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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08. 2023

기세등등 임영웅 단상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 '알루왈리아' & 패션 계정 '캣션윜'



중년의 푸른 물결


지난 주말, 엄마의 임영웅 콘서트 티켓 현장 수령을 돕기 위해 올림픽공원역에 함께 갔다.


앞으로 인생 살며 이렇게 많은 중년 여성의 손짓, 발짓, 목소리와 한 공간에서 내가 마주할 일이 또 있을까?





거침없는 푸른 물결에 휩쓸리다 보니 나는 방향 감각을 잃었고, 스밍을 도와주겠다는 피켓 중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자꾸만 치였다.


우리끼리 한 얘기(예컨대 간이 화장실)에도 그 위치를 내가 알려주고야 말겠다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고,


깜빡 줄을 잘못 서면 마치 우리가 잘못 줄 서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처럼 바른 방향을 일러주셨다.



친절, 봉사, 중년

그리고 임영웅



함께 엮이는 키워드들이 참 따뜻하군?



완벽한 기승전결ㅠㅠ



氣勢騰騰


문득 사람의 기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신이 인간에게 능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과 고난을 안겨준다면, 임영웅은 얼마나 등등한 사람인 걸까?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은 저 수많은 중년의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는 운명, 그들에겐 알량한 수가 통할 리 없으니 정직의 길이 곧 가장 합당한 처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주제넘은 감정이입을 해보기도 했다.


적절히 비견될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인생 성공의 비결을 찾아 나선 청년 기자 나폴레온 힐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던 중년 데일 카네기의 시선이 불현듯 상상됐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세월의 격차를 넘어 인생 성공의 비밀을 중년 세대와 역으로 공유할 수 있는 수준에 청년 임영웅은 도달했다는 것이 아닐까.



실감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과 힙합 그리고 일상에 관해 떠드는 내 블로그에서 최다 조회수 및 최다 댓글을 기록한 포스트는 단일 조회수 기준으로 2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임영웅 센세 찬양 글이다.



https://brunch.co.kr/@0to1hunnit/295



하루는 그의 팬카페 <영웅시대>에 내 블로그 포스트 좌표가 찍히는 바람에 중년 아주머니 분들이 그야말로 전국콘 티켓팅 현장마냥 와르르 모여드셨다.


무척 찬란했지만 솔직히 말해 조금은 무서웠던 기억이다. 후덜덜!


아무튼 해당 글 덕에 엄마와 함께 방송 출연을 해달라는 제의도 받았고, 이런저런 문의와 감사 메일이 쇄도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하다. 마치 훈련소에서 받는 사랑하는 이의 귀한 편지처럼 한 번씩 조심스럽게 꺼내어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별미 같은 포스트랄까.



적응이 안 되는


평생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지낸 엄마,


그녀의 활력 템포가 유일하게 치솟는 순간,

임영웅을 만나는 곳 100m 전!


장미꽃 한 송이를 안겨줄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늘의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어디 한 번 뛰어올라 볼까?


30년을 넘게 봤지만서도 볼 때마다 새삼스럽고 적응이 잘 안 된다.



내 손목을 침범한 영웅 팔찌ㅠㅠ



오직 사랑으로


지난 6월의 주말,


건대 커먼그라운드에서 임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는 전시가 열렸고, 인천에서 엄마가 올라왔다.


그리고 매우 인상적이었던 그곳에서의 일화 하나,


토요일의 해가 저물고 하늘에 걸린 전구에 빛이 하나 둘 들어오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각자 수다를 떠시던 어머니들이 환호하면서 아이 같이 박수를 쳤다.


무언가를 지극히 사랑하면 세상의 당연한 것들이 대수롭게 보이는 모양이었고, 어쩌면 이런 게 사랑의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영웅 동굴


내 나이 스물다섯에 한 광고 회사에서 반년 동안 카피라이팅 교육을 받다가 그 대미를 장식하겠다며 대중 발표를 하나 했다.


대학교 강당을 가득 메운 수 백명의 청중, 그들에게 내가 전한 메시지의 요는 <누구나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피곤한 인생 살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을 때, 당장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 임영웅 센세의 말마따나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가벼운 모래 알갱이가 되어 언제든 숨어 들어가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릴 수 있는 컴컴한 공간, 그러나 복잡한 머릿속만은 하얗게 지워주는 단 몇십 분, 단 몇 시간의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벅찬 몰입의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또 무언가에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축복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 축복은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주고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선물의 다른 이름이다.




