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올드 오크> & 패션 디자이너 '알라이아'
*경고: 스포일링이 될 수 있겠습니다. 죄송!
영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 부모 세대에 번성했던 탄광의 갱도는 폐쇄된 지 오래다.
공동체 정신은 죽었고, 패배주의만 살아남았다.
팍팍한 삶, 툭하면 남을 헐뜯고 세상을 비난하는, 어느덧 중년이 된 자식 세대에게 주인공 'TJ Ballantyne 발렌타인'이 운영하는 펍 <THE OLD OAK>는 숨통 트이는 해우소이자 곧 죽어도 지켜야 할 최후 보루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마을에 시리아 난민 다수가 들이닥친다.
"가뜩이나 짜증 나 죽겠는데, 저것들은 또 뭐야?"
혐오하고 분노하고 차별하는 마을 사람들, 하지만 그와 달리 2년 전, 새 삶으로의 새 출발을 결심한 발렌타인은 그들의 정착을 돕기로 한다.
전 세계를 누비는 멋진 사진작가로의 꿈을 키우는 시리아 난민 소녀 ‘야라 Yara’는 그런 발렌타인의 도움으로, 모국 수용소에 갇혀 생사를 알 길 없는 아버지가 선물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하지만 분노하며 날뛰는 동네 주민에 의해 망가져 버린) ‘카메라'에 새 생명을 부여한다.
그리고 하나 둘 친해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 안에 하나하나 담아 간다.
한편, 펍의 뒤편,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발렌타인의 아버지가 직접 촬영한, 탄광의 옛 영광을 담은 사진 액자가 줄지어 걸려 있는 널찍한 공간이 펼쳐진다.
지금은 먼지 쌓인 잡동사니뿐인 그곳, 하지만 본래 없는 살림 속 마을 주민을 위한 넉넉한 요리가 준비되던, 함께 식사하며 울고 웃던 따뜻하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세월은 훌쩍 흐르고, 반면 시간이 멈춘 창고 속 어떤 사진 액자 아래에서 유별히 돋보이는 이런 문장 하나가 그들의 연대를 위한 영감이 되어준다.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80년대 중반, 광부들의 파업 기간, 배고픈 가족을 위해 식사를 대접하던 아내들, 그날의 마음, 그때의 정신,
‘야라’와 ‘발렌타인’ 그리고 친구들은 지역 주민과 난민 모두를 위한 커뮤니티 푸드 키친을 열어 작지만 큰 변화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 속 한 장면,
자신의 생명을 살려 준, 너무나 소중히 아끼던 강아지 ‘마라 Mara’를 잃은 ‘TJ 발렌타인’에게 ‘야라’와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가 긴 말보다 음식이 먼저인 순간이 있다며 따뜻한 음식을 대접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대가 잘 먹는 모습을 봐야
그때나 자신들은 돌아가겠다고.
그리하여 ‘켄 로치’ 翁 아마도 가라사대,
연대를 원한다면,
먼저 食口가 돼라!
80년대를 대표하는 튀니지 출신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는 통제 없는 가속 환경이 인간의 창의성을 망가뜨린다며 ‘삶’과 ‘쉼’ 없이 ‘전진’만 하는 패션업계의 타임테이블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오직 영감이 떠오를 때만 일을 했고, 여성의 마음과 영혼을 시간 들여 깊이 이해하며, 특정 시즌이 아닌 여성의 특정 바디를 위해 디자인했다.
그런 ‘알라이아’의 스튜디오에는 무엇보다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음식 문화’, 정확히 말해 ‘대접 문화’였다.
우리 집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제 가족인 친구들은
언제든 올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모든 작업은 멈췄고, 알라이아는 60년대 후반부터 평생 그와 함께한 오랜 집사 겸 요리사 Soumaré 수마레와 함께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사람들에게 대접했다.
식사는 자주 저녁까지 이어졌고, 디자이너, 모델, 에디터, 감독, 건축가, 댄서 등 전 세계의 친구들이 모여 앉아 요리를 즐기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옷을 만드는 일과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알라이아를 구성하는
근본입니다.
어린 시절,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자란 알라이아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굶주린 이들을 위해 늘 여분의 음식을 준비해 두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할머니로부터 음식 접대의 기본기를 배웠다고 밝혔는데, 그것은 굉장히 튀니지적인 태도였다고도 덧붙였다.
저는
자신이 비롯된 곳을
잊어버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알라이아는 그의 스튜디오에 신규 입사한 이들에게 앞으로 패션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주겠다는 메시지를 꼭 전달했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러한 교육 철학은 패션을 삶의 방식이자 인생의 선택이자 세상을 대하는 태도로 소중히 여긴 그의 가치관과 깊이 엮여있었을 것이다.
그는 생전 모든 크리에이터를 존중했고, 글이든 건축이든 사진이든 <예술 활동>을 전개하는 이들을 모두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을 점심, 저녁 식사 자리에 빠짐없이 초대해 풍성한 만찬을 대접했다.
알라이아에게 일과 삶 그리고 예술에 대해 논하던 이 식사 자리는 패션 행사에 참석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고, 그는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매료됐다.
알라이아를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신의를 지켰고, 일단 함께 일하게 되면 오래 일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가족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아! 가 족같다, 아니, 가족 같다는 건 뭘까.
그건 역시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관계가 아닐까?
그리하여 ‘아제딘 알라이아’ 翁 아마도 가라사대,
진짜 예술을 함께 하려거든,
먼저 食口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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