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nd를 찬미하며 2

정체불명의 음악 에세이(Feat. 프랭크 오션)

by 스눕피


Blond(i)


습관처럼 누적된 기대와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나온 귀한 앨범. 쫓기듯 서둘렀다면 이렇게 근사히 만들 순 없었겠지? 꼴값하는 초록 머리의 그 양반. 이제 와서 새삼스레.



I will always love you,
how I do.



언제적 작품인데, 여전히 아끼는 사람들이 한 트럭. 다시 10년의 기대와 기다림이 새롭게 누적됐다. 그래서 다음 앨범은 언제?


회상형 인간에게 <Blond>는 최적이다. 철저한 1인칭 고백록. 달콤+쌉싸름한 회상록. 너무 빨리 사라지는 젊음과 너무 빨리 끝나버린 사랑. 이미 지나간 것 뒤에 남는 삶의 잔해. 초록 머리 그 양반은 그것들을 그대로 펼쳐 놓고 ‘남는 감각’에 온통 집중한다. 따라서 극도로 절제된 사운드스케이프는 당위다.



That’s a pretty f**king
fast year flew by.



답 없는 생의 의미를 찾는, 고민 많은 진지충들에게 이 앨범은 강력한 위안이 된다. 내향적 성향은 결함이 아니란 걸 증명한 모든 아이(I)들의 우상.



I’m not brave!



한때는 호들갑이다. 과장이다. 깝친다. 생각했었다. 중2병 맛의 즉흥 문학을 얹은 사운드 스케치처럼 느껴졌기에. 첫 트랙부터 언제적 칸예맛 헬륨 가스를 들이마셨나 했다. 나는 병신이었다. 초록 머리 그 양반이 의도한 대로 굴러갔다.


She said she need
that ring like Carmelo.



정직하게 시간을 들이고, 불처럼 깨달은 사람이라면 알 거다. 거듭 반복해 들을수록 섬세한 감정과 텍스처의 깊이가 살아나는 평냉맛 금발의 간지를. 물론 과도한 해석도 많다. 사실 공감은 안 간다. 2008년 11월에 친 수능 문학보다 더 과장됐다고 본다.



Cannonball off the porch side
Older kids trying off the roof



초록 머리의 그 양반은 앨범의 통제권을 확실히 쥐고 있었다.


Pink + White의 비욘세, Skyline To의 켄드릭 라마, Self Control의 영 린. 그들의 존재감은 쉽게 감지되지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은둔자적 음악 선배 ‘안드레 3000’의 속사포―Solo(Reprise)―정도였지만, 이어지는 Pretty Sweet과 함께 쓸데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과장된 트랙이란 평을 끌어내며 선배를 골로 보내기까지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업계 동료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공간 디자인이자 환경음이었을 뿐. 팝 시장의 단순한 피처링 전시 수준을 꼬집으며 남다른 위상을 드러내는 진또배기 스웨그. 누구라도 떠받들게 만드는 간지 터지는 아우라.


장르를 초월하는 것의 가치. 나만의 속도로 걸어간다는 행위. 권력 구조(그래미)에 도전하고, 전통 마케팅과 투어 사이클을 거부하면서도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는 서사. <channel ORANGE>(2012) 이후 4년간 응축한 팬들의 과열된 기대에 '후퇴한 밀도'와 '조용한 여백' 그리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응'해버리는 진짜 예술가의 곤조.



Kept at least six discs in the changer.



요 며칠 Nights에 꽂혀서 주야장천 듣다가, 98년도를 소환하는 "CD 체인저"란 표현이 너무 반가워, 기분 좋게 과거를 추억했다. 90s 키즈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CD 체인저. CD 파우치(집이라고도 불렀다)를 들고 다니며 90년대 외힙 띵반을 골라 듣던 때를 또 한 번 애틋하게 떠올리며, 87년생인 그와 같은 시대, 같은 공기를 나누며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에 차올랐다. 시절의 리듬, 시대의 감각까지 툭툭 새겨 넣은, 아무튼간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띵반이다. 제길슨!



Blond와 Blonde는 프랑스어에서 남성형과 여성형을 의미하고, 오션의 성 정체성과 이중성, 양가성을 암시한다고 누가 그럽니다.


프랭크 형.


4년의 기다림은 Blond로 용서됐지만,

인플레 터진 10년의 기다림은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꾸 인스타 스토리만 올리실 겁니까?

매일 도쿄의 밤거리만을 배회하실 겁니까?

칸예 형이랑 쇼핑 동선 공유합니까, 안 합니까?

과거의 당신 때문에 현재의 청년들이

몽벨만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압니까, 모릅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형은 Blond를 만들었으니까요.

그걸로 족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크리스마스에 읽으면 좋은 글(뻔뻔)

https://brunch.co.kr/@0to1hunnit/57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가다 국힙 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