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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24. 2023

보고 배우는 패션의 멋

반백 년 패션 장인 '장 폴 고티에' 옹 가라사대



촉수엄금

 

독일의 명문 발레 스쿨에서 공부하고 전문 클래식 댄서로 활약하다가 패션 디자이너로 전직한 이색 경력을 보유한 '빅터 웨인산토 Victor Weinsanto'에 관해 알아보다가 그가 인턴십을 진행했던 '장 폴 고티에'에서의 경험을 하도 극찬하길래, 제길슨!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인물을 슬쩍 건드리고야 말았다.


장 폴 고티에 翁



Weinsanto from zmirov.com



디깅, 좋아하세요?


프로 디거(Pro Digger)라면 공감할 것이다.


끝을 볼 수 없으면 애초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 말이다.


대강 알고 있는 것이 때로는 정신 건강에 더 좋을 때가 있다. 아예 모르고 사는 게 낫지, 대충 알면 간지럽고 안타깝고 아쉽고 막 그런다.



Jean Paul Gaultier from fuckingyoung.es



어느 분야에나 몇 개월, 아니, 몇 년을 잡고 꾸준히 파 들어갈 때, 그제야 손톱만큼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막대하고 위대한 것들이 있는 법이다.


예전에 인기를 끈 대한항공 광고의 카피를 잠깐 빌려오자면, (그래서 넌) 어디까지 가봤니?




어쨌든 훌륭한 감독은
가장 엄숙한 기회를
찾아낼 수 있어.

아이들에게
뭔가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주는 거야.

- 존 업다이크 <달려라 토끼> 중




장 폴 고티에


남자로 태어났지만 남자의 세상에 좀체 어울리지 못했던 소년 '장 폴 고티에',


축구보다는 인형이 더 좋고, 창을 열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조용히 공상하기를 즐겼던 그는 자크 베케르 감독의 영화 <파리의 장식 Falbalas(Paris Frills)>(1945)을 우연히 보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길 꿈꾼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화를 깊이 감상한 후 무려 천직, 소명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고.



결혼 준비를 위해 도착한 파리, 지방 출신의 여인이 예비 남편의 절친인 파리의 패션 디자이너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최초의 선배


세상 모든 쿠튀리에들에게 자신의 스케치를 보낸 십 대의 장 폴 고티에, 열여덟 살의 그를 받아들여준 오직 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었다.


장 폴 고티에는 그가 크리에이티브와 재무적 감각 모두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 본인에게 하고 싶은 디자인을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자유'를 선물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pierre cardin



좋은 건 대물림


그런데 재밌는 건 이후 그를 스쳐 간 많은 어시스턴트들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상업성이나 한계를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디자인하라는 고티에의 가르침 말이다.


보고 배운    배우도록 자동 설계된 인생의 법칙이란  있는 건가?



1984년, 장 폴 고티에 스튜디오에 어시스턴트로 입갤한 벨기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



대물림의 변주


벼룩시장이 자신에게 생애 첫 패션 스쿨이었다고 말하는 장 폴 고티에는 전쟁통에 아버지의 오래된 바지로 스커트를 만들어 입던 어머니의 작업으로부터 그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관련하여 그는 돈이 없지만 옷을 잘 입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언으로 "적게 사되, 좋은 걸 사세요"라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변주하세요."라며 명쾌하게 답했다.


보고 배운 걸 또다시 보고 배우게 하는 사람, 장 폴 고티에.


장 폴 고티에 曰

"저희는 벼룩시장을 샅샅이 뒤지던 세대죠. 그곳에서 네이비 스트라이프 셔츠를 발견해 입기 시작했는데 그게 제 코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중고 명품 전성시대> 中



존중감


지난 2020년, 무려 50년의 패션 커리어에 마지막 정점을 찍고 내려온 그는 평소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자신의 바통을 넘겨받을 후배 게스트 디자이너를 매 시즌 선정해 브랜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 와이 프로젝트의 글렌 마틴스, 하이더 아커만, 시몬 로샤 등이 참여했다.


아베 치토세와 장 폴 고티에



그는 무려 50년이라는 패션 경력을 지닌 바, 컬렉션 진행 작업의 많은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후배들에게 쉽게 훈수를 둘 수 있기에, 그것을 경계하며 자기 브랜드의 역사와 자산을 그들에게 모두 오픈해 최대한의 작업적 자유를 선물한다고 말했다.



하이더 아커만과 장 폴 고티에



다 너 때문이야!


후배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참으로 낭낭한 것 같은 장 폴 고티에,


2004년에 그는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을 수락한 이유를 들며 그것은 곧 자신의 제자였던 '마틴 마르지엘라'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에르메스 하우스의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했고, 이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장 폴 고티에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았다.



이유인즉슨 에르메스라는 전통 브랜드의 오랜 역사 코드를 잃지 않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모던 럭셔리 감성을 수혈한 제자의 작업물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처음 몇 번은 디렉터 직 제안을 고사했으나, 후배도 멋지게 해냈는데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밝혔다.