축복받으셨군요!



아무튼 대한민국의 중년 선생님들이여,


영웅 동굴 쉼터에서 배 터지게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20000!






Priya Ahluwalia




인도와 나이지리아의 피를 반씩 물려받은 라고스 태생의 영국 패션 디자이너 ‘프리야 알루왈리아 Priya Ahluwalia’, 그녀의 패션 커리어를 따라가며 되새겨 본 당연한 이야기 두 가지.



1.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2. 좋은 일을 한다고 운동가는 아니다.



데드스톡 작사
빈티지 작곡


대학 시절 방문한 나이지리아 라고스, 미국과 영국의 세컨 핸드 잉여 의류가 거기까지 흘러 들어온다는 것을 목도하고 호기심이 폭발한 그녀는 이후 인도 파니파트에 방문해 쓰레기 옷 더미를 발견한다. 거기서 찍은 사진으로 포토북도 만들고, 내친김에 데드 스톡/빈티지 아이템을 활용해 졸업 작품을 완성한다.





그 기조는 쭉 이어지고, 2018년 설립된 동명의 패션 브랜드 운영의 기본 지침이 된다.


인도와 나이지리아에서 느꼈던 냄새와 소리,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수와 텍스타일, 염색 그리고 그에 기반한 미감 확립은 브랜드의 컨셉을 다져 주었고, 빈티지 재료 소싱이라는 아이디어 전개에 활용되었다.



Ahluwalia’s Spring Summer 24 collection




Not 운동가

But 디자이너


분명 환경에 좋은 일을 하지만,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와 같은 키워드는 좀 듣기 거북하다는 디자이너, 그녀는 그저 더 나은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확정적 표현(물론 모두가 공감할 테지만)은 쓰기 싫은 남다른 디자이너의 차별적 간지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Ahluwalia’s Autumn Winter 23 collection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마틴 로즈 Martine Rose’를 꼽은 점(휘둥그레),


부모님으로부터 투팍 2Pac, Mobb Deep 맙 딥 등 미국 힙합의 조기 교육을 성실히 이행한 점(희번덕),


글쓰기와 함께 디자인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문화 레퍼런스(인도인 어머니,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자메이카인 새아버지 그리고 영국 런던에서의 삶)로 일군 퓨전 아이디어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 등이 나의 마음(취향)을 크게 사로잡았다(저격했다).


제길슨!

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덕질을 시작해볼까 한다.






작은 고추론

(小苦椒論 Small Pepper Theory)


틈만 노리며 인생 산다.


번지르르한 규모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덩치 큰 차보다는 적당한 크기의 차가 좋고,

식당 메뉴의 1인분도 아쉬운 양을 선호한다.

그래서 곱빼기를 시킨 역사가 없다.


대형 커뮤니티의 유행 강요에는

먼저 거부감이 들고,


몇 십만 패션 유튜버의

트렌드 길잡이 영상보다는


강소 블로거나 유튜버의

섬세한 코멘트가 더 좋다.


양이 질을 담보하는 일에는 ★한도★가 있고,

아시다시피 작은 고추가 원래 뒤지게 맵다.



무언가를 떠올리면 무도 자막이 먼저 생각나는 나는 무도 자막 중환자다. 명수 형이 그랬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고!




올해부터 인스타그램 패션 정보 계정

'캣션윜(catshionweek)'의 명예 팔로워로 활약 중이다.



<영세> 이런 말 쓰면 나로서는 일단 흔들린다. 저런 위험한 표현은 조심해서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스토리에 자꾸 올리지 않아 좋고,


반 보에서 한 보 정도 앞선 균형감 있는 패션 트렌드를 흡수할 수 있어서 즐겨 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은근히 자리 욕심이 있다.


그래서 명예직에 취약한 편인데, 부끄러움이 다소 많은 관계로 대개 팔로워의 직위에 머무른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명예 팔로워로 산다.


예전에 내돈내산 국내 빈티지 샵 추천 포스트 이후로 오랜만에 꾸밈없고 광고 없는 추천의 글이다.


참고로 그때 내가 추천한 빈티지 샵은 Sober 소버, Archivin 아카이빈 그리고 Scape 스케이프였다.


꾸준히 오래 좋아하고, 싫증을 내지 않는 기질은 나란 인간의 몇 안 되는 장점이 아닐까 싶다.


한 번 좋아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리고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이 노래를 들을 가치가 있는 단 한 줄의 힘: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진 않아 그댈 만났으므로"



[얼떨결에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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