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남의 개노잼 인생 일기
(1)
얼마 전, 에스파의 카리나 님이 학창 시절 드라이기로 손수 머리를 말려주었다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하는 쇼츠 영상을 봤다.
당장 우리 아빠, (아니, 나잇값 해서) 우리 아버지가 생각났다.
혼자 사는 서른여섯 아들 맛있는 거 좀 먹이겠다고 바리바리 반찬통을 싸들고(내가 준 비즈니스 백팩 메고) 인천에서 서울로 새벽 배달해 주는 사람. 혹여나 잠에서 깰까 봐(어쩌면 다른 이유일지도) 집 문 앞에 쿠팡마냥 아이스박스 한 통 툭 두고 가는 사람. 학창 시절엔 잠 좀 더 자라고 무지 가까운 등교 거리를 굳이 자동차로 데려다주던 사람(나는 그렇게 안전히 운반되는 내 나약한 모습을 남중남고 학우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어 늘 교문과 좀 떨어진 곳에서 서둘러 내리곤 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교복을 입는 동안 간장 계란밥을 만들어 식탁에서 대기하던 사람.
문득 미치도록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지독히 알아요.
그러니까, (비록 손주는 없지만 엄연한)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전자 담배도 엄연한 담배니까 끊으시구요. 술도 좀 줄이시구요. 쩝.
(2)
블로그에서 되도록이면 밥벌이 얘긴 최대한 안 하려고 한다. 완전한 자아 분리만이 블로그 장기 운영의 필승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나’는 내가 아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현실의 ‘나’는 근 한 달간 IR 자료만 만졌다. 무한 수정의 늪. 처음엔 “휴” 했지만, 최근엔 “흠” 했다. 마냥 부족한 내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고, 내가 (무릇) 해야 할 일이고,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니까. 이왕 고생했으니 이번에도 꼭 결과로 증명하고 싶다.
저녁 시간에 주변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그때쯤 개기름이 잔뜩 낀 얼굴은 간지럽다. 무지성 찬물 세수를 해본다. 잠이 깬다. 피곤한 나날인데, 어째 피부는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다행이군!
아무리 피곤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헬스장에 간다. 체력은 대승적 국력이 아니라 소승적 생존이니까.
(3)
시간을 쪼개고 쪼갠다. 블로그 글쓰기는 나와의 진지한 인생 약속이다. 나는 평생 글 쓰며 살 작정인데, 나중에 몰아서 증명하기는 죽어도 싫다.
급조된 열정은 가짜고, 기록된 역사가 진짜다.
아니, 사실은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미친놈처럼 떠들 수 있는 이 공간이 나는 그냥 너무 좋다.
요샌 패션 포스트를 잘 안 쓴다. 머리가 복잡할 땐 패션 디깅이 잘 안 돼서다. 덩달아 인스타도 멀리하고 있다. 다 똑같이 생긴 온라인 패션 소식지가 거의 같은 뉴스를 조금 다른 톤으로 성실히 생중계한다.
아? 그렇군요.
음악 아티클을 쓰기 위해 약간의 글감을 재빨리 수집하고, 앨범을 찬찬히 즐기는 시공간이 요즘 나의 유일한 해방구다.
저랑 지루한 인생 혹은 일관된 취미 대결 하실 분?
프로필 [문의하기]로 도전장을 던져주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호호.
(4)
서너 달 전에 약식 사주를 봤는데, 센세께서 내게 정직하게만 살지 말고 과장도 좀 하고 거짓말도 좀 던지며 살아야 한단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면서.
그런데, 과장이랑 거짓말, 그거 내가 제일 잘하는 건데? 정작 중요한 때 못하니 그게 심각한 문제 같기도 하고.
이거, 이거, 방법이 없을까?
(5)
1994년 데뷔 앨범 발매 당시,
소녀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에 두 테이크 만에 녹음을 완료했다는 전설의 노래.
Brandy 브랜디 이모의 <Brokenhearted>
그날은
진짜 스튜디오에
가기 싫었어요.
그냥 애처럼
놀고 싶었죠.
그래서
'한두 번에 끝내자!
그래야 놀러 갈 수 있어!'
라고 속으로 다짐했었어요.
무언가를 잘 해내야 할 때,
어쩌면 가장 좋은 마음가짐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빠르게 통과하자!'
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내게 절실히 필요한 자세다.
휴.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Uzgv3xD5Dt4?si=3MugP_9vWyg3Axs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