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Mar 26. 2024

이쑤시개 패션

제이크루의 이쑤시개 라인, 도자 캣의 이쑤시개 패션



제이크루의 이쑤시개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미국의 패션 기업 J.Crew는 여성 팬츠의 000 사이즈를 공개했다. 이것은 7살 소녀의 적정 허리 사이즈라는 23인치의 Numeric Version이자 무려 XXXS 사이즈의 새로운 변환이었다.


하지만 XXS 사이즈로도 마른 여성들을 불만족하게 만드는 허영적 표기라는 비판은 물론 한쪽 다리만을 위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냐는 등의 비아냥 메시지가 빗발쳤다.



이에 대해 제이크루의 대변인은 000 사이즈는 사실 골격이 작은 아시아 고객의 선호도를 감안해 고안된 사이즈이며, 전체 사이즈 차트 중 가장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발표해 맞대응했지만,


실제보다 작게 표기된 사이즈를 입으면 심리적 만족도와 자신감이 높아진다는 유사 과학을 고려해 표기 사이즈를   단계  낮춰 판매하는 패션 산업의 경향성과 세일즈 마케팅 전략(Vanity Sizing)까지 등판해 제이크루의 000 사이즈 제안은 건강한 신체 기준을 왜곡하는 해로운 개념이라며 연이어 비난 받았다.


마른 장작(slim firewood) 같은 스키니 고객을 위한 제이크루의 불편 조장 마케팅 활동은 000 사이즈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지속되어 왔는데, 그들은 그보다 먼저 일부 데님 컬렉션 라인의 이름을 toothpick(이쑤시개)과 matchstick(성냥개비)으로 지정함으로써 너희들은 대체 어디까지 갈 거냐는 소리(이를테면 치실 라인)마저도 들어왔던 것이다.



"이쑤시개 라인은 우리의 가장 스키니한 스타일입니다."



취지가 어떠했든 한쪽 편의 반가움은 반대 편의 불편함의 정도와 정확히 비례해 공존하기 때문에, 특정 상태 값과 기준점이란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상처와 실망을 덜 주고받으며 이 불편한 세상을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도자 캣의 이쑤시개


Doja Cat at Grammys 2024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그나마 방구 같은 '말' 장난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얼마 전 열린 제6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래퍼 ‘Doja Cat’은 진짜 이쑤시개를 물고 나왔다.


앞으로 이쑤시개가 어엿한 패션 액세서리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트렌드의 작은 씨앗을 진짜로다가 뿌려버린 것이다.





관종 패션의 최고 존엄 '도자 캣'은 이날 ‘딜라라 핀디코글루’의 시스루 코르셋 드레스와 베요네타 긱 시크 안경 그리고 눈 쉴 곳 없는 전신 바디 아트의 조합 위에다가 화룡점정 같은 개념으로 금연 이쑤시개 제작 기업 ‘BLIP’의 NON-NICOTINE TOOTHPICKS(니코틴 없는 이쑤시개)를 개구쟁이처럼 물어 선보였는데, 그 모습은 가히 피상적 트렌드의 총결산 같은 장면으로다가 다가왔다.





시시각각의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선의 스타일 전사들은 상처 하나 없는 새하얀 눈밭 같은 <가지 않은 길>을 지금 이 시간에도 부지런히 찾아 헤매고 있고,


요새는 그 치열한 탐색의 결과가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물건을 뜻밖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관찰되는 듯하다.


발렌시아가의 뎀나는 언젠가 가장 민주적인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는데, 완전히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순 없겠지만, 약간의 과장이 허용된다면, 그리고 이쑤시개가 진짜 패션 아이템이 된다면, 뎀나의 저 관점과 비전이 더 와닿을 것만 같다.



다이아몬드 박힌 이쑤시개를 선물 받은 어셔 "Yeah!"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패션 매거진 'NYLON'의 트렌드 리포트 기사에서 'BLIP'의 공동 창업자는 우리의 현 상황을 요약하는 데 있어서 이쑤시개보다 더 완벽한 액세서리는 없다면서, 작지만 날렵하고 미니멀하지만 도드라지는 매력을 지닌 이쑤시개에 배꼽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어째 나는 이쑤시개와 패션을 나란히 두고 생각하면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 채 잔뜩 부푼 배를 만지면서 '쯥쯥' 초록 이쑤시개를 바짝 물어 녹여버리는 <배요냅따 녹말 시크> 할재들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쩝.


더구나 요샌 그걸 또 튀겨 먹는 게 MZ 틱톡커 사이의 유행인 모양인지 식품의약안전청에서 긴급 보도자료를 배포해 식품으로서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위생 용품이니 이쑤시개는 섭취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하였다.


아무튼 뭐든지 적당히 하면서 적당히 사는 것이 여러모로 적당히 좋은 것 같은데, 일단은 고깃집 카운터 위 먼지 쌓인 투명 플라스틱 속 녹말 이쑤시개 군단의 앞길에 건투를 먼저 빌어본다.


쩝.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

쯥쯥~ 진짜 할말이 없어요!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73


매거진의 이전글 반스 시즌이 왔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