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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06. 2024

칸예의 가죽 바지 사랑

424, 티모시, 카우보이 패션 '챕스' 그리고 방구석 여포



424 칸예

 

이젠 주변인이 남아나질 않은 칸예 형 - 요즘 이 형은 그의 몇 안 남은 패션 측근 '기예르모 안드레드'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424 포투포>의 '워시드 배기팬츠'를 쉬지 않고 줄창 입는 중이다.





이름 그대로 워싱 디테일이 끝내주는, 빈티지 감성의 송아지 가죽 팬츠, 가격은 한화로 약 175만 원이며, 그의 꿋꿋한 홍보 덕에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미 전 사이즈 품절되었다.



https://fourtwofour.com/



"버질 아블로랑 저랑 펜디(Fendi)에 계속해서 디자인을 갖다 줬는데, 거절당했어요. 6년 전에는 가죽 조깅 팬츠를 들고 갔는데, 그들은 이건 안 된다고 말했죠. 그런데 지금 봐요. 얼마나 많은 잡놈들이 가죽 조깅 팬츠를 입고 있느냐구요!"

- 2013년, 제인 로우(Zane Lowe)와 함께한 BBC 라디오 인터뷰 중



이것도 벌써 10년 전, 올드 칸예의 패션 예지력이야 뭐 두 말하면 입 아픈 일이지만, 칸예의 가죽 바지 사랑은 커리어 내내 오래 지속되어 왔고, 상당히 주관적인 취향으로 보였다.





형, 가죽 바지 사라는 거지?




티모시 웡카


그런 칸예 형 때문인지 요샌 망치 든 사람마냥 못(가죽 바지)만 보인다.


티모시 샬라메의 가죽 팬츠 스타일링이 칸예 형의 중년 하체 비만 핏과 대조적인 매력으로 다가오며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티모시 또한 칸예만큼이나 가죽 팬츠를 즐겨 입는 대표적인 스타일 아이콘이다. 스키니한 몸매 위에서 펼쳐지는 발군의 핏감 그리고 무엇보다 사연 가득한 존잘 얼굴이 참 예술이다.



안구 정화



박력 팬츠


가죽 팬츠에서는 박력이 느껴져 좋다.


아무래도 이건 엘비스 프레슬리, 짐 모리슨 같은 락 스타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준 섹스어필이나 대중 매체 속 19세기 미국의 와일드 웨스트 카우보이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인간이든 옷이든 그 태생의 근거나 환경이 이후 자신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에 정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슬픈 운명론 같은 것이다.





Chaps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와일드 웨스트 시대에 카우보이들은 바지 위에 가죽 보호대(바지)를 덧입었다.


그리고 그걸 '챕스(chaps)'라고 불렀다.





덧입기의 목적은 분명했고,


그것은 곧 거친 환경(가시덤불)과 가혹한 날씨(비바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매우 실용적인 이유였다.


카우보이들이 가죽 부츠나 가죽조끼를 즐겨 입은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였는데, 그야말로 기어(gear)였던 셈이다.





'Chaps'는 스페인어 'Chaparreras=Chaparajos'의 준말인데, 다시 이 본말은 캘리포니아, 오리건,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두껍고 거친 관목 식물인 'Chaparral'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직역하면 본말은 <for the brush>라는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인데, 이후 가죽 바지의 동의어로까지 발전했다고 (증거가 불충분한 Wiki는) 말했다.


옷의 목적과 그 기능처럼 정말 정직하고 투명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Fringe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물론 나만)


보통의 경우, '챕스'에는 우리가 흔히 패션 장식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프린지(fringe)'가 달려 있는데, 그것의 목적은 다름 아니라 비바람이 불 때, 가죽에 물이 맺혀 썩지 않도록, 물기를 아래로 털어내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카우보이의 이전 발자취를 감추기 위해 바닥을 쓸어버리는 기능도 함께 발휘했다고 전해진다는 것이다.


(재밌다! 쩝.)





Sexual


더욱이 가랑이와 백사이드를 덮지 않는 고유의 모양새 때문에 '챕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게이 커뮤니티 내 인기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았고,


야릇한 감각과 재미라는 건수를 찾아 헤매는 패션 커뮤니티에서는 '챕스'의 디자인을 참고하여 그것을 변용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를 꾸준히 선보였다.


기능에서 패션으로, 다시 패션에서 새로운 기능으로 발전하는 끝없는 연결고리라고나 할까.




Martine Rose Fall/Winter 2021



위기의 순간


그런데 지금 갑자기 이야기가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 상황 발생!


칸예로 방향키를 억지로 돌려보자.





중년의 위기


가죽 바지를 입은 남자를 <중년의 위기>와 엮는 시각으로부터 작은 힌트를 얻어 조금만 더 나아가보겠다.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겠다는 중년 남자의 빡빡한 몸부림 like 무슨 바람이 들어서?



(왼쪽) 방탄 중년 Hitman Ye  / (오른쪽) 카모 중년 Army Ye



2024년의 칸예는 분명히 중년이고,

주지하듯 명백하고 완벽한 위기이다.



Random Kanye Leather Packs



그러나 칸예의 고집스러운 레더 팬츠 사랑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특히 공식 행사를 빌려 트렌드를 제시할 때면 유난히 빛을 발하였다.





그래서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칸예의 가죽 바지 입기 운동을 바람난 중년의 일탈로 보는 시각은 글로벌 패션 문익점 '칸예'에게 나 같은 방구석 여포가 억지로 들이미는 굴욕적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더욱이 이는 그저 패션 브랜드 '424'를 밀어주기 위한 칸예 자신의 아주 단순하고 가벼운 제스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구글 검색창 위에 칸예와 레더 팬츠를 조합한 키워드를 몇 개 검색해 보면, 재밌는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지난 10여 년, 세계 각국의 어떤 부지런한 에디터들이 글쓰기 당시의 칸예가 소화한 가죽 바지 패션 짤을 발 빠르게 인용해 <올해의 패션 트렌드>는 '레더 팬츠'가 될 것이라면서 자꾸만 주목을 요구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저 양반 때문에 앞으로도 가죽 바지 패션 트렌드는 매해 고정값으로 등장할 거란 말이잖아?


제길슨!







Yeezus


일거수일투족으로 패션 씬의 트렌드를 만들어 온 칸예, 그가 느꼈을 패션 강박과 그에게 생겼을 어떤 패션 집착을 잠시 상상해 봤다.


그랬더니 이런 소리가 절로 났다.



쩝...



마지막으로 방구석 여포의 생각을 (굳이) 한 번 더 덧붙이며 오늘의 포스트를 마무리해 보겠다.


요상한 레깅스 패션과 히잡 패션으로 지난여름을 뜨겁게 지지고 볶으며 관종 패션의 심해를 들여다보고 온 칸예가 이만하면 됐다며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려는,


다시 말해 중년의 위기가 아닌 도리어 중년의 각성에 가까운 상태에 칸예가 도달한 것은 아닐까, 라며 올드 칸예 패션의 부활을 은근히 기대하는 한반도 남성 팬의 심각한 뇌내망상을 여기에 이렇게 호소해 본다.



팩트: 칸예에겐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 틀림없다.



실로 한심한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죽 바지의 지존이 부르는 멋진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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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0to1hunnit/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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