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크리스마스 주제곡이 된 빈스 과랄디 연주곡
1963년, 미국의 프로듀서 리 멘델슨(Lee Mendelson)은 전설적인 야구 선수 윌리 메이스를 조명하는 헌정 다큐멘터리 <A Man Named Mays>를 완성하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멘델슨은 지역 신문에서 찰리 브라운이 '또다시‘ 야구에서 지는 내용의 피너츠 만화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야구를 못하는 선수를 만든 작가(찰스 슐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마침 두 사람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었고, 멘델슨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다짜고짜 찰스 슐츠에게 연락했다.
다큐멘터리 <A Boy Named Charlie Brown>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어느 날,
작품에 어울릴만한 주제곡을 고민하던 멘델슨은 금문교를 건너다가 지역 재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연히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의 연주곡 “Cast Your Fate to the Wind”를 듣고 마음을 빼앗긴다.
과랄디는 당시 막 떠오르던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였고, 해당 노래는 앨범의 B면에 실릴 뻔한 곡이었지만, 그래미상 수상과 함께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의미 있는 곡이기도 했다.
“저는 재즈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슐츠의 집에서 금문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라디오에서 그 음악을 들었는데, 분명 재즈인데, 멜로디가 분명하고 탁 트인 느낌을 줬어요.
마치 만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았죠.”
멘델슨은 그 즉시 한 재즈 평론가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곡의 주인공이 빈스 과랄디임을 확인했다.
당시 과랄디 역시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었고, 둘은 곧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그날 과랄디는 자신이 피너츠의 팬이었음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멘델슨은 과랄디를 다큐멘터리의 음악감독으로 고용했다.
셋이 함께한 다큐멘터리는 1964년 완성됐다. 이후 멘델슨은 전국을 돌며 해당 프로젝트의 방영을 제안했지만, 그 어떤 방송사도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일반에 공개되지도 못했다.
그들의 첫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려던 참에, 멘델슨에게 뉴욕의 한 광고대행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카콜라의 후원과 함께 피너츠의 캐릭터를 활용한 크리스마스 스페셜 TV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의뢰였다.
멘델슨은 기다렸다는 듯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멘델슨은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을 과랄디에게 다시 맡기기로 했고, 과랄디는 기존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음악을 재활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노래를 새로 작곡하기로 했다.
하지만 특집 프로그램 방영 방송사 CBS는 어린이 만화에 재즈를 배경 음악으로 활용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고, 빈스 과랄디와 그의 팀원들은 제한된 예산과 촉박한 시간 속에서 급하게 음악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한편 CBS 임원들은 방송 직전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당시 방송계에서는 프로그램 내 종교적 요소의 삽입을 꺼려했는데, 슐츠의 고집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로 한 점과 만화 속에서 실제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활용하기로 한 결정(주제곡의 일부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교회 어린이 합창단이 불렀다) 그리고 만화가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는 감상평 등이 사전 시사회에서 주요 걱정거리로 꼽혔다(코카콜라 관계자들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TV 가이드와 신문에 프로그램의 방영 일정이 실려버리면서 모든 것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됐다.
1965년 12월 9일,
많은 이들의 부정적 예상이 보란 듯이 깨졌다.
첫 방송에서 전국 TV 시청자의 무려 45%가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특집을 시청하게 되면서 프로그램이 대히트를 치게 된 것이다.
이 스페셜은 이후 전 세계 73개국에서 방영되었고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50편에 달하는 특집과 4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낳았다.
현재까지도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는 미국의 연말을 상징하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오랫동안 전 세계인들의 동심 어린 마음속에 깊은 여운과 내밀한 감정적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성공 뒤에는 빈스 과랄디의 음악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따스한 스토리를 더욱 풍부하고 성스럽게, 또한 신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노래들.
12월이 되면 마치 미국의 연말 공식 사운드트랙처럼 울려 퍼지는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스윙감 넘치는 크리스마스 앨범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재즈 앨범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날 이후, 빈스 과랄디는 피너츠 스페셜의 공식 작곡가가 되었고, 무려 17개의 TV 스페셜을 더 작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크리스마스 앨범은 미국 국립음반등록소의 "문화적, 역사적, 또는 미학적으로 중요한" 사운드 레코딩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그리고 안물안궁, 내 이야기. 쩝.
2018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익명 속에 꼭꼭 숨어 자유롭게 (다소 변태 같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개인 블로그 운영을 시작했다.
본가 부엌 식탁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닉네임을 지으려는데, 건너편 냉장고의 손잡이 부분이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췄고, 내 앞에 놓인 맥북 역시 얼보이듯 거기에 비춰보였다. 그리고 그때 노트북의 빛나는 사과 마크 아래 래퍼 ‘스눕독’의 스티커 텍스트(SNOOP)가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듣고 있던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앨범 속 ‘스누피’의 모습이 예술처럼 오버랩되면서 나는 <스눕피>라는 요상한 이름을 지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땐 그 이름이 훗날 나의 기고용 필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블로그의 운영 목적 또한 그저 무엇이든 털어놓는 개인 메모장으로서의 활용이 전부였기 때문에 도대체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블로그가 내 인생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절친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면서, 나는 <스눕피>라는 이름에 어떤 운명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됐고, 보고 또 봐도 귀여운 우리의 스누피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
특히, ‘찰스 슐츠’ 할아버지와 ‘스콧 피츠제럴드’ 할아버지가 모두 미국 미네소타주 출신이라는 점을 알고 나서는, 너무나도 신기한 마음에 ‘미네소타주’ 방문을 소중한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남겨두고 있기도 할 정도다(대충 가서 휙 둘러보고 올 생각이 없고, 진심을 다해 학습하듯 돌아다닐 생각이다).
Anyway 음악이란 감정을 품은 예술이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정서를 반영하는 마법이다.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아름다운 연주곡은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의 영혼을 깨워 그들을 따뜻한 감정을 지닌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었다. 일 년 중 가장 고요하고 따뜻하며 헌신적인 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주제로 다룬 만화와 세상 동화적인 감성을 품은 재즈의 운명적이고도 완벽한 만남의 당연한 결과였달까. 진심을 담은 음악은 영원한 생명을 품고 있고, 그것은 언제나 주변을 생생하게 물들이기 마련이기 때문에.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음악과 함께 보다 순수하고 단순했던 어린 시절의 기분 좋은 감각을 회상하며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라면서, 오늘의 다소 길고 산만했던 포스트를 서둘러 마무리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OODA_K5hxyc?si=_Phf-bYJf32xM0Ui
https://youtu.be/li39Gb1PMew?si=LDcmNvNrWnLcEi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