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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29. 2018

닥치고 빈지노Beenzino

빈지노가 한국 힙합 씬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

한국 대중음악이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전과 후로 나뉜다고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나는 한국 힙합 음악이 빈지노의 앨범 ‘24:26’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서 이것은 꽤 자명하다. 유재하와 빈지노의 차이가 하나 있다면 시인 장석주가 말한 ‘요절의 운명’을 타고난 자와 타고나지 못한 자의 간극 정도랄까(풋내기 빈지노를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꼴이 되어 버렸다.)


빈지노는 누구인가. 빈지노는 대한민국의 래퍼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늘 그의 꽁무니를 따라간다. 대한민국 국민은 스무 살 언저리에 '대학 서열'로 자기의 평생 신분이 결정된다는 '서울대학교' 출신 작가 홍세화가 언젠가 말한 대로 그는 노력 끝에 서울대학에 입학했고 서울대 미대 출신의 엘리트 래퍼가 되었다(대한민국 사회에서 '서울대 자퇴'라는 타이틀은 어떤 직업인을 설명할 때 아주 매력적인 형용이 되는데, 빈지노는 심지어 그것마저 해냈다.)


몇 곡의 노래와 몇 개의 앨범으로 빈지노가 일반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편을 갈라 그의 '실력' 운운했었다. 라이브 실력이 형편없다, 스튜디오 래퍼일 뿐이다, 서울대 빨이다 등의 평가질이 오고 갔고, 그의 오랜 팬들은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보란 듯이 결국 '무대'를 통해 그런 편견 섞인 말과 비아냥거림을 작살내 주었고, 그의 실력 운운하던 친구들은 그의 동료이자 형님인 더 콰이엇의 가사처럼 조용히 그들의 진로Career를 걱정했다.


빈지노의 노래 속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 열광한다. 그는 대부분 남이 만든 비트 위에 가사를 써 왔다. 그는 누가 준 비트 위에 가사를 쓰고 랩을 했으나,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와 만났다.

나는 몇 년 전 그의 노래 'Summer Madness'와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노래 '멀어'를 듣고 문학 작품 하나를 감상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의 등단 여부를 확인해볼 뻔하기도 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겨울도 역시 죽었나 봐.
날이 더울 땐, 담배 냄새가 옷에 더 많이 밸거라고 문득 생각했어.
냉장에서 나온 얼음이 해 앞에서 녹듯이 내 몸도 쓰러졌지.
여름에 난 괜히 거만하거나 영화라고 치면 악당을 하고파.
당분간 흘리게 될 땀방울을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하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핫팬츠뿐. 이럴 때 보면 여름도 뭐 괜찮군.


빈지노 'Summer Madness'


빈지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그들이 듣고 싶은 말'과 일치시키는 일을 가장 잘하는 래퍼다. 참고로 빈지노가 소속된 일리네어 레코즈의 수장 DOK2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지나치게 하느라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지나치게 생략하는 일을 가장 잘하는 래퍼이다.


빈지노는 확실히 뭔가를 알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영리한 것이다. 그는 언제나 유효한 '키워드' 선택을 보여준다. 그는 '벌꿀 얹은 아이스크림'에 환장하던 2030 여자들의 귀를 쫑긋하게 할 줄 알고, '물론 지디 얘길 꺼낼 거면 할 말 없어'라며 대한민국의 아이콘 '지드래곤'을 자기의 이야기에 끌어올 줄 아는 것이다.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다. 2010년 6월에 발매된 Blue Brand 2집의 9번 트랙을 들어보시라. 백문이 불여일청이라고, 일단 들어보시라. 그리고 느껴보시라. 멜로디와 비트 그리고 가사까지. 흑역사는 이 노래 하나면 완벽히 정리된다고 본다.




지금의 빈지노를 만든 것은 분명, 재지팩트와 핫클립이다. 그보다 먼저, 그를 발굴한 '사이먼 도미닉'이 있지만, 그것은 너무 옛날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여전히 재지팩트를 기억한다. 재지팩트의 감성을 논한다.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20대의 진한 바이브였다.


"돈보다는 마음이 내게는 더 와 닿아. 내가 없이 자랐다거나 그런 것도 아냐."


