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로 살펴보는 패션 브랜드&디자이너 협업
요새 주변을 둘러보면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풍부한 업계 지식으로 무장한 패션 애호가가 정말 많이 늘었다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저부터도 본격적인 패션 공부를 구글과 인스타그램으로 시작한 1인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패션 애호가들의 무심한 하트와 스토리 공유 그리고 정성스러운 포스팅이 이끄는 패션 알고리즘은 복리처럼 늘어나고 또 멀리 전파되면서 실질적으로 업계의 트렌드를 세팅하기도 합니다.
이제 웬만한 자극에는 끄떡도 없을 것 같은 그들에게, 알면서도 또 속아주듯 흥분을 부르는 소재 중 하나가 요샌 바로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을 부르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되팔면 ‘돈’이 되고, 입다 팔면 ‘본전’은 찾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면이 큰 부분을 차지할 테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전략이란 두 개 이상의 브랜드 주체가 모여서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예기치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각 브랜드는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을 재창조하고,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강화하는 기회를 얻게 되며, 협업 그 자체의 순수한 재미적 요소와 마케팅적 화제성이 입소문과 고객 참여를 불러, 유명해서 유명한 ‘Hype 하입’이라는 아우라를 만들어 냅니다.
또한 서로 다른 두 주체 간의 호기심을 부르는 팀업으로 새로운 소비층에 자신의 브랜드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독점 혹은 기간 한정, 수량 한정과 같이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시간과 순간의 의미를 부여해, 역사적인 기념일에 동참하는 소비자로서의 정서적인 유대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특히 협업을 통한 ‘드롭’ 문화가 패션 시장에 보편적으로 정착한 이후로는, 자신이 구매한 아이템의 소장 가치와 리셀의 값어치가 매해 가파르게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해한 소비자들 사이에 수요와 공급의 경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죠.
그런데 현대 패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전략의 결과가 업계와 산업 자체의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도 하는데요,
사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의 지위를 대중의 눈높이로 낮추게 된 일이나 그들만의 리그에 가깝던 스트리트웨어 산업 자체를 번창하게 해서 대규모의 문화 경제를 새롭게 구축하게 된 일, 또 예술가의 활동을 사람들의 일상, 즉 패션 안으로 끌어들여서 지속적인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도 모두 패션 콜라보레이션이 불러온 트렌드 덕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현대 패션의 역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성공적 콜라보레이션의 시대별 대표 사례를 몇 가지 추려 소개해드려 볼까 하는데요,
아, 늦기 전에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먼저 1930년대인데요, 완전 옛날이죠?
이탈리아의 귀족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현대적인 의미의 브랜드 협업을 선보인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는 주로 예술가였죠.
그녀의 첫 번째 협업은 러시아계 프랑스 작가 ‘엘사 트리올레’와 함께 만든 도자기 구슬 목걸이였는데요,
이후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만 레이 등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그녀 사이의 상징적인 협업은 패션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특히 1937년, 그녀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제작한 ‘랍스터 드레스’는 영국의 윈저 공작부인이 신혼여행 드레스로 선택하게 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관련해 패션 매거진 Vogue는 이 랍스터 드레스를 8페이지 분량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조합은 ‘스키아파렐리’를 오트 쿠튀르를 대표하는 주요 패션 하우스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왔고,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코코 샤넬’과의 차별화를 가져온 전략 전술이 되어주었으며, ‘패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개념을 업계의 독점적이고 흥미로운 소식거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커리어 내내 이어진 그녀의 예술가 협업 시리즈는 훗날 꼼 데 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와 미국의 안무가 머스 커닝햄의 무대 의상 협업,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시절의 루이비통과 일본의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간 ‘멀티컬러 모노그램’ 시리즈 협업,
벨기에의 패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와 미국의 예술가 스털링 루비,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콜라보 등 패션과 예술 사이의 상징적인 만남을 부른 최초의 신호탄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현대의 패셔니스타들이 자기 자신을 더욱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1950년대인데요,
50년대의 주목할 만한 패션 협력은 할리우드와 하이패션 디자이너 사이의 긴밀한 산업 간 콜라보였습니다.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 크리스천 디올과 마를렌 디트리히의 관계가 대표적이었는데요,
특히 크리스천 디올은 일찍이 1930년대부터 영화 무대 의상의 개념으로, 여배우를 위한 드레스를 자체 제작했고, 기존 컬렉션의 의상을 변형하여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한 디자이너가 참여한 영화의 인기가 치솟으면, 곧바로 그들의 아틀리에로 더 많은 수의 여배우 고객을 불러 모으고, 또한 무대 의상에 만족한 여배우들은 ‘계약서’ 상 자신의 출연 조건으로 최고의 쿠튀리에를 특정하는 협력의 구조가 만들어졌는데요, 이는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고 각자의 가치를 빛내 주면서 선순환하는 의미 있는 패션 콜라보레이션의 역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1965년, 프랑스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네덜란드의 추상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삶과 작품에 관한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교차하는 기하학적 검은 선과 대담한 색채의 컬러 블록 조합이 매력적인, 칵테일 드레스를 제작했습니다.
