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튠을 세상에 소개한 죄로 우울증에 걸린 티페인
문화예술계의 누군가는 무언가를 처음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훗날 가장 많은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장을 뒤흔든 혁신가로 추앙받다가, 나중엔 업계를 망친 주범으로 역변하는 식이다. 꽤 불공평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는 엄연한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2004년, 미국의 래퍼 겸 프로듀서 티페인 T-Pain은 에이콘 Akon의 음악 레이블 ‘콘빅트 뮤직(Konvict Muzik)’과 계약을 맺는다.
계약 당시 19살에 불과했던 그는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직접 진행하고, 무엇보다 ‘오토튠(Auto-Tune)’이라는 신비한 소리의 마법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혁혁한 공을 올린다.
2005년, 데뷔 앨범 <RAPPA TERNT SANGA>를 통해 20살 청년 래퍼 ‘티페인’은 일약 스타가 됐다.
그리고 당시의 그가 지닌 최고의 음악 무기는 ‘오토튠’이었다.
그는 음정이 어긋난 보컬을 잡아주는 보정 기술 소프트웨어를 마치 악기처럼 활용했고, 이를 통해 데뷔 이후 2009년 말까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33곡의 히트곡을 진입시켰다(다시 말해, 큰 부자가 됐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개척한 특유의 보컬 이펙트를 대중음악 전반에 퍼뜨리며 시대를 대표하는 사운드로 만들었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2010년대와 2020년대의 래퍼 드레이크가 팝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비교해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식 상 최초로 소개한 디지털 오디오 처리 기술이 남용되고 과잉 소비되면서 그는 쓸데없이 과도한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당시 많은 팝 가수들은 예외 없이 미친 로봇의 성대를 갖게 되었는데, 그가 고안한 기계적인 질감을 지닌 외계인 소리가 어떤 때는 매우 슬프게 들리기도 했다.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티페인은 커리어의 정점을 맞이했다. 수많은 곡을 작업했고, 동료 가수 피처링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 그가 만든 장르 위에서 남들은 성공했지만, 정작 그는 조롱과 놀림을 받을 뿐이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울감이 덮쳐 술에 절어 살던 시절로 기억했다. 쌓여가는 부와 달리 잃어 가는 행복을 찾기 위해 그는 애를 썼다.
“어느 순간, 진짜 내가 형편없는 아티스트인 줄 알았어요.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않았죠.
억지로 행복해하려 애썼던 기억이 나요.
술에 취해 있는 일이 많았고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남들이 뭐라던 신경 안 써!’라고 말이죠.
그런데 막상 그 욕을 직접 들어보잖아요?
레알 빡칩니다.
유튜브 댓글이란 게 AI가 생성한 게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가 나한테 한 말이잖아요.
‘너는 쓰레기야. 죽어버려!’
이런 말을 직접 한번 들어봐요,
당연히 기분이 아주 개 같죠.”
어느 순간 그의 지위는 일시적 유행에 올라탄, 노래도 못하는 그저 그런 광대 수준으로 격하됐고, 오토튠 사운드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던 대중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가창력의 빈곤을 음성 과학 기술로 덮으려는 아티스트를 양산하는 밭을 깔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수많은 아류가 그의 스타일을 끝없이 베꼈고, 2010년대 이후, 오토튠은 음악 장르를 막론하고 어느덧 일상적 음악 소리의 일부가 됐다.
2008년, 칸예 웨스트는 오토튠을 전면에 내세운 정규 4집 앨범 <808s & Heartbreak>를 공개했다. 앨범은 혁신적인 사운드와 신선한 발상으로 다수에게 칭찬받았다.
칸예는 해당 앨범을 준비하며 컨설턴트의 자격으로 티페인을 자신의 하와이 작업실로 초대했는데, 티페인은 그것이 오토튠 활용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칸예의 계산된 조처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앨범 작업을 도와준 그에겐 그 어떤 크레딧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티페인은 자신이 연구한 사운드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그리고 티페인은 보정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가수들과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오토튠의 개발자를 직접 만나 그것의 발명 과정을 직접 듣고, 기술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스타일이었을 뿐인데’ 무작정 욕을 먹는 상황 속에서 그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지만 티페인은 끝까지 원조가 가진 힘을 강조했다.
“저는 제 음악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랩을 한다는 이유로 래퍼가 랩을 그만두진 않잖아요?
그건 말이 안 되죠.
그래서 계속 밀고 나갔어요. 내가 믿는 걸 해야죠.”
2014년, 티페인은 NPR의 <Tiny Desk Concert>에 출연했다.
그는 인터뷰인 줄 알고 갔을 뿐인데, 키보드와 의자가 준비된 방으로 안내받고는, 즉흥 라이브를 진행하게 되었다면서 그날의 에피소드를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다.
그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를 통해 보정 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히트곡을 여러 곡 들려줬는데, 현재 3,000만 조회수를 넘긴 해당 영상의 댓글에는 이런 인상적인 메시지가 남아있다.
사실은
티페인이
오토튠 기술을
핸디캡으로 활용한 거였어.
오토튠 기술을 개발한 ‘앤디 힐더브랜드’는 석유 탐사 분야에서 활동하던 지질학자였다.
그는 지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보낸 지진파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하는 처리 기법을 음성 신호 분석에 적용했고, 해당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오토튠을 개발했다.
석유 산업 기술이 대중음악 분야에 뜬금없이 옮겨 붙어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놓게 된 것이다.
티페인 역시 제니퍼 로페즈의 “If You Had My Love”와 블랙스트리트의 “Let Me Go Deep”을 듣고, 보컬 프로세싱에 적용된 이름 모를 보정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다가 오토튠을 발견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디지털 음악 도구를 실험적으로 사용했고, 소프트웨어를 변칙적으로 활용해 자신만의 고유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음악을 제작하고 싶게 자극하고, 걷잡을 수 없고 또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시대의 음악 트렌드를 일구었다.
음정 보정 소프트웨어로 탄생한 오토튠은 디지털 음원 시대에서 인간의 감정을 새롭게 구성하는 문법이 되었고,
티페인은 일찌감치 그것의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천재였으며, 그의 음악 실험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었다.
사람들은 그를 얕보고 조롱하면서도, 결국 그의 언어로 말하고, 그의 방식으로 노래하며, 그의 길을 따랐다.
어떤 혁신은 오해와 모방 속에서 완성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오늘은 우울증을 딛고 일어선 티페인이 우리에게 전하는 두 가지 교훈을 소개하며 포스트를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더라도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을 믿어라.
둘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면 세상을 영원히 바꿀 수도 있다.
잘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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