)을 장악한 프랑스의 전설적인 쿠튀리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장 파투(Jean Patou)’,
코르셋이 없는 드레스, 짧은 길이의 치마 등 기존 여성 패션의 제약을 깨부수고 자유로운 감각을 선물한 사람, 무엇보다 기성복 라인(Ready To Wear)의 필요성을 선천적으로 절감한 선구적 디자이너,
고급 취향과 취미 그리고 뛰어난 미적 감각으로 한때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남자>로 불리기도 했던 타고난 '댄디 맨' aka 사교계의 왕자,
19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하우스를 설립하지만, 1차 대전으로 휴지, 이어지는 20년대 패션 신을 곧바로 장악한 장 파투,
훗날 '파투'와 '샤넬' 두 역사적인 경쟁 브랜드 모두의 디렉터를 역임한 ‘칼 라거펠트’는 사실 샤넬의 대표 디자인은 대부분 장 파투가 먼저 선보였던 것이라면서 그의 업적을 기렸고, 이에 반해 코코 샤넬은 무엇보다 시의적절한 파워를 지닌 위대한 디자이너였다고 밝히기도 했을 정도다.
‘장 파투’는 스포츠 전문 의복을 디자인한 최초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는데, 당시 최고의 스타 테니스 플레이어이자 그의 뮤즈 ‘수잔 렝글렌’을 위해 제작한 윔블던 유니폼은 전설로 회자된다.
무릎 위 길이의 화이트 실크 주름 스커트와 슬리브리스 화이트 가디건 그리고 헤드 밴드까지!
뿐만 아니라 승마, 골프, 스키, 수영(특히 니트 수영복을 최초 개발했다) 등 스포츠 활동에 꼭 맞는 운동복, 다시 말해 현시대 스포츠웨어의 효시가 되는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선진적으로 제작했으며, 실크 패브릭을 활용한 디자이너 타이를 처음 소개하고, 가디건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한편 1923년, 지중해 해안에서 크루즈 여행을 즐기던 패션 아이콘 ‘코코 샤넬’의 햇빛에 그을린 피부가 뷰티 트렌드가 되어 일광욕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기회를 포착한 장 파투는 이러한 일반 여성의 태닝 관심의 길목에서 최초의 선스크린(자외선 차단) 오일 <Chaldea Oil>을 개발해 공개한다(그야말로 라이벌의 인터셉트).
그런데 수선화와 오렌지 플라워 등의 향이 잘 배합돼 첨가된 이 선탠오일은 그 고유의 향기가 너무 좋던 나머지 태닝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여성들이 시도 때도 없이 활용하는 뷰티 에센셜이 되었는데, 장 파투 하우스는 그 오일의 향을 고도화해 향수 개발로까지 이어간다.
1929년,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하며, 세계 경제의 침체기가 찾아온다.
이에 장 파투는 이 우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패션 비즈니스의 새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눈에 띄는' 아이템을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다.
그의 깊은 고민의 결과는 '향수' 판매였고, 그 길로 장 파투는 인하우스 조향사(앙리 알메라스)에게 고품질 재료 기반의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수>의 제작을 부탁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우스의 전설적인 향수 Joy가 탄생한다.
이 인간이 진짜 미쳤나? 사업 쪽박을 우려하던 조향사의 걱정과는 달리 장 파투의 럭셔리 향수 Joy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침체기 속 브랜드의 향기로운 빛이 되어준다.
1936년, 48세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장 파투, 그리고 15년 이상의 하우스 침체기,
하지만 그 후, 연이은 스타 아티스틱 디렉터 군단(마크 보한, 칼 라거펠드, 미셸 고마 그리고 장 폴 고티에)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던 브랜드에 차례로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었고, 장 파투 하우스는 2018년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 LVMH에 인수되었다.
지옥 같던 10년대, 10년의 세월을 꽁꽁 얼린 전쟁과 독감, 죽음에 지친 사람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노호하던 와중에 여성 해방이 이뤄지고, 참고 참았다는 듯 기술, 문화, 자본의 발전은 급물살을 탄다.
그렇게 찾아온 황금 같은 20년대, 그리고 10년의 호시절, 하지만 같은 기간 사회 불평등은 최고조를 향해 달렸고, 1929년 10월의 미국 주식 시장 붕괴와 함께 대공황의 늪이 찾아온다.
당시의 10년이란 세월의 폭을 1년 단위로 축소해 100년 뒤에 이어 붙이니까 요즘 세상 모습과 똑 닮아 있어 새삼 놀라웠다.
그래, 맞아.
패션이 돌고 도는 이유는 그것을 감싼 이 세계의 역사가 비슷한 양상을 한 채 돌고 돌기 때문이겠지.
한편 커리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1925년의 '장 파투'는 하우스 본사 1층에 '스포츠 코너'를 구성해 다양한 스포츠웨어를 판매했는데,
거의 모든 옷에 모노그램 자수를 새겨 넣어 하우스의 충성 고객을 위한 로고 플레이 브랜딩을 본격화했다고도 전해진다.
지난 4년, 럭셔리 하우스와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의 치솟는 인기와 관련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온 각종 '트렌드'와 '현상'의 메시지들과 앞선 이야기들의 주제가 너무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코로나 블루와 컬러 패션 테라피,
스포티즘 아이템(원마일 웨어) 열풍,
벼락 부자와 벼락 거지 그리고 슈퍼 럭셔리 아이템에 대한 갈망,
남과 구별되는 로고 플레이에 대한 집착,
성별 없이 뒤섞이는 젠더리스 룩의 대중화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오늘 나는 장 파투 옹의 인생사 테이블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뜻밖의 가르침 하나를 야무지게 챙겨간다.
내(우리) 앞길이 궁금할 땐,
찬찬히 뒤를 돌아볼 것.
같은 실수는 틀림없이 반복되고,
같은 성공은 틀림없이 재현된다.
이제는 정말이지
다 알면서도 안 하고 못 하는
그 미련함을 벗어버려야 할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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