소위 몬드리안 컬렉션이라고도 불린 ‘생 로랑’의 이 오마주 드레스는, 수많은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값싼 복제품들을 양산했습니다.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26벌의 드레스로 구성된 컬렉션 아이템을 통해, ‘이브 생 로랑’은 패션 디자인에 현대 미술의 감각과 생기를 불어넣었고, 소위 <웨어러블 아트>라고 부르는 개념의 선구적인 사례가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60년대부터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는데요,
1968년,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오 푸치’는 브랜드의 남성복 라인을 신설하면서, 이탈리아 테일러링의 정수와도 같던 패션 하우스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손을 잡습니다.
당시 ‘에밀리오 푸치’는 스키복과 수영복 제작을 시작으로, 대자연 관찰의 결과를 토대로 한, 컬러풀하고 매혹적인 프린트와 원단을 개발하여, 고유의 독창적 디자인 감성을 지니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에밀리오 푸치’의 색채 감각과 대를 잇는 가족 섬유 기업 ‘제냐’의 의복 제작 노하우가 합쳐지게 된 것입니다.
고품질 직물 생산에 주력하면서 디자인, 생산, 유통을 통합한 남성복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일군 ‘에르메네도 제냐’와 ‘에밀리오 푸치’의 멋진 만남은 화려한 컬러 프린트 원단을 남성복에 도입한 의미 있는 역사적 사례이자, 현대 패션 디자이너 혹은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 진행된 인식 상의 첫 번째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시대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협력 관계는 역시 영국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와의 콜라보일 것입니다.
1965년, 초등 교사로 일하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남동생 고든의 예술 대학 동문 '말콤 맥라렌'을 만나 정을 나누며 패션계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는데요,
기성 체제에 대한 부정과 환멸, 사회 규범과 관습에 대한 거부와 무정부적 태도, 자유롭고 도발적인 개인 표현에 대한 갈망 등의 감정과 자세를 기본 탑재한 맥라렌과 웨스트우드의 생각은 맥라렌이 매니지먼트를 맡게 된 신진 펑크 록 그룹 '섹스 피스톨스'의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녀는 그들의 밴드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게 됩니다.
그룹의 멤버들이 첫 콘서트에서 웨스트우드와 맥라렌이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 순간, 그들의 패션은 곧 시대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웨스트우드와 맥라렌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의 협업은 패션 아이템이 젊은 세대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정치적 저항의 메시지이자 강력한 문화적 의사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한편 1971년, 그녀가 런던의 킹스 로드에 오픈한 부티크는 70년대 중반 이후 펑크 운동의 패션 중심지가 되었는데요, 그곳은 섹스 피스톨스의 의상을 포함해 찢어진 슬로건 티셔츠, 본디지 팬츠, 세이프티 핀, 스터드 장식, 퀸 Queen 그래픽, 펑크 액세서리 등 그녀의 디자인 작품으로 가득 차게 되면서 커다란 예술,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훗날 웨스트우드는 당시 자신의 급진적인 견해와 패션 디자인 및 아이템을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했다고 밝혔고,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정치 행동에 나서도록 진심으로 격려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당시의 ‘펑크’ 패션 운동이 단지 마케팅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라며 씁쓸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에도 예술과 일상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특히 예술의 상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시도가 본격화되었습니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자신의 컨버스 올스타 테니스 스니커즈를 캔버스 삼아 당시 그가 제작하던 다양한 수작업 그래픽을 그림, 판화, 드로잉의 형태로 적용했고, 신문 광고 및 기타 광고 문구를 스크랩하여 운동화에 직접 스크린 인쇄했습니다.
