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한국인에게 길을 알려주는 음악
나는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땀도 많고 탈도 잦아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서 그렇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밤, 시원한 차 혹은 집에서 듣는 힙합 음악은 나를 살맛 나게 하고, 여름이란 계절을 그나마 긍정하게 만든다.
주종은 고민할 것도 없이 90년대와 00년대의 서던 힙합이다.
기분 좋았던 나의 여름 기억 속엔 늘 서던 사운드가 촘촘히 박혀있다. 누가 보면 휴스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 줄 알겠는데, 사실 나는 자랑스러운 명예 인천 시민이자 현직 서울 광진구민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지 않나. 전생의 내가 텍사스 주에 지분이 좀 있었을지도. 쩝.
사우스 힙합의 매력은 뭘까.
블루스와 재즈, 가스펠의 정서가 충분히 배어든 (마음을 적시는) 감각적인 멜로디는 큰 행복이고, 스웨거 가득한 R&B 소울틱한 리듬은 꽤 각별하며, 자동차의 바닥부터 트렁크까지 뒤흔드는 느릿하고 끈적한 베이스 라인은 뜨거운 감동이고, 그 위에 착착 감기는 서던 래퍼 특유의 (텍사스식) 억양과 플로우는 내 마음을 확 찢어 뜨거운 사랑 안에 푹 담근다.
6월이 다가오고, 날이 더워진다. 몇 개월인가 잠들었던 나의 여름 힙합 플리가 재가동을 시작할 차례다.
아니, 벌써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사우스 힙합을 정의 내린 UGK(Pimp C & Bun B)와 DJ Screw부터 Ghetto Dreams의 Fat Pat, Purple Drank의 Big Moe, Trae tha Truth와 Slim Thug, Mike Jones 그리고 스눕피의 브런치 단골 초대 손님 Lil Keke와 Paul Wall까지 쉴 틈이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매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좋은 앨범과 좋은 트랙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순간에도 UGK의 ‘Pinky Ring’이 찰지게 흐르고 있는데, 매년 들을 때마다 매번 짜릿해 죽겠다.
어느 여름의 편안하고 느긋한 일요일 오후, 멋지게 칠하고 섹시하게 장식한 커스텀 자동차를 이리저리 몰아 재끼며 온 동네 온 블록을 부지런히 싸돌아다닌다.
제대로 된 힙합 사운드가 함께하기에 차 안은 곧 나만의 작은 우주가 된다.
어딘가에서 바비큐 파티가 한창인지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잔뜩 풍겨온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마침 끝내주는 노래가 시작되려 한다.
꼭 쥐고 있던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잠시 놓고, 음악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린다.
Lil Keke의 ‘Bounce And Turn’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최고의 순간을 만끽한다.
하지만 현실은 서울 지하철 2호선.
때 이른 에어컨 풀가동에 닭살이 돋는다. 대충 얹은 캡 모자를 푹 눌러 눈썹 아래까지 덮어 내리고, 후드 집업의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면서 두툼한 후디를 뒤집어쓴다.
그리고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아이폰의 볼륨을 귀가 아프도록 올린다.
UGK의 Bun B 삼촌이 자주 말하곤 했다.
제발 Trill하게 좀 살자고!
Trill은 그가 대중화시킨 True와 Real의 합성어인데, Trill하게 산다는 건, 꼭 그래야만 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신념을 지키는 것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진정한 힙합 팬이라면 Trill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 Metro에서도 Boomin’할 줄 알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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