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은 연말 덕담과 미켈레의 빈티지 쇼핑론
타고나길 감성적인 사람인데, 눈치 때문에 감정을 죽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혼자 속상해하고, 혼자 우울해하고, 혼자 삐지거나 괴롭기 싫어서 표현하기로 결심한 때가 스물몇 살 적이다. 그때의 나를 멋쩍게 칭찬한다. 때로는 그날의 내가 죽도록 밉기도 하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어도, 투명하고 담백하며 평화로운 가정에서 성장한 것은 축복이었다. 그래서 척하는 것, 숨기고 감추는 것, 의심하고 질투하는 것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니까. 다만 다소 그런 면을 보이는 사람들을 힐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 역시 어딘가 상당히 모자라고 아픈 사람인 건 매한가지일 테니까.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닉 캐러웨이’는 자신의 정직성을 갸륵하게 생각하는 자의식 과잉 청년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그는 무언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본인의 성향 탓에 관심 하나 없지만 귀찮게 들러붙는 친구들의 비밀까지 다 알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관해 말한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하나 함께 소개한다.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문장이기도 하다.
가만히 집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가 문득 어지러운 책장이 눈에 들어와 아무 책이나 읽어보자며 한 권을 집어 들고(십중팔구가 개츠비인 게 큰 문제이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을 때, 흐트러지려는 어른 아이 같은 나를 한 번씩 혼내주는 문장.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아파요ㅜㅜ
그만 좀 때리세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광화문을 대표하는 명문이다. 고루한 메시지 같지만, 36년이란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 소름 돋도록 확실한 진리가 아닌가 싶다.
눈에 담으면, 마음에 담기고, 마음에 담으면, 다음 생각에 닿는 인간에게 죽어가는 시간을 들이는 모든 사고 행위는 오죽 강력한 것일까 생각하면서.
며칠 전에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고흐가 동생에게 쓴 편지의 일부였다).
"공정하게든 부당하게든 파괴되어 버린 평판, 빈곤, 운명적인 환경, 역경 – 이것들이 사람들을 갇힌 자로 만들지.
한 인간을 이런 감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알겠니?
그것은 바로 깊고 진지한 애정이란다.
친구 되기, 형제 되기, 사랑 – 이런 것들이 최상의 힘을 발휘해서 그 어떤 마술적인 힘으로 감옥 문을 열어젖힌다."
- 반 고흐
따뜻한 사랑과 포근한 마음이 필요한 연말에 꼭 필요한 메시지 같아서, 블로그에 어떻게든 소개하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귀신 같이 성공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요즘 아버지가 아프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특히 건강은 더 각별히 신경 쓰고 챙겨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도 잊지 마시구요. 주제넘은 참견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사실 하나도 안 죄송합니다만!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생각하는 빈티지 쇼핑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버려지고 잊힌 것들에게 기회의 시선을 주는 일“
실로 아름다운 철학 아닙니까?
정말 뒤지는군요?
"시간이 나면, 저는 꼭 쇼핑을 나가요.
빈티지 가게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거기 갇혀 있는 거죠. 혹시 뭐가 있나 둘러보고, 거기에 있는 모든 걸 들이마셔야 숨이 트여요.
주인들에게 캐비닛을 열어달라고 해요. 겉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만 보지 않아요. 서랍 안에 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거죠.
밖에 나갔다 오면 늘 뭔가를 가지고 들어오게 되잖아요? 그게 물건이든, 누군가와 나눈 대화든, 길에서 주운 어떤 것이든. 저는 항상 바닥을 보면서 걸어요. 버려지고 잊힌 물건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GUCCI 팟캐스트 중에서
■ Blonde 추천할 줄 알았나요? 오산입니다. 프랭크 오션의 감동적인 첫 문장은 사실 따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