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와 노트북, 모순과 성숙 그리고 돌덩이
서랍 속에 스티커가 꽤 많은데 딱 붙이질 못하고 푹 묵혀만 둔다. 어디에라도 일단 붙이게 되면 떼어내기가 곤란해질 테니까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작년 봄에 어떤 스티커 팩을 직구하여 그중 몇 개를 신중히 골라 데스크톱에 부분 부분 붙였다. 그 외에 정말 정말 붙이고 싶던 스티커 몇 개는 새로운 노트북을 사게 되면 붙이겠단 생각으로 꾹 참고 남겨 뒀는데,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이 10년 넘도록 고장 한 번 없이 너무 멀쩡히 잘 돌아가는 바람에 아직도 그것들을 나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멀쩡한 노트북을 내버려 두고 새로운 것을 사려니 그것은 참 비합리적인 소비 같고, 단지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새 노트북을 사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아무튼 나는 스티커 붙이기를 조금 더 미루기로 하였다. 지금 이 노트북에 정도 참 많이 든 바 최소 1, 2년은 더 써보기로 한 것이다.
스물넷 복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예쁘게 풀어 구체화해 준 MacBook Air (13-inch, Mid 2013), 당신은 나의 글쓰기 선생님, 생각해 보니까 문득 정말 고마워!
인간은 상황과 맥락이 바뀌면 이전과 같던 생각과 이야기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정확히 같은 이유로 무언가를 이렇게 기록해놓고 싶기도 하고, 반대로 또 기록하기가 두려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감정을 나중에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때면 그냥 이유 없이 참 슬퍼져버린다. 그래서 그냥 전자의 경우처럼 무엇이든 써 갈겨 잔뜩 흔적을 남겨놓고 싶다 like 탕탕탕!
Okay, 너의 심정은 알겠는데 말이야.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어렸을 때부터 도대체가 야무지질 못한 것 같아 내 세상살이의 경기력이나 순발력이 남들보단 한참 떨어진다고 나는 자주 생각했고, 그래서 머리가 커서 상황 파악이 조금이라도 빨라지게 되면 그때엔 세상이 좀 다르게 보일까 내심 기대했는데, 현재 스코어: 어째 결과가 반대로 흘러가는 듯함! 어설픈 지레짐작은 늘어만 가고, 비교와 잔말만 많아진다.
인간의 성숙에는 정말 끝이 없구나.
지난 금요일에 만난 한 동생과 카페에서 서로의 '고민'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뜬금없이 '폴 오스터'의 희곡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의 대사 한 부분을 그에게 소개해줬다.
아, 너무 진지한가? 근데 그렇게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내 생각인가?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는 법을 이번에 확실히 배우고 싶어. 돌덩이를 들어올려야 한다면, 돌덩이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내가 지금 잃어버린 에너지가 돌덩이에 속해 있다는 걸 이해하고 싶어. 돌덩이를 사랑하고 싶어. 돌덩이가 어떻게, 왜 나보다 힘이 센지 알고 싶어. 내가 죽은 뒤에도 돌은 오랫동안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싶어.
참고로 위 대사는 며칠 전에 나의 개인 인스타그램에도 짧게 소개한 문구인데, 워낙 팔로워가 적은 '메모장' 같은 계정인지라 정말 조용히 묻혀버렸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인스타에서 이렇게 물었었다.
요즘 여러분의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돌덩이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함께 보면 좋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snpyonthecorner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