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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r 17. 2024

칸예는 왜 개소리만 할까?

순응을 거부하는 남자, 필터 없는 생각의 주인


칸.왜.개(칸예는 왜 개소리만 할까?)


지금 이 순간 객관적인 언어로 당신 생각을 말하라. 그리고 내일이 되면 내일이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것을 말하라. 그것이 오늘 말한 것과 완전 모순된다 할지라도 전혀 신경 쓰지 마라.

- 랄프 왈도 에머슨


2008년부터 칸예와 함께한 예술 파트너 ‘바네사 비크로프트’, 그녀는 칸예가 자신의 삶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여기고 관련 페르소나를 구축한다면서, 그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직접 자기 몸을 써 세상에 의견을 전달하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칸예를 도와 Runaway 뮤직 비디오, Yeezus 투어, Yeezy 시즌 컬렉션 쇼 등의 여러 크리에이티브를 감독했다.


한편 칸예 본인은 <인생이란 자신의 메시지로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평생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온전한 어른이 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순응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악명 높은 뻘소리로 화제가 된 2016년의 더 라이프 오브 파블로 투어에서 칸예는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고 동료 아티스트들을 까내리며 팬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믿느냐? 나는 내 인생과 경력을 걸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악을 썼지만, 이후 투어를 취소하고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정작 그 발언 자체의 진실성이 퇴색하고야 말았다.





퇴원 후 칸예는 트럼프를 만나 회담까지도 진행했는데, 이후 거의 1년 가까이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의 '천재'가 나를 부를 때면
나는 아버지, 어머니, 아내,
형제까지도 모두 멀리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하지만 복귀 이후에도 그는 <노예 제도 400년은 선택처럼 느껴진다>라는 망언으로 또 한 번 선동적인 트러블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과시했고, 그나마 남은 팬들의 그나마 남은 기대마저 여지없이 박살 냈다.


그는 끝내 사과했고, 사실 내 말은 노예 제도 자체에 대한 선택이 아닌 오랜 정신적 속박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변명했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별 소용이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칸예는 <어떤 때의 아티스트란 3살 어린아이처럼 무책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의견이 아닌 필터 없는 즉각적인 리액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칸예는 줄곧 내가 곧 길이고 구세주라고 생각하는 특유의 망상적이고 왜곡된 철학과 사고를 가져왔기에, 자기 동기에 의한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직 자기만족뿐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짙은 사람처럼 보여왔는데, 그래서인지 기존의 정치적 기준이나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말과 행동에도 ‘일단’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절대적 기준인데 대체 누가 누굴 눈치 본단 말인가?




선량한 사람들의 가장 큰 불행은
그들이 겁쟁이라는 것이다.

- 볼테르




관련해 곱씹어볼 만한 인상적인 인터뷰 내용이 하나 있어 소개해본다.





칸예는 그의 딸 노스 웨스트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 오직 판매 이윤을 위한 목적으로 아무런 감동과 사랑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만이었다고 밝히며,


대신 예술가 비크로프트가 만들어 딸에게 선물한 실물 같은 모형 늑대 세 마리에 뛸 뜻이 기뻐하던 노스의 모습을 보며 너무 놀랐다고 말했는데,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늑대  마리 그리고  딸이  정도로 기뻐하던 모습,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이 말이죠,  순간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근데 그럴  없죠.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기쁨을 도둑맞았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 당신이 정말 어렸을   늑대를 빼앗아 사회적 모든 필요로 포장해 앞으로 20 동안은 그것을 열지 말라고 말했고, 마침내 당신이  늑대를 되찾았을   포장을 열어젖히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거죠.

대학교 학자금 대출은 물론 사회에  빚을 모두 갚아야 마침내 사회적 포장을 다시 뜯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느끼는 기쁨은  딸이 늑대를 선물 받던  순간에 느꼈던 기쁨의 수준과 비할 수가 없습니다."

- 2015년 <Clique> 인터뷰 중에서



THE 팔불출 DROPOUT



칸예는 커리어 내내 인간의 근원적 행복과 기쁨, 영원하고 완벽한 예술에 가닿기 위한 나름의 실험과 탐구를 이어왔고, 우상 숭배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며 우주의 절대적인 가치와 존재를 향한 백일몽 같은 고백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로지 다름을 위한 다름에 의한 불편함이나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에 기반한 철딱서니 없음, 하수마냥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못 이기는 메시아(자기 자신)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들고 온 고작 언어폭력적인 선동 정도로 세상에 비쳐 (아마도) 본의 아니게 쓸데없는 혼란만 야기했을 뿐이다.


심지어 자신의 양극성 장애를 슈퍼 파워라고 부르던 칸예였으니까.





