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은 생의 숫자만큼 많다.
세상이 외면하는 시간에도, 어딘가의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성실히 꿰매고 있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우리에겐 자기 일상의 배경이 있고, 어떤 날은 마땅히 구원도 찾아온다. 따라서 조용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고, 각자 삶의 타당한 이유에 준하며, 세상의 중심은 생의 숫자만큼 많다.
미국 힙합이 뉴욕과 LA라는 두 지역 상자 안에 갇힌 채 동서부 라이벌 구도의 절정기를 통과하던 1995년, 뉴욕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린 <Source Awards> 현장에서 아웃캐스트 Outkast의 멤버 안드레 Andre 3000이 ‘올해의 신인 랩 그룹’ 부문을 수상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건넨 소감은 미국 남부에도 새로운 목소리와 이야기 그리고 사운드가 있다는 걸 알리는 제3지대 힙합의 문화적 선언과도 같았다.
“아 진짜, 솔직히 말해서 꽉 막힌 사람들 때문에 이젠 좀 지겹네요. 그러니까 뭔 말이냐면요, 우리가 데모 테이프까지 하나 만들어 준비해 놨거든요? 하지만 아무도 들으려고 하질 않아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 남부도 사실 할 말이 있다구요. 그거 하나만은 꼭 알아주세요.”
"The South Got Something to Say" — Andre 3000, 1995 소스 어워즈
리스너로서 동서부 힙합을 맛보고 즐기던 남부 지역의 래퍼들은 자신들에게 익숙지도 않은 지하철이나 갱 이야기 대신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당대의 사회문화, 나아가 인종적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뻔하게 기존 것을 흉내 내지 않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며 약진했다.
드럼 머신 위에서 노예 시대의 워크 송 ‘블루스’와 남부 흑인 교회의 스피리추얼 ‘가스펠’이 변형된 뿌리를 내리고, 쪼개진 비트에 기대어 남부 흑인 커뮤니티 삶의 면면이 다채로운 지역 사투리와 함께 재구성된 것이다.
지역별 세부 장르로 가지치기하며 풀뿌리 음악으로 성장한 남부 힙합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와 결국 메인스트림에 입성했고, 남부 고유의 힙합 사운드와 크렁크, 스냅, 트랩, 바운스 등의 서던 리듬은 대세가 되었으며, 각 비트에 어울리는 댄스 스타일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아무도 귀 기울지 않던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멜로디가 결국 모두의 감각으로 옮겨 붙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낯설게 느껴지던 남부 힙합의 고유 감각은 신선한 매력이 되었고, 촌스럽다던 억양은 또렷한 개성으로, 느리고 지루하다던 템포는 매혹적인 그루브로 승화했다.
남부 힙합 아티스트들은 고향의 시간, 동네의 속도, 몸에 익은 리듬에 맞춰 일상과 주변부의 이야기를 그대로 음악 위에 얹어 조용히 오래가는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만들었고, 거대한 세상을 초대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자기중심을 단단히 잡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잠잠하게 가꾸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성장 교훈의 살아있는 예시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스눕피의 옛 힙합 포스트의 결을 따라 글을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금일 추천 노래는 말이죠,
서던 힙합, 특히, 휴스턴 힙합이 지역 명성을 너머 전국구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던 2003년에 발매된 <The Big Unit>(2003)이라는 앨범의 수록곡 ‘This How We Do'예요.
유닛의 멤버 ‘릴 키키’와 ‘슬림 떡’은 각각 휴스턴의 사우스 사이드와 노스 사이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였구요, 따라서 이 앨범은 지역 갈등을 극복하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그런 아름다운 통일의 미학이 담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선거철에 아주 제격이겠네요.
릴찍? 떡찍?
노래는 성공과 스웨그의 코드로 온통 버무려져 있어요.
가사를 잘 보시면, 동부 힙합의 대부호 ‘제이지’처럼 제대로 해 먹어 보겠다는 표현 같은 걸 확인할 수 있거든요.
서던 힙합의 대표 프로듀서 ‘Mr. Lee'와 'Mike Dean'이 함께 프로듀싱한 훌륭한 노래이고, 여름철에 듣기 좋은 비트이니까, 레이드 백하고 칠한 바이브로 한번 감상해 보세요.
그럼 오늘의 힙합 포스트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