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앤 스테디 래퍼 '프레디 깁스 Freddie Gibbs'
인간의 의지와 에너지에 관한 말들, 이를테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뭐 그런 말들이나마 가끔 들려오니까 매일 벽 같이 느껴지던 내일이 문득 새롭게 느껴지는 하루가 있고, 그래서 그리로 작은 희망의 창을 열어보는 순간이 있다. 일단 더, 조금 더 달려나가 보는 것이다.
옛날 옛적 블로그 믹스테이프 시절의 래퍼, 하지만 어째 마흔 넘어 폼이 더 좋은 (숙성) 와인 같은 래퍼 ‘프레디 깁스 Freddie Gibbs’,
그는 무려 2010년의 XXL 매거진 Freshman Class 래퍼였다. 당시 힙합 씬의 유망주라며 그와 함께 소개된 인물이 제이 콜, 빅션, 위즈 칼리파 그리고 닙시 허슬이었으니, 오래도록 이어진 그의 무명한 포지션이 단박에 이해도 될 것이다.
그의 매니저 ‘램버트 Ben Lambo Lambert’는 인터스코프 레코드의 인턴사원이었던 열아홉의 언저리에 블로그를 통해 우연히 접한 ‘프레디 깁스(당시 그는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마약을 팔고 있었다)’의 랩 탤런트(믹스테이프)에 감화돼 그를 불러들이고, 이후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혈맹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함께 독보적 커리어를 쌓아 나간다.
메이저 음반 계약의 길이 아닌, 인디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10년 넘게 걸으며 믹스테이프를 통해 빛 보게 된 프레디 깁스는 그 어떤 상업 래퍼들보다 앞서 시작했지만서도, 뒤늦게 점진적으로,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상승세와 함께(2020년의 워너 레코즈 계약, 2021년의 그래미 어워즈 노미네이션), 2020년대에 들어, 팬들에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즐기는 디스코그래피 탐구의 연어알 같은 맛을 선물하는 역행 아티스트가 되었다.
2015년, 성폭행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던 수개월, 그는 결국 증거 제시와 함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상처 입은 그는 좌절했지만, 끝내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또다시 팔리는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압박감을 이겨낸 건 최고의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자신감이었다.
통계적으로 보나 음악 산업의 관점에서 보나, 자신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프레디 깁스, 하지만 그런 기만은 그만! 그는 결국 살아남았으니까. 개인의 의지와 생존의 에너지 앞에 통계는 무의미하고, 관점은 따르기 나름인 것을 그는 증명한 셈이다. 결론은 결과이고, 존버는 승리한다.
프레디 깁스는 인디 짬 바이브로 다져진 실천 압축 근육을 무기 삼아 늦깎이로(그러나 본인에겐 적시에) 메이저 데뷔했고, 이러한 역사를 토대로 랩 게임에서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아티스트로서의 유일무이한 포지션을 구축했다.
또한 연기와 시나리오,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하고 스포츠 팟캐스트를 기획하는 등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음악 이외의 다양한 벤처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있다.
누가 프로듀싱을 했든
어떤 비트가 나오든
브레이크, 소울, 트랩 비트
저는 뭐든 랩할 수 있어요.
- 전천후 래퍼 ‘프레디 깁스’
타이틀 매치까지 43번의 싸움을 해야 했다던 권투 선수 '마빈 해글러'의 경력에 자신을 비유하며 "오늘도 나는 인생이 달린 것처럼 랩을 하고,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멈추지 않았다."라던 그의 어떤 인터뷰 내용이 오래 마음에 남아 노션 위에 저장해 둔 영어 문장의 굵기를 두껍게 칠했다.
오늘도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힙합 언더독 ‘프레디 깁스’의 불굴의 의지와 끈질긴 생명력의 바이브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본다. 누구보다 나부터 좀!ㅠㅠ
근성.
정신력.
의지력.
챔피언의 정신.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사실 다 같은 겁니다.
당신을 연습하게 만들고,
깊이 파고들어
가장 필요한 순간,
성취하게 만드는 힘.
<스탠퍼드 인간 성장 프로젝트 '마인드셋'> 중
[함께 보면 좋을 '프레디 깁스'의 퍼포먼스]
https://youtu.be/1alXHOMDBN4?si=xBkRMD6UKfOoRbtO
[그리고 최근에 오픈한 신규 브런치북 홍보]
https://brunch.co.kr/brunchbook/fashion-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