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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17. 2018

나는 소개팅에서 잡아먹힐 뻔했다.

어떤 소개팅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2012년 9월 30일, 전역과 동시에 여자를 소개받았다. 2살 어린 의상학도였다.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우린 서로 조금 친해졌다. 그녀의 시원시원한 말투와 털털한 성격은 나를 움직였다. 며칠이 지나서 우리는 실제로 만났다. 오, 그녀의 실물이 나쁘지 않았다. 큰 눈, 수줍은 코, 얇고 흰 피부까지.
우리는 부천에서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술만 먹고 헤어지기 아쉬웠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내가 커피값을 계산하려 하자 그녀는 내게 계산을 못 하게 했다. 아까 오빠가 술을 샀으니 커피는 자신이 계산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오, 이렇게 좋은 마인드까지. 못 참겠군. 나는 당장이고 고백하려 했다. 하나, 둘, 셋! 군인정신이 남아있었던 탓일까. 나는 참았다. 꾸욱 참았다. 하수도 아니고 급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녀는 커피를 계산하고,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로 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저기서 그녀가 커피 두 잔을 트레이에 올려 사뿐사뿐 조심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위부터 아래로 훑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구두 밑창과 본체가 따로 놀고 있었다.

쩌억쩌억 쩍쩍 게걸스럽게 벌어졌다.

거의 악어의 저작 운동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잊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저 멀리 떠나버렸다.

급히 고백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녀와 나는 만나지 못했다.

악어 구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녀의 연락처 이름을 수정했다.

이름: 악어
전화번호: 010-XXYY-YY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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