미국의 예술가 '키스 해링'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해링의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아트 워크가 '웨스트우드'의 정신과 잘 어우러질 수 있음을 확인하고, 스트리트 아트의 즉각적인 사회 참여 메시지를 '하이패션'에 녹여내는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게 됩니다.
둘의 협업은 키스 해링의 작품을 패션 런웨이에 최초로 등판하게 한 사건이 되었고, 소비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현대 예술의 포용성과 접근성이 극대화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으며, 패션 아이템의 예술 플랫폼화를 강화하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는 패션 콜라보레이션의 상업적 가치와 매력이 분명해지는 시기였고, 그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특히 90년대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이젠 어느덧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주요 행사가 된 스포츠 브랜드와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간의 협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1993년, 오랜 적자와 빚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스포츠 브랜드 ‘푸마’에 구원 투수로 등판한 독일의 역대 최연소 CEO ‘요한 자이츠’는 ‘푸마’의 브랜드 자산을 새롭게 관리하면서 ‘스포츠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서의 신규 포지셔닝 구축을 시도하는데요,
이에 1998년, 푸마는 자신들의 스포츠웨어에 섹시한 감각과 이색적 매력을 더하기 위해 독일의 미니멀리즘 패션 브랜드 '질 샌더'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스포츠웨어에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의 감성을 본격 이식한 상징적 사례가 되었죠.
‘질 샌더’ 협업에 이어 푸마는, 닐 바렛, 미하라 야스히로 등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잇따라 영입했는데요,
이는 푸마가 진격의 두 스포츠웨어 거인, 나이키, 아디다스와 차별적 선을 긋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푸마의 행보에 자극을 받은 스포츠웨어 업계는 디자이너 협업 컬렉션 라인을 잇따라 강화하기 시작했는데요, 아디다스는 스텔라 매카트니, 요지 야마모토 등과 협업을 진행했고, 나이키는 꼼 데 가르송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스포츠웨어 브랜드는 연간 마케팅 계획에 디자이너 협업을 포함시키게 됩니다.
2000년대에 들어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패션 콜라보레이션은 역시 2001년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와 미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의 파트너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비통의 클래식한 모노그램 로고를 뉴욕의 그라피티 스타일로 변형한 제이콥스의 놀랍고도 대담한 크리에이티브 본능은 역사적인 명품 브랜드의 현대화를 앞당겼고,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럭셔리 기업 안에 잠재하던 젊고 화려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어린 시절 뉴욕 다운타운의 예술에 심취했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이 깊이 있게 보고 즐기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일부를 차용해 럭셔리 패션과 믹스했고,
이를 토대로 탄생한 규칙 파괴적이고 장난기 가득한 컬렉션에 힘입어 그는 루이비통의 비즈니스를 4배 이상 성장시켰고, 현대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트렌드를 최초로 세팅했습니다.
이후 마크 제이콥스는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의 예술가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성공적인 한정판 컬렉션을 거듭 이끌어냈고, 럭셔리 패션의 엘리트주의와 스트리트 문화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마크 제이콥스의 파격적 행보는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 그리고 디올의 ‘킴 존스’까지 기존의 규칙을 깨부수는 놀랍지만 세련되고, 장난스럽지만 비범한 매혹적인 현대 패션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한편 2004년, 스웨덴의 패스트패션 기업 H&M은 ‘칼 라거펠트’와 손을 잡고 하이패션 디자이너와 소매 기업 간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자신의 브랜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했고, 이를 통해 패션 업계의 주요 인사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는 디자이너 피스’라는 H&M 협업 캡슐 컬렉션의 차별적 매력은 패션 피플 사이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패스트패션 기업과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간의 이러한 <하이-로우 콜라보레이션>은 세계적인 성공 공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2015년에 진행된 H&M과 발망과의 협업 컬렉션은 지지 하디드, 켄달 제너 등의 스타 모델을 기용한 런웨이 진행과 소셜 미디어 기반의 고객 참여 및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전략의 마케팅적 화제성을 최고치로 끌어올렸고, 이를 통해 주요 경쟁자였던 자라, 유니클로 등의 패스트패션 리테일러와의 차별화에 성공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09년, 미국의 래퍼 카니예 웨스트는 나이키와 파트너십을 맺고 나이키 에어 이지(Nike Air Yeezy)를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칸예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대가로 판매 수익의 일부를 로열티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자 나이키는 이를 거절했고, 따라서 2013년, 그의 로열티 요구에 기꺼이 응한 경쟁사 아디다스와 칸예와의 협업이 본격 시작되었습니다.
