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예 웨스트와 존 갈리아노 단상
제 삶은 디즈니 월드 같아요.
끝나지 않는 꿈같죠.
- Ye
정규 1집 앨범 <The College Dropout>을 발매한 2004년, 칸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지 못한 일에 분개하며 백스테이지에서 항의했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자신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큰 문제가 생길 거라며 경고했는데, 그 이유를 두고 자신이 열심히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당연한 듯 밝혔다.
<제47회 그래미 어워즈>(2005)에서 칸예는 결국 최우수 랩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날 칸예의 수락 연설 영상은 쇼츠와 릴스로 여전히 회자되는 명작이 된다.
시간이 좀 걸릴 거니까 음악을 준비해도 좋을 거예요.
제가 사고를 당했을 때, 저는 인생에서 죽음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약속된 게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매 순간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이 다 지나가기 전엔 고마운 줄을 몰라요.
알아요. 모두가 제게 묻겠죠. 알고 싶을 거예요.
"뭐? 칸예? 걔 뭐 제멋대로 굴고 미친 짓 또 하겠지."
다들 제가 수상하지 못하면 뭔 짓을 할지 궁금해했죠. 근데, 음, 영원히 알 수가 없게 됐네요.
커리어 내내 칸예는 수상에 관해서라면 정말 진지하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6살 어린아이들이 거울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래미 연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서 시상식의 진짜 '의미'를 주장했고, 주최 측엔 책임을 요구했다.
그들은 문화계에서
실제로 뭔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구요!
브랜디 병을 들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수락 연설을 방해한 전설의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사건도 그러한 생각의 연장이었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밝히길 실은 레드카펫에서 술을 먹다가 무대 위로 뛰어갔던 거라고 말했다.
언젠가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본래 화를 잘 내던 자신의 성격이 음주 때문에 더 심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보면 아무튼 술이 웬수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이 부른 필터 없는 자기주장과 선동은 한낱 '말'에서만 그치진 않았다.
그는 자기 생각과 '다른' 아티스트를 진부한 미디어 교육에 길들여진 답답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도발적이고 모순적인, 때로 폭력적인 음악과 비디오를 제작해 가히 집착적인 과잉 예술을 선보였다.
그래서 그가 남다른 '천재' 소리를 듣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의 성격적 결함과 불만족의 감정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에너지로 변환돼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하지 않을까 싶은 상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2011년에는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거머쥔 칸예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2010)와 미국 힙합 대물, 아니, 거물 제이지와의 합작 앨범 <Watch the Throne>(2011)이 그래미 어워즈의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조차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 사건이 벌어져 옹호파와 반대파 간의 뜨거운 논쟁으로 번졌다.
칸예는 두 앨범을 비슷한 시기에 발매한 것이 잘못이고 실수였다며 쿨한 척하였지만, 훗날 인터뷰를 통해 와이프와 딸내미 앞에서의 체면이 어땠겠느냐며 그때의 마상과 그것이 부른 알코올 의존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칸예는 언젠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손댔던 알코올이 자신과 주변을 망가뜨렸다고 고백했는데,
실제로 아디다스와의 파트너십을 이행하는 동안 사무실에서 그가 보였다던 각종 기행(포르노 시청 강요, 히틀러 찬양 조언, 성적 모욕 언사 등)과 지나친 업무 몰입(함께 일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칸예는 잠을 자지 않고 며칠을 보냈고, 디자인 작업에 너무 세세히 관여하는 바람에 늘 마무리가 어려웠다고) 또한 알코올 중독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눕내망상(스눕피의 뇌내망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고,
이후 나날이 짜릿하게 망가져 가며 아주 괴이한 행동의 리즈를 갱신하고 있는 올뉴 칸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매우 안타까운 감정이 든다.
생각이 엉뚱하게 번지는 걸 막을 수가 없어서 잠시 숟가락을 얹어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우리 칸예 형의 유대인 및 히틀러 드립과 마주할 때면, 이상하게도 자연스레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유사 망발이 떠오른다.
지난 2011년, 프랑스 파리 카페에서의 유대인 욕설 및 인종차별, 히틀러 찬양 이후 만취 상태로 체포된 '존 갈리아노'는 패션 산업의 지나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술과 마약에 대한 의존을 불렀고, 낮에도 수면제를 먹거나 술과 발륨 없이는 도저히 일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며 추후 고백했다.
그는 결국 디올의 디렉터 자리에서 쫓겨났고, 재활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일부 문화계 거물들은 짜고 치듯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실망시킨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다 몹쓸 '기대'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팬의 입장에서 보면 기대 때문에 팬심이 무너지고, 또 그 기대 때문에 여분의 팬심을 남겨놓는다.
나아가 극적인 메시지로 감동을 선물하고 멋지게 살아갈 힘을 주는 그들(아티스트)이지만, 때로 극단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쓸데없이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선 팬들의 기대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다짐을 하고, 또 팬들의 그 기대가 역으로 부담돼 스스로 무너지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서로 작품이나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잘 살아갈 힘을 주고받는 것, 그 이상의 인간적인 기대와 연결을 바라지 말라는 아주 쌀쌀하고도 비인간적인 부탁이란 피차 현실적이지 못하고 꽤 폭력적인 바람일 테지만,
수억 개의 시선을 견뎌야만 하는 숨 막히는 탑스타와 아티스트의 인간적 실수에 대한 관용과 의도된 무관심이 때로는 아주 절실하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해보며 오늘의 이상한 글을 마무리해 본다.
(무엇보다 평범한 제 인생을 돌아보아도 '기대'에 대한 압박과 필요 이상의 '간섭' 그리고 부족한 '잠'만큼 사람을 미치게 한 것도 없었던 것 같거든요.)
"무언가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곡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실제로 뛰어넘을 수 있다는 주제를 담았어요.
안 된다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마침내 하늘을 터치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거죠.
누군가 당신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면 그게 교감이고, 그게 중요한 겁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에 닿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 제발 Ye로 불러달라는 올드 칸예 왈
올드 칸예는 언젠가 그의 히트곡 <Touch the Sky>를 두고 위와 같이 설명했는데,
칸예의 오랜 팬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 꽤나 무뎌졌겠지만,
돌아보면 우리가 그토록 그를 좋아했던 데에는 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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