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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팍은 25살에 죽었다.

새삼스레 돌아보는 힙합 레전드 이야기

by 스눕피



투팍은 25살에 죽었다.


따져보니까 새삼 놀랍다. 스물다섯 래퍼가 총에 맞아 죽고 시대를 초월한 전설이 됐다는 사실 말이다. 을사년 기준으로 보니까 무려 2000년생 미국 남자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시저는 말했다.


겁쟁이는 죽기 전에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하지만, 용맹한 전사는 단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고 말이다.


죽음을 재구성해 예술을 그린 래퍼 2PAC 투팍은 그의 거대 신화가 본격 형성되기 시작한, 운명론적인 앨범 <Me Aaginst The World>(1995)의 수록곡 If I Die 2Nite(죽음에 대한 직감으로 가득 찬 노래)의 Intro에서 위 대사를 멋지게 인용했다.



A coward dies
a thousand deaths

A soldier dies
but once




투팍의 정규 3집에 해당하는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그를 문화적 아이콘으로 발돋움하게 했으나, 앨범 발매 당시 투팍은 감옥에 있었고(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복역하던 그는 바깥에선 이미 스타였다), 이듬해 9월에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는 흑인 남성으로서의 지난한 삶을 진실되게 말했고, 불의와 차별을 가감 없이 고발했다. 사회의 진실을 떳떳이 말하는 거리의 시인이었던 그는 커리어 내내 유독 죽음(그것을 부르는 절망적 환경과 그것이 부르는 무력감)을 자주 언급했다.


블랙 팬서 활동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심지어 FBI 10대 지명수배자였던 그의 의붓아버지)과 사회 범죄를 조장한다며 그에게 쏟아진 숱한 손가락질까지, 참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백악관이 나서 첫 앨범부터 투팍을 맹비난했다.


그의 인생은 일종의 도덕적 공황 상태로 점철됐다.



투팍은 95년의 대부분을 뉴욕 북부의 클린턴 교도소에서 보냈다. 93년 11월, 맨해튼 호텔에서 있었던 1급 성추행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최대 4년 반의 형을 선고받은 탓이다.


그는 항소를 계획했지만, 보석금 140만 달러는 도무지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때 데스 로우 레코즈의 슈그 나이트가 나타나서 그에게 딜을 쳤다. 보석금을 내주는 대신, 3장의 앨범을 계약하자는 것. 투팍은 서명했고, 95년 10월 12일 출소했다.



그는 그 길로 곧장 LA로 날아갔다. 그리고 10월 13일 밤, 녹음을 시작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밀도의 세션, 단 2주의 시간. 그는 두 개의 스튜디오 룸을 오가며 서로 다른 비트를 틀어놓고 가사를 쓰고 랩을 했다.



옥중 시간을 만회하려 했든,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했든, 혹은 단순히 계약 내용을 빨리 이행하려 했든 당시 그와 함께한 인물들은 모두 그의 게걸스러운 작업 열망에 놀랐다.


스눕 독은 훗날 그날의 투팍을 미친 경주마에 비유하기도 했다.



95년 10월 27일, 녹음이 마무리될 무렵, 앨범에 수록할 수십 곡의 노래가 완성됐고, 이듬해인 96년 2월 13일 그의 정규 4집 앨범 <All Eyez on Me>(1996)가 공식 발매됐다.


총 132분의 러닝 타임, 솔로 힙합 아티스트 최초의 더블 CD 앨범으로 장르의 새 기준을 세우고, 전작 <Me Against the World>(1995)와 같이 빌보드 1위 데뷔를 마쳤다. 이를 통해 슈그와의 계약서에 명시된 3장의 앨범 발매 중 2장을 성공적으로 완결한 셈이었다.



드레와 스눕을 슈퍼스타로 만들며 거물 프로듀서가 된 리얼 갱스터 출신 제작자 슈그 나이트는 조직 폭력배 식 레이블 운영(엔지니어들이 실수하면 주먹으로 응징했다)으로 악명이 높았고(창립 원칙: 폭행), 그런 그의 예술 같은 조장으로 투팍은 감옥에서 삭히던 분노를 터뜨리며 제대로 흑화했다.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라이벌 래퍼에 대한 혐오와 조롱(투팍은 판결을 앞둔 전날 밤,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 총격을 당했고, 그 배후에 형제 같던 래퍼 비기와 퍼프 대디가 있다고 확신했으며, 이는 동서부 힙합 대전의 시발점이 된다), 성폭행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는 분개(전작에서 여성 친화적인 곡을 발표하던 그는 이제 상스러운 여성 경멸을 터뜨렸다), 미국이란 국가에 대한 환멸의 감정이 앨범을 온통 지배했다.