2015년 2월, 협업 브랜드 YEEZY의 실제 제품이 공개되었고, 그가 디자인한 스니커즈 이지 350과 750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지 스니커즈의 첫 출시 이후 패션 운동화 시장에서 아디다스의 점유율은 1%에서 30%로 급증했고, 패션 스니커즈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으며, 스트리트 패션 문화 부흥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협업은 유명 운동선수가 아닌 연예인이 스포츠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어 브랜드 자본을 강화하는 셀럽 중심의 패션 라인이 지닌 잠재력을 부각했고,
운동화와 스트리트 웨어의 리셀 시장에 거대 자본을 끌어오면서 플랫폼과 패션, 셀럽과 팬층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현대 패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협업의 순간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2017년에 있었던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 ‘슈프림’과 대표 럭셔리 브랜드 ‘루이뷔통’의 팀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어디에나 존재하던 스트리트웨어의 흔한 매력을 모두가 탐내는 럭셔리의 지위와 믹스한 대담한 사건이자 스트리트웨어가 럭셔리 패션 세상의 까다로운 규칙과 폐쇄적인 전통을 무너뜨리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협업이 이루어지기 약 20년 전, 슈프림에 자신들의 무단 로고 사용 중단을 통보했던 루이비통의 전례가 있었다는 점인데요,
그렇기에 이 역사적인 파트너십은 완전히 새롭게 진화하는 패션 씬의 역동성을 완벽하게 잘 담아낸 문화적 현상으로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파리 패션 위크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2017 가을/겨울 루이뷔통 프레젠테이션에서 공개된 이 협업 컬렉션에서 두 브랜드의 시그니처 로고와 아이콘 그리고 강렬한 그래픽은 서로 예술처럼 합해졌고, 만인의 소장 욕구를 부추겼습니다.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는 협업 상대인 ‘슈프림’을 두고 ‘거대한 글로벌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해당 컬렉션은 세상 빠르게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두 브랜드의 팬들은 패션 역사의 한 페이지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영혼을 팔고 덤벼들었습니다.
협업 상품이 발매된지 단 하루 만에 2배 이상의 리셀 가격을 형성한 일은 두 브랜드 간 협업의 득이었을까요? 실이었을까요?
오늘은 현대 패션 콜라보레이션의 의미와 영향(가치) 그리고 시대별 대표 사례에 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보았는데요,
사실 저는 이 글을 쓰는 내내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나와 생각이 같은 친구를 보면 친해지고 싶고, 반대로 내가 가지지 못한 성격을 지닌 상대를 보면 어디 한 번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자극되는데, 이러한 점은 사람이나 브랜드나 매한가지일 것 같다구요.
두 개 이상의 창조적인 세계(우주)가 쾅 부딪히게 되면, 비록 그 끝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새로운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올바르게 친해지면) 서로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으며, 유일무이한 서로가 만나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세상에 없던) 뜻밖의 생각과 가치관을 만들어 내고, 너의 스타일도, 나의 스타일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미학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데요,
그런데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누군가와 또 무언가와 함께하는 일의 제일 가치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분 좋은 기대감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멋진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고, 그리하여 이 통섭의 시대에 분야를 막론하고 협업 그 자체의 인기란 결코 쉽게 식을 순 없을 것 같다는 말하나 마나 한 결론을 이렇게 내려봅니다.
이번 글의 사례 선정 과정에서 주관이 상당히 많이 개입된 점 그리고 글이 너무 길어질까 걱정하며 사례 하나하나에 보다 더 깊이 있는 해석을 담지 못한 점(꾸역꾸역 담으려다가 몇 번이나 부랴부랴 걷어낸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말 아쉽게 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패션 포스트를 작성하게 됐는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 최대한 자주 찾아뵙도록 매일 노력하겠습니다.
[함께 들으면 좋은 노래]
[함께 보면 좋은 유튜브 콜라보 채널]
https://youtube.com/@snpyonthecor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