장 폴 고티에는 1984년의 파리 패션쇼에서 '남성 스커트' 패션을 공개하며 세상에 큰 충격 소재를 던졌다.



치마를 입는다는 것이
남성적이지 않다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

남성성은 옷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닙니다.

당신 안의
그 무언가로부터
나오는 거죠.

- 1984년의 장 폴 고티에




깜짝이야!


<비웃음으로부터 안전한 유일한 공간은 평범함 뿐>이라는 그의 뮤즈 '디타 본 티즈'의 멘트를 철학으로 삼고, 결코 (조금도)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장 폴 고티에 - 남성 스커트 패션의 원조, 마돈나의 콘 브라 코르셋의 제작자, 그는 보고 듣고 배운 걸 누군가가 또 보고 듣고 배우도록 앞서 실천한 사람이었다.





마돈나와 나나


1987년, 파리에서 열린 마돈나의 콘서트에 참석한 장 폴 고티에, 그녀를 처음 본 그는 그녀의 에너지에 압도된다. 하지만 무대 의상만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되뇌었단다.


'내게 코스튬을 부탁했어야지! 내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정확히 2년 후에 마돈나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장 폴 고티에는 결국 그녀의 세 번째 콘서트 투어였던 <Blond Ambition Tour 블론드 엠비션 투어>의 코스튬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공개된 전설적인 콘 브라 코르셋은 젠더의 경계를 무르고 놀라움을 선사한 세상 상징적인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마돈나의 콘 브라 코르셋은 남달랐던 어린 시절,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던 소년 고티에를 걱정하던 그의 부모님이 대안으로 선물했던 '나나'라는 이름의 곰 인형에게 그가 직접 만들어 준 의상이었다.


세계 최고 팝스타의 코스튬을 담당하며 직업인으로서의 꿈은 물론 어린 시절의 꿈을 덧입혀 두 가지를 모두 동시에 이룬 사람, 장 폴 고티에.



장 폴 고티에 옹께서 스스로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아이코닉 의상 중 하나인 블루 앤 화이트 세일러 스트라이프 탑



내가 내 스승


2013년에 그는 자신의 40년 패션 아카이브 전시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자신은 스스로 제작한 모든 컬렉션 아이템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모두 자식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단순한 옷 그 이상의 생각과 테마의 집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자신에게는 옛 작품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배워 만든 제작물로부터 다시 또 스스로 보고 듣고 배우는, 희망적인 자기 복제로 시대를 앞서 사는 사람, 장 폴 고티에.



부족적이며 종교적인 테마, 아름답고 선명한 프린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타투 프린트 패션의 전설로 회자되는 1994 Spring 쇼



없없무와 고티에


요즘 옛날 무한도전을 하나하나 다시 골라 보며 미친 사람처럼 웃곤 하는데, 문득 없없무(없는 게 없는 무도)가 왜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관련 생각 전개를 말하자면 좀 긴 데다가 하찮기도 해서 결론부터 그냥 말하자면,


사실은 매일의 자질구레함 속에 세상의 모든 세련되고도 핵심적인 정답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것.



무한도전 <썩소앤더시티>의 한 장면



구차하게 또 연결해 글을 마무리짓자면 (어디 감히 내가) 장 폴 고티에 옹의 데일리 작업이 자질구레했다는 게 아니라 TV 보고 영화 보는 게 제일 좋다는 그의 시시콜콜한 일상의 충전이 있었기에 그 모든 위대한 작업도 가능했을 거라는 거다.


일주일 내내 옛날 무도만 봐도 배울 것이 낭낭하더라!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참 인상 깊었던, 환갑을 맞이한 지난 2012년의 장 폴 고티에 옹께서 밝힌 생일 계획을 소개하며 이만 물러나보겠다.



침대에 누워있을 거예요.
울면서ㅜㅜ

- 2012년의 장 폴 환갑 고티에



<글을 끝내며>

하루에 적어도 하나씩,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랜덤으로 골라 되는대로 파봅니다.

오늘 아쉬우면 내일 혹은 주말에 더 파보는 식으로 나름의 당연한 대안도 마련했어요.

그래서 이번 주 초에는 '빅토 웨인산토'의 지난 컬렉션과 인터뷰를 멍하니 감상했네요.

근데 이 삽질의 효용이 나름 있습니다.

사실 꽤 분명하고도 이롭죠.

일단 따로 영어 공부를 안 해도 돼서 좋고, 취향 연마에 도움이 많이 되며, 무엇보다 관심 분야를 보다 깊이 있게 즐기기 위한 토대를 매일 한 층씩 쌓아 나가는 기분이라서 내일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삽질과 함께 최종적으로 필터링된 이야기가 블로그의 소재가 되어서 여러분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니까 딱히 거를 일이 없어요.

오늘은 아주 끝날 때까지 말이 많았군요.

한 해 마무리 잘하시구요.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 스눕피 올림



[그리고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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