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Dec 29. 2023

23년 마지막 포스팅

헤븐 바이 마크 제이콥스 잡설 그리고 연말 다짐



추억 보부상


나는 대한민국 대표 추억 보부상이다.


그래서 블로그 콘텐츠의 상당수가 향수와 얽혀 있는데, 나 혼자만 소중한 추억에 홀로 심취하다가는 남몰래 멋쩍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짭짤한 치즈볼 한 알에 내 달달한 추억 한 알



두 해 전 회사에서 만난 취향 잘 맞던 Z세대 여자 인턴이 나와 메신저로 소통하다가 대체 언제적 말투를 쓰시는 거냐고 놀린 그날부터 나는 내 말투를 엄청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세대와 관계없이 유연하게 잘 전달되고 있을 거라 착각했던 나의 블로그 콘텐츠가 실은 나 홀로 열심히 쌓아 올리던 바벨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혹스러웠다.



언어가 다르면 될 일도 안 된다.




heaven

BY MARC JACOBS


Z세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일부러 꺼냄)


오늘은 최근 2, 3년에 걸쳐 외국 Z세대 패피들이 줄 서는 세련된 패션 노포이자 최고의 추억 보부상 브랜드가 된 Marc Jacobs 마크 제이콥스에 관해 짧게 떠들어볼까 한다.





특히 천부적인 큐레이팅 감각을 보유한 호주 시드니 출신의 아트 디렉터 'Ava Nirui 아바 니루이'가 이끄는 마크 제이콥스의 헤븐 라인은 개중 으뜸이 아닐까?





일찍이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를 이리저리 재밌게 가지고 놀던 Bootleg 부트레그 패션 바이럴로 인스타그램에서 이름깨나 날린 '아바 니루이'는 마크 제이콥스의 스펠링을 대놓고 잘못 쓴 대가로 마크 제이콥스의 직접 부름을 받게 된다.




너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냐?

- Kwak by MARC JACOBS




"돈이 아니라 재미 때문에 한 거예요. 럭셔리 브랜드 아이템, 못 사입으세요? 그냥 만들어 입으세요."




이후 공식 협업만 몇 차례,


내친김에 마크 제이콥스와 아바 니루이는 합심하여 2020년 가을에 신규 스핀오프 라인 '헤븐'을 공식 론칭한다.




아바 니루이 X 마크 제이콥스의 캡슐 컬렉션 - 스트레이 랫츠의 줄리안 콘수에그라가 참여했다.




어디서 많이 봤냐?




마크 제이콥스의 화려했던 지난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새 시대 패션 러버들에게 감각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아바 니루이'는 가장 90년대스럽고 가장 00년대스러운 이미지 - 예컨대 FRUiTS 매거진이나 소피아 코폴라 혹은 코트니 러브와 앤젤리나 졸리의 소싯적 - 를 참조 활용했고, 때 아니게 그 시절의 모델도 적극 기용했다.




케이트 모스와 영국의 록 밴드 '플라시보'의 브라이언 몰코 with HEAVEN




아무리 번지르르 화려하고 반짝거려도 지금 만연하고 있는 것이라면 흥미를 싹 거두는 Z세대의 알 수 없는 머릿속을 <헤븐 바이 마크 제이콥스>는 당대의 컬러풀한 '빈티지' 이미지로 유혹했고,


상위 브랜드에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은, 유연하고 비공식적인 면모를 풍기며 브랜드 아닌 브랜드 같은 브랜드가 줄 수 있는 덜 브랜드 냄새나는 쿨한 브랜드의 재미를 보장했다.




HOT 캔디 스타터 팩 - 얼굴에 슥 발라봤으면 개추




물론 거기엔 디렉터 '아바 니루이'가 시대와 지역을 좌로 우로 뒤로 앞으로 마구 넘나들며 디깅하던 습관, 즉 그녀의 레퍼런스 탐구력이 큰 몫을 했다.


편집의 시대, 다양한 문화적 레퍼런스에 대한 집착적 연구는 대체적으로 즐거운 예술적 결과물을 보장하는 것 같다. 마치 과학처럼.




1963년생, 예순 바이 예순 제이콥스 폼 미쳤네?




90년대 그런지&레이브 바이브 그리고 00년대 Emo 감성이 낭낭하게 묻어나는 헤븐의 컬렉션은 이름 그대로 당대의 추억이 흘러넘치는 (마크 제이콥스 본인에게) 천국과도 같은 노스텔지어의 공간인 동시에


단순히 과거를 재탕하는 추억 팔이에서 멈추지 않고 요즘 세대 친구들의 입맛과 수준에 맞게 그 시절의 열기를 친절히 번역 소개하는 영원한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의 개성적인 개정본인 셈이다.




찰떡 같은 모델 - 릴 우지 버트, 스티브 레이시 그리고 영 린




구닥다리 꼰대 같은 이야기를 꺼내어 놓으려거든 정공법의 자세를 취하되 아주 세련된 배경과 재료를 취해 감아 던져야 하는 건가.


그러면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세대의 입맛을 가장 잘 이해하는 브랜드라면서 매우 역설적인 하입을 챙겨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쩝.



대학 나왔냐?




어설프게 눈치 보는 애매한 태도 말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을 아주 투명하고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포인트!


그 시절, 우리 이모도 누군가의 Z세대였으며, 시대를 떠나서 모든 새로운 세대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법일테니까. 쩝.


우리 이모의 화장대와 사진첩 속 오래된 이야기, 우리 이모부의 비밀 서랍 속 부쳐지지 못한 연애편지,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군. 쩝.



올해 크리스마스 주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무려 63년생 섹시 할재 '환갑 바이 마크 제이콥스'



아무튼 기억하라구!


마크 제이콥스 센세도 누군가의 삼촌이고 고모부라구! 쩝.





새해 다짐


옹졸해지려 할 때마다 선물은 결국 주는 사람에게로 돌아온다는 휘트먼의 시구를 되새긴다.




The gift is
to the giver,
and comes back
most to him
- it cannot fail.



새해에 참 잘 어울리는 메시지 같다.


내년에는 더 많이 주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지.


왜냐하면


그것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삶이 아쉽지 않기 위한 최고의 길이고,


빤히 예상 가능한 후회에 맞서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이게 2023년의 마지막 포스트가 될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추천 노래(feat. 칸예)]

칸예의 샘플링은 역사를 새로이 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왜 계속하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