예술가가 본보기를 찾을 때
영혼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 있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아도 역시 칸예에 관해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은 그가 현대 대중음악과 패션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이 시대의 진정한 문화 혁명가라는 점이다.


아무리 욕먹어도 자꾸만 정상을 지키는 그의 지위는 그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문화적 측면에서의) 세상 변화를 귀신 같이 촉진하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것이고,


그의 결코 꺼지지 않는 스타로서의 몸값은 그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에 똑바로 형성된 것이다.



준비물: 할리 데비이슨 커스텀 마스크, 몽벨 팬츠, 이지 갭, 커스텀 이지 폼 러너 그리고 까만 손



칸예는 언제나 주관적 감동 체험의 결과를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거나 혼란스러운 모습의 크리에이티브로 전환해 공개했고,


그래서 자기 혼자 완벽히 준비된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 안 된 세상에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골치 아픈 사건과 사고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종잡을 수 없는 기행은 안타깝게도 오래도록 반복될 것 같다.





2019년, 칸예는 80명에 가까운 가스펠 합창단과 함께 선데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것은 글로벌 스타 래퍼로서의 매우 이례적인 행보였는데, 하나님을 숭배하는 합창단의 가스펠을 샘플링하여 힙합을 믹스한 그의 앨범 <JESUS IS KING>은 무려 빌보드 차트 1위로 데뷔를 마쳤다.





반쯤 죽어있던 오래된 노래의 일부를 현재의 시간에 잘라 붙이는 '샘플링' 기법을 활용해 잊힌 가수와 노래에 새 생명을 부여하던 오랜 체험의 교훈에 자신의 종교를 섞어 새로운 영속과 부활의 방법을 모색하던 칸예는 가장 극적인 장르에 대한 개방성 실험에 나름대로 성공했다.


2004년, 데뷔 앨범의 히트 싱글 <Jesus Walks>의 주인공이 칸예였다면, 15년이 지나서는 그 스포트라이트를 성가대로 돌려 비춘 셈이 됐다.


넋을 잃게 하고 흥분감을 고조시키는 가스펠의 합창을 등에 업고 칸예는 오래도록 억눌린 감정을 마구 토해내는 것 같아 보였다.





말이 좀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어떤 이름 모를 래퍼가 대규모 복음성가 합창단과 함께 힙합 앨범을 하나 짜잔 하고 내더라도(물론 God's Property와 커크 프랭클린이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누구 하나 그로부터 더는 크게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란 얘기이고, 칸예는 늘 그렇게 알게 모르게 상징적으로 씬을 선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스트립 클럽에서 돈다발을 뿌리거나 스트리트 크레딧을 쌓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란 야생 래퍼들이 미술 관련 행사에 다니며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모습이 더는 어색하지 않게 된 모양 또한 칸예 덕이 크고,


이름을 내건 브랜드 상표로 한몫해 보려는 사업적 관점이 아닌 개인의 패션 스타일링에 집착적으로 몰두하면서 래퍼들로 하여금 세상 하입한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을 챙겨 입게 만들고,


나아가 큰 그림에서 힙합 패션의 고정관념 자체를 파괴한 장본인도 칸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세상에서 여론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 랄프 왈도 에머슨




말이 많았는데,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무엇인가.





칸예가 그토록 개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가 시대정신에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돌아보면 그의 선택에 편승은 없었고, 오래도록 외면받던 것을 되살리거나  흐름에 반대로 대항하는 모습이었으며, 한낱 자기주장일 뿐이어도 진실이라는 단어에 크게 집착했다.


그는 근원적으로 이것이 또 저것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 늘 의문을 품고 살며 따지려 드는 절대적으로 피곤한 사람이고, 따라서 그런 그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통념과 상식 그리고 적정 선을 지키며 사는 보통의 우리들에겐 완전 개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다.



Wanna Fight?



내가 칸예를 워낙 좋아하는 걸 잘 아는 지인들은 칸예에 관한 단편적인 가십들에 관해 이런 건 또 저런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자주 묻곤 하는데,


사실 나도 그의 왜곡된 시각이나 말씨 혹은 기이한 행동의 대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죄송하게도 관련해 아무런 생각이 없고(남다른 인사이트도 전혀 없고), 누가 봐도 잘못한 일은 잘못한 일이기에 같이 욕할 뿐이다. 쩝.


하지만 1. 개성 있는 목소리 2. 관점(자기 식의 문맥화) 3. 추종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교훈과 그것을 토대로 한 나를 위한 실험 가능성 때문에 칸예 덕질을 나는 못 잃는다!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

저는 종교를 3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탱교, 하나는 칸예교, 마지막 하나는 피츠제럴드교입니다. 쩝.



[함께 읽으면 좋은 포스트]

https://brunch.co.kr/@0to1hunnit/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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