"밖을 내다봐. 마음이 없어. it s all about the money and the sex. 어떤 이는 눈 풀린 밤을 보내고 노리는 홀인원. 됐어. 내겐 안 어울리는걸. 누군 날 놀리는걸. 넌 너무 어려. f*ck that s*it man! 난 배운 대로 해.

누군 날 놀리는걸. 난 너무 어리다고. f*ck that s*it man!"


재지팩트 'Vibra'


하지만 재지팩트 시절의 이런 단편적인 가사와 20대의 순수 바이브를 나열해놓고 빈지노의 초심을 운운할 순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빈지노의 초심이 그립다거나 재지팩트 시절의(정확히 말하면 앨범 Life’s Like 시절의) 빈지노로 돌아와 달라며 떼를 쓰는 팬들이 많았던 걸로 안다. 하지만 빈지노라는 가수가 워낙 톱클래스가 된 지금에 와서 사람들이 그의 초심을 들먹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뛰어넘으며 굳건히 쌓아 올린 그의 커리어 때문에 그는 이미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지속 성장형 래퍼로 팬들에게 충분히 어필하였기에 빈지노는 언제까지고 그냥 ‘빈지노’ 그 자체로서 주목받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빈지노'가 한국 힙합 씬에서 갖는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인터뷰가 하나 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뭘 좀 아는 프로듀서 겸 가수 Jinbo가 2013년 힙합엘이와 나눈 인터뷰다.


“빈지노는, 지금은 그때 제가 느꼈던 포텐셜들이 많이 터져있는 상태인데, 지금 되게 ‘랩스타’가 됐잖아요.

근데 그 당시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죠. 왜냐하면 앨범이 나오기 전이었으니깐요.

외국은 힙합 씬에서 스타가 되면 미국 전체 스타가 되잖아요. 제이지(Jay-Z)하면 미국 국민 중에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스눕 독(Snoop Dogg)이나 릴 웨인(Lil Wayne)도 꼭 힙합 좋아하는 애들 아니더라도 다 아는 그런 일반적인 팝 아이콘이잖아요.

빈지노는 한국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힙합이 계속 ‘한국 힙합, 한국 힙합’ 하면서 요만한 데서 돈도 안 나오고, 그 얼마 안 되는 돈도 다 고등학생이 사주면서 발생하는 거니까. 음악이 고등학생들이 즐기는 정도에서 더 이상 성장을 못하고 계속 거기에만 있고......

그렇게 되면 점점 구려질 거 같아요. 누구 하나가 스타가 되어서 힙합 노래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야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예를 들면 힙합 싱글인데 멜론 차트니, 인기 가요니 이런 데에 상위권에도 좀 들어가야 나름대로 10년 동안 힙합이란 게 있었고, 힙합을 해왔던 게 의미가 있지, 계속해서 거기에만 있으면…

저도 거기에 관련이 돼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제 직장이 계속 중소기업 정도 수준으로만 있는 건 싫은 거죠. 뭔가 이게 좀 더 퍼져나가고 랩, 힙합 아이콘을 통해서 ‘어, 이런 애도 있었네’라고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길을 트려면 스타가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빈지노가 딱 그걸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가 도울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이 하게 됐어요(앨범 24:26의 Aquaman).


Jinbo Superfreak


빈지노는 지금 군에 입대해 있다. 그의 전역 후 행보가 눈에 훤하다. 어떤 노래를 통해 그는 그와 함께 군 생활을 한 동생들이나 간부들의 실명을 계급과 함께 언급할 것이고(예컨대 상병 신동갑이나 중사 이준경), 부대의 시설이나 훈련장의 풍경을 나름의 독특한 감각으로 묘사할 것이며, 입대 전 공언했던 자신의 SWAG이 틀리지 않았음을 당당하게 주장할 것이다. 참고로 입대 전 공언했던 그의 SWAG은 다음과 같다.


이젠 유명해져서 군대도 절대 뺄 수 없어 난
근데 난 예측이 뻔한 타입이 될 수도 없어
예측을 엎고 난 떠날 버릴 거야 그냥
너네 여친 들은 다 나 땜에 돌아버릴 거야 확
존나 뻔한 힙합퍼들 맨날 똑같은 것 할 거고
이때다 싶어 랩 한 애새끼들은 그러다 말 거고에
내 손목을 걸어둘게


빈지노 'Flex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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