내 태도는
그냥 ㅈ까라야.

왜냐고?

이 나라는
죄다 그렇게 살거든.



하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지경의 깡패 모드 스위치를 켜고 달려든 그의 폭주 랩은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을 탄생시키는 수상한 동력이 되었다.



그는 수록곡 No More Pain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옥은 날 바꿔놓지 않았어.
오히려 더 독하게 만들었지.



데뷔작부터 게토 흑인의 삶을 억압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불의에 대해 분노하며 내면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와 함께 길바닥 신용을 확보했던 그는 출소 이후 엉뚱한 곳에 분풀이를 시작했고, 광기에 찬 목소리로 개인적 원한과 현실 부정, 셀럽의 삶과 섹스 이야기를 이어갔다(복역 중에 탐독했다던 수많은 전략서와 철학서의 교훈이 이렇게나 잘못 쓰이다니요).



하지만 그것들은 닥터 드레가 기반을 닦은 데스 로우 레코즈의 밀도 높은 고퀄 질감의 G-Funk 사운드 위에서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앨범에는 Daz Dillinger, Johnny J, DJ Quik, Dj Pooh 등 당대 최고의 캘리포니아 프로듀서들이 참여했고, 믿기 힘들 만큼 훌륭한 믹싱과 프로덕션을 보여줬다.


<All Eyez On Me>는 발매 첫 주에만 56만 장 이상이 판매됐고, 현재까지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올타임 힙합 레전드 플래티넘 앨범이 됐다.


투팍의 생전 마지막 모습 / 슈그 나이트는 2018년, 자발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유죄 인정으로 28년형을 선고받았다. 사필귀정 그리고 인과응보!


1996년 9월 7일, 타이슨 경기 관람을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투팍은 복싱 경기가 끝나고, 슈기 나이트와 함께 차를 타고 데스 로우 레코즈가 운영하던 클럽으로 향하던 길에 네 발의 총상을 입는다. 이후 그는 대학병원에 이송됐지만, 일주일 뒤 심정지로 사망한다. 향년 25세.


그는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고, 기어코 자유를 되찾았지만, 허망하게 그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그 검사 양반.
법정에선 게거품 물고 날 몰아세우더니,
지금은 어때? 어떻게 사는지 보여?
또렷하게 보이지?
내가 이 자유를 어떻게 굴리는지.
그리고, 경찰 여러분들!
저 잘 보여요?
상상해보슈!
자유롭게 달리는 내 모습,이건 찐인데.
O.J.처럼 — 하루 종일, 난 완전히 자윤데.
니들은 날 막을 수 없어. 절대로!

- Picture Me Rollin' 중에서


어떤 평론가는 생전 그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All Eyez on Me>에서 한 인간의 모순된 양면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뿔이 잔뜩 난 그의 가사를 자신의 취약한 감정을 자기도취적인 과잉 감정과 공격성으로 덮으려는 애잔한 시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회 구조와 공동체에 관심의 시선을 두고, 자기 성찰과 연민 속에서 세상을 향해 바른 소리를 외치던 예술가(어린 시절의 그는 셰익스피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이후 영화배우로 열연하기도 했다)가 이전에는 부정하던 삶을 그토록 찬미하게 된 역변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는 언제나 자기 인생의 순간순간에 더럽게 솔직했다는 점이고, 그것이 숱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그를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아니, 신화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만든,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비밀이라는 것이다.



이미 전설이 된 아티스트(특히 무덤 속에 들어간 경우라면 더더욱)에 대한 잡다한 사후 해설과 해석은 하등 쓸데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오래간만에 투팍의 노래를 듣다가 왈칵 치받아 뭐라도 끄적이고 싶었다.


아무렴 태생이 힙합 블로그인데, 노상 관심 없는 패션 이야기 혹은 질질 짜는 30대 중반 십프피 남자의 요상한 에세이나 쓰고 앉아 있으니 어떤 구독자 분들께 매우 죄송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나쁜 놈들과 손잡고 죽음을 향해 질주하며 하얗게 불태운 그의 폭력적인 에너지가 만든 세기의 명반에 얽힌 저런 이야기는 어쩌면 말하나 마나 한 동어 반복일테지만, 아무쪼록 흥미롭게 읽혔기를 바란다.


그리고 증명할 길 없으나(무덤 속의 그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가 슈그 나이트와의 음반 계약과 관련해 절친에게 전했다던 이런 메시지가 오늘따라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와 마지막으로 소개해본다.



나, 악마한테
영혼 파는 거 알아.
그래도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앨범

We gotta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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