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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한 추억팔이

화질구지와 함께하는 1999년

by 스눕피


1999년 이모저모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종말을 예언한 1999년,



당시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의 대표 잼민이었던 나의 최애 과자는 ‘오!감자’였고, 최애 라면은 ‘라우동’이었다.



방과 후 학교 앞 문방구의 투명한 찜기 속에서 (더러운 손으로) 정체 모를 싸구려 김치 만두를 두어 개 꺼내어 먹고, 비디오 가게에 들러 만화를 한 편 빌려 나온 후, 최종적으로 슈퍼마켓에 가서 ‘오!감자’ 한 봉과 ‘라우동’ 한 봉을 사서 귀가해 게걸스럽게 처먹는 것은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내 완벽한 하루의 모습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 하지만 그땐 라면과 과자가 엄마 밥보다 좋았고, 매일 먹어도 도통 질리지를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설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가 한국 방영을 시작한 것도 그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실로 대단한 인기였다. 나는 포켓몬빵의 출시와 함께 ‘찬호빵’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고, 약식 축구 게임이 가능하던 특수 철제 필통에 잔뜩 붙여 모으던 ‘국찐이빵’의 국찐이 스티커는 조용하지만 완전하게 띠부띠부씰로 대체됐다.



당시 전국적으로다가 막 성하게 일어나 퍼지던 PC방이란 곳에 놀러 가면 동네 형, 삼촌들이 곳곳에 담배 연기를 미친 듯이 뿜어대며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와 <레인보우 식스> 혹은 <마지막 왕국>을 즐기고 있었고, 나와 친구들은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POWER OVERWHELMING


흥분감을 주체 못 하니까 소재가 막 휙휙 넘어가는구나. 정신 차려, 스눕피! 안쓰럽구나.


옛 추억에 취해 의식을 잃은 스눕피와 그를 지켜보는 동료들


가끔 과거 추억팔이 여행을 하다가 주변인들로부터 ‘구라’ 좀 치지 말라는 억울한 말을 듣곤 하는 소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 시절의 ‘땔감 당번’ 썰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1997년부터 몇 해 동안 우리 학교는 나무 땔감을 써서 교실 중앙에 있는 난로 불을 피웠다.



겨울철 ‘땔감 당번’의 임무는 등교와 동시에 학교 뒤편의 땔감 창고로 건너가 나무 땔감을 잔뜩 실어 오는 것 그리고 나무에 쉽게 불이 잘 옮겨 붙을 수 있도록 나무 바닥을 닦을 때 사용하는 왁스를 재활용 신문지에 잔뜩 묻혀 준비해 두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못 믿는 눈치여서 댓글 반응과 공감의 메시지를 기대할 겸 블로그에 한 번 써봅니다.)


아무튼 오늘의 결론,


가끔 개인 메모장과 공개 블로그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냥 마구 치받는 오늘 같은 날이다.


그래서 나는 최종적으로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혼자서나마 애틋한 마음으로 잔뜩 그리워할 시절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를 추억하며 점점 메말라가는 마음에 촉촉하게 물을 축이고, 정서적인 공허를 간절히 채우며 잠시나마 냉해진 마음을 덥혀볼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 이것들이야말로 한 살 한 살 꾸역꾸역 징그럽게 나이를 까먹으며 살아가는 일의 (이런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순기능이랄까요, 아무튼간에 상당한 꿀잼이 아닐까 싶습니다.


쩝.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너만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너는 아니?” from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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