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이유 그리고 자격에 관하여
블로그 운영 1874일 차,
뭐라도 써야겠으니까 어떤 주제에 관해 떠들어댈 걸맞은 수준도 아니면서 대충 끄적여 본 일도 많았다.
성급한 행동의 말로야 뻔하다.
소심하게 '저장' 버튼 누르고 평생 보관하기.
5년을 꽉 채워 나름 콘텐츠 제작자로 살다 보니까 타인의 글이나 영상을 감상할 때면 내가 썼던 비슷한 유형의 글을 돌아보게 된다.
말하자면 부끄러움의 몫이라든가 닮고 싶은 점 혹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음, 그런 것들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정리해 보는 것이다.
나는 <자격>에 되게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능동의 상황에서나 피동의 상황에서나 내 처지와 주제에 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무척 소극적이고 소심해 보이기만 하는 나를 보며 아빠가 걱정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용케 하나하나 세상이 내어준 숙제를 곧잘 해치우며 무탈하게 살아가는 내가 이제 마음이 놓이시는지 별말이 없으시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아빠와 나, 이제 둘 다 나이를 어느 정도 까먹어서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애써 서로의 시선을 비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의 성장 관점에서 자격 운운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성질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자격이야 스스로 부여하면 그만이니까.
자격은 무슨 자격
쓰고 싶으면 쓰는 거지.
문득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장>이 떠오른다.
현실과 관계없이 무엇이라도 믿게 만들었다던 그의 타고난 능력.
조건을 왜 생각해?
목표를 생각해야지.
어차피 될 건데!
그래서 잡스의 인격을 둘러싼 주변의 나쁜 평은 이제 워낙 유명한 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조건을 따지지 않는 무모하고 눈치 없이 희망적인 사람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인간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을 리가 있었겠나 싶다.
돌격 앞으로! 외치며 대단히 크게 성공한다는 것은 매일 누군가의 개새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일이 아닐까.
현실적 조건이 아닌 이상적 목표만을 생각하는 고집(버릇)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지금 회사 대표님을 만나고 나서였다.
자격이나 조건을 따지기 전에 가능성을 먼저 점쳐보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사람, 어찌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성향과 반대인 분이기에 처음엔 정말 많이도 삐걱댔는데, 지금은 어느덧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음, 갑자기 글이 이상한 데로 가서 다시 붙잡아 와야겠다.
이리 와ㅜㅜ
(갑자기)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신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되고, 전문가가 되려면 먼저 전문적인 사람이 되면 된다>라는 상당히 간단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정말 못 말리게 싱거운 인간이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중에서
아무튼 돈 한 푼 못 버는 이 블로그 글쓰기라는 것이 사실 엄청 귀찮은 날도 많은데,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계속 써나가며 발악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지속하는 행위 그 자체가 내가 감내할 현실의 가장 기분 좋은 형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소중한 몇 분을 기꺼이 투자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구독자 분들과 이렇게 만날 수 있으니까.
올해도 얼마 안 남았네요.
마무리 잘하세요!
[그리고 본격 현실왜곡장 입문 노래]
https://youtu.be/MRMhH1mnEg4?si=2FgyL7YCRw-yOc4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