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켤레 사기 전에, 짧게 브랜드 역사 공부
196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고무 공장의 20년 차 슈즈 메이커 Paul Van Doren과 엔지니어 Jim Van Doren 형제는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겨 신발 사업을 준비한다.
사업 아이템은 상품 디자인, 생산, 관리 및 판매를 한 번에 해결하는 슈즈 직판 스토어(당시에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를 설립하는 것이었고,
마침내 1966년, 형제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최대 도시 '애너하임'에서 <Van Doren Rubber Company>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다소 정직한 이름의 이 회사는 사실 따뜻한 봄이면 슬슬 생각나고, 무더운 여름이면 간절해지는 글로벌 슈즈 브랜드 <반스 Vans>의 전신이다.
그들이 만든 첫 아이템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덱 슈즈(보트 슈즈)'였으며, 주문 제작은 보통 하루이틀 안에 이뤄졌고, 커스텀도 허용됐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어의 특징이 입소문을 타 자연히 유명세를 만들었다.
형제가 제작한 신발은 다른 기성 신발 대비 2배 이상으로 두꺼운 밑창을 큰 특징으로 했다.
하지만 밑창 고무가 자주 갈라지는 문제가 있어 바스켓 위브 형태의 다이아몬드 라인 패턴을 새겨 그것을 해결하기로 했는데,
이러한 시도의 결괏값이 현재 와플 솔(Waffle Sole)이라고 불리는 밑창의 원형이 된다.
한편 60년대 초 흥하던 미국 내 스케이트 보드 문화는 그 빛을 잃었다가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한다.
두 형제가 만든 신발은 맹렬하고 거친 스케이트 보딩 활동에 찰떡이었고, 지역 스케이트 보더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특히 70년대 중반 활약한 캘리포니아의 스케이트 보더 팀 'Z-Boys(Zephyr Competition Team)'의 멤버 '토니 알바'와 '스테이시 페랄타'는 <어센틱>이라는 반스의 슈즈 모델을 신고 보드를 즐기곤 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형제의 산타모니카 스토어에 커스텀 슈즈 제작을 의뢰하게 된다.
팀의 요청 사항은 단순했다.
부상 예방을 위해 발목이 닿는 곳에 패드를 덧대고, 멋진 컬러링을 적용해 달라는 것.
아래처럼!
상품 제작 의뢰 결과, <#95 Era(에라 넘버 95)>라는 신발이 탄생한다.
당시 풀(Pool)에서 스케이트 보딩을 즐기던 Z-Boys 멤버들의 유행어 "OFF THE WALL"이라는 멘트를 업력 최초로 박아 넣은 채 말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사에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찾아온다.
할리우드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로부터 로스앤젤레스 리지몬트 고교를 배경으로 제작하는 틴 영화에서 활용될 스니커즈의 공급을 요청받은 것이다.
1982년, 해당 영화는 <Fast Times at Ridgemont High(리지몬트 연애 소동>이라는 타이틀로 개봉해 크게 흥행한다.
극 중에서 약에 절어 오직 서프만을 위해 사는 구제불능 캐릭터 '제프 스피콜리 Jeff Spicoli'는 파란색 반스의 신발 박스로부터 '체커보드 슬립온' 슈즈를 꺼내어 든다.
'제프 스피콜리' 역을 분한 배우 '숀 펜'의 무심하게 기른 금발 헤어와 화려한 알로하 셔츠, 무엇보다 그가 대놓고 홍보한 슬립온 슈즈의 인기는 패션 현상이 되었고,
영화 개봉 이후 반스의 매출은 2배 이상 성장해 회사는 크게 도약한다.
하지만 스케이트 보더들은 보드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나 지원 없이 단지 세일즈나 마케팅 명분을 위한 문화 이용을 경멸했다.
따라서 반스는 진정성 있는 태도 그리고 언더독 정신과 함께 매우 조심스럽게, 의도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 활동 전략을 구사하면서 그들의 문화에 함께 녹아들어 공동 생장의 의지를 다져나갔다.
물론 보드 문화와 엮인 기업의 본태와 그것에 어울리는 그때그때의 알맞은 활동과 실행이 꾸준하고도 일관된 역사가 되어 진심으로 와닿는 의미를 만들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오죽하면 베스트셀러 슈즈의 이름이 Authentic(어센틱)일까. 쩝.
누구나 자연스러운 성장과 성공을 꿈꾼다.
억지스러운 노력과 처절한 발악은 슬프니까.
무언가를 '그냥' 하면 기록과 역사가 남고,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알아서 증명된다.
갑작스러운 자기주장이나 피력은 도대체가 아무 소용이 없고, 당최 쓸모가 없다.
인간이든 기업이든 서비스든 그것의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냥 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되게 당연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지만, 당장 해야 하는 일을 그냥 하는 것만이 자연스러운 성장과 성공을 이끌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반스의 창업자 'Paul Van Doren'은 아디다스의 스트라이프, 나이키의 스우시 마크에 대적하는 브랜드의 아이콘 디자인을 고민하며 공책에 이것저것을 끄적이다가 '재즈 스트라이프'라고 부르는 선을 하나 그려 넣게 되는데,
그것은 곧 우리가 현재 반스의 올드스쿨이나 스타일 36 등의 모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라인이 된다.
내가 Paul 옹의 끄적임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당시의 Paul 옹은 브랜드의 차별화를 위해 그냥 이것저것 그려보기로 결심하지 않았을까? 쩝.
할 일이 얼마나 없으면 반스의 역사를 조용히 공부하다가는 저런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스쳐서 구독자 분들께도 한 번 공유드리고자 이런 오묘하고도 불분명한 뻘글을 <그냥> 써봤다.
고백 하나 하자면,
사실 내가 뜬금없이 반스의 역사와 관련한 포스팅을 결심하게 된 것은 반스의 창업자 Paul 옹이 아들에게 전했다는 성공 철학 한 줄 때문이었고,
그것은 곧 <성공하고 싶다면 두루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멘트였는데,
이 문장 하나를 가지고 긴 글을 풀어 쓰려니 참으로 막막해서 브랜드의 역사를 훑다가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내친김에 고백 하나 더 하자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자>라는 것이 내 인생의 철없는 이상인데, 그래서 Paul 옹의 저 말씀이 그렇게나 울림이 있었나 보다.
아무튼 이토록 싱거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글 앱에 노출돼 조회수가 폭발한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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