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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Dec 12. 2023

영화 보고 신발 산 얘기

블루 자이언트, 마르니 로퍼 그리고 칸예 한 스푼



블루 자이언트


지난 주말, 영화관에서 <블루 자이언트>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질질 짰다.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18세 소년과 한 팀을 이룬 동갑내기 친구들의 분투, 서로 다른 셋이 모여 삐걱대며 간신히 하나의 팀을 이룬다.


이름하여 JASS.



<스눕피의 브런치>와 딱히 어울리진 않는다.



그들은 공동의 목표 달성을 꿈꾸지만, 각자의 뜻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세계 최고를 노리기도, 누군가는 그저 늦깎이 초심자로서 개인의 벽을 뛰어넘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자신의 기량을 최대치로 뽐내면서 팀도 구원하는 '솔로' 타임에서 그들이 넘어서야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 가둔 한계뿐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자각과 끝없는 연습뿐이다.



일본 최고의 재즈 클럽 So Blue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영화는 결국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어기차게 저들처럼 무언가에 미친 듯이 몰입해 본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삼십 대의 내가 2007년의 나한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품을 하다 울어도 일단 눈물이 나면 슬퍼지는 건 매한가지라더니 어떤 포인트에선지 눈물이 한 번 그렁거리니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 슬픈 감정이 일었다.





영화의 시작점, 입김이 나고 입술의 피가 터지는 추운 겨울, 바깥에서 나 홀로 색소폰 연습에 매진하던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의 뒤편으로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 쓱 지나간다.



너도 혼자구나.



하지만 고양이는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저 멀리 무심하게 자기 갈길 간다.


어쩌면 무의미한, 쓱 지나가는 장면.


그런데 돌아보니 거기에 영화의 핵이 담겨 있었구나 싶다.


혼자구나. 너도 혼자구나? 결국 혼자구나!


영화 리뷰는 언제나 그렇듯 길게 빼는 것이 두렵다.


잘 모르는 분야라서 조심하게 된달까.


(갑자기) 자기를 알뜰히 보살피며 더 나은 내가 되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든 분들께 행운이 깃드는 연말이 되기를!





운명


헤일리 비버 때문에 마르니 Marni 블랙 로퍼를 너무너무 사고 싶던 올해였는데, 지난주에 '떨이' 전문 패션 플랫폼으로 급부상한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보내준 세일 링크 속에서 무려 정가 149만 원의 마르니 로퍼가 34만 원에 할인 판매되고 있는 걸 보고는 눈을 까뒤집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 사이즈 옆 남은 재고 표기는 5개 이하.


어쩌지? 살까? 말까?


제길슨! 아니야. 비슷한 신발 있잖아!


돈 아끼자. 스눕피야!


그래, 착하구나.



헤일리 로드 비버 aka 로퍼의 여왕



하지만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전 출근길에 문득 그녀의 생사 여부가 너무 궁금해 다시 접속해 본 사이트,


근데 너 왜 아직 살아 있니? 생명력도 질기구나! 내 새끼가 되고 싶어 숨통 안 끊은 거니?


옆으로 시선을 쪼르르 옮기니 변경된 문구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라스트 피스



담백하게 쓰인, 매우 절실한 그 유언은 받들어야지 싶어 지하철의 개찰구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인 남자 스눕피, 스마트폰에 코박죽하고 결제 완료!


똥줄이 타야만 그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이렇게 미련한 나 같은 바보를 두고 나온 히트곡이 하나 있지 않았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피츠제럴드의 예술 같은 단편 <컷 글라스볼>에서 '운명'은 이렇게 묘사된다.


나는 너의 보잘것없는 계획 따위보다도 강하다. 나는 사물이 귀착되는 결말이고, 너의 작은 꿈의 구슬픈 말로이다. 나는 화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이고, 사라져 가는 아름다움이며,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다. 온갖 우연, 간과된 것, 결정적인 시기를 형성하는 일각 일각, 그것들은 모두 나의 것이다. 나는 어떠한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예외이고, 너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인생이라는 요리의 양념인 것이다.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또 예상대로 되지 않지만, 그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면서 무난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의 여유, 바꿀(뀔) 수 있고 바꿀(뀔) 수 없는 것을 분간할 줄 아는 지혜를 하나하나 쌓아 가는 일, 그래서 매일 찾아오는 운명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것.


이것들이 바로 사람이 철든다는 개념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온 나인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음에도(돈 아끼려 다짐하던 남자 스눕피) 여유가 낭낭하게 넘치고,


운명 앞에 겸손할 줄 알고(라스트 피스 - 개찰구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남자 스눕피),


바꿀(뀔) 수 있고 없고를 분간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춘(이럴 거면 그러지 말 걸 스눕피)


나는 역시 철부지 삼십 대가 아닐까? 쩝.


끝으로 <스눕피의 브런치> 구독자이기도 한 떨이 전문 패션 플랫폼 소속의 그녀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혹시 이 글 읽으려나?




New Again


진짜 단조로운 삶을 산다.


가끔 너무 심심해서 까무러칠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진짜 좁은 집의 더 작은 책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무 책이나 빼내어 아무 장이나 들추면 그런대로 1,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다음에 인천 본가에 들를 때, 내 방 베란다에 잔뜩 꽂힌 책들 중 무엇을 더 뽑아올까 궁리하면 또 10분, 20분이 보너스처럼 휙 지나간다.


조용히 시간을 죽이며 버티는 지루한 삶,


스눕피,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어제 나의 비공개 Tumblr 텀블러에 접속해서 2013년에 쓴 어떤 글들을 쭉 읽어 보는데, 진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별로여서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비공개 블로그 속에서도 또 어딘가로 숨고 싶은 나는 정말 미친놈인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겉멋과 허세로 가득한 글투성이. 10년 전의 나는 저런 생각을 했구나.



누구나 한 번쯤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눈에 띄는 성장 없이, 변함 하나 없이 한심하게 사는 것 같지만서도, 그래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매일 무언가를 깨닫고 또 아주 약간이나마 매일 다르게 생각하는 작은 노력이 쌓였더니 그래도 10년 전의 몹쓸 글들을 이렇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나마 된 것이 아닐까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쳇바퀴 돌며 맨날 그 타령만 하는 것 같은 나를 위한 작은 셀프 위로.





우리 칸예 형은 지져스께서 매일 자비를 베풀어주신 바 또 새롭고 더 새롭게 거듭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며 그의 노래 <New Again>을 통해 신께 거듭 감사를 표했는데,


따로 섬기는 신이 없는 나로서는 일단 그의 격앙된 감정이나마 빌려와 나 자신을 소심하게 다독일 뿐이다.


스눕피야, 내년에는 더 잘 살아보자.


(갑자기) 구독자 여러분의 내년도 새로운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하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iiii or